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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의 트렌드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얼마전 극장에서 조용한 흥행을 주도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작품이라든지, 고전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몇년 전 대한민국을 움찔하게 만들었던 "죽어도 좋아" 같은 작품들까지. 그뿐인가. 드라마를 보아도 내조의 여왕과 같은 작품처럼 줌마렐라 형식의 트렌디 드라마까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이다. 지금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인 "써니"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익숙한 사람들의 유니크한 자아 찾기. 세상은 점점 우리가 당연히 그냥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와 엄마라는. 도저히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사랑에, 그들도 주인공이었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더 이상 공통적인 명사이길 거부하는, 하나하나의 고유명사로 태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포스트 모던의 새로운 모던함이다.

 

<달과 게>는 이런 포스트모던 속의 대세를 철저히 거부하는 작품이다. 책은 참신함의 끝은 다시 새로운 진부함이라는 듯이 책장을 십수장만 넘겨보아도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지 결말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추리소설의 대가인 듯한 저자의 수상이력이 과연 그럴까? 라는 인상을 심어주지만 만약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 작품의 초반 설정을 읽는 즉시 이 작품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식의 결말을 맺는 '성장' 소설이 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이 진부함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물론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소년, 소녀의 편에서서, 그들의 감정에 한껏 취하여 작품을 읽어나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결말에 다다라 갑자기 주인공 소년,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사이에 그들의 시선에 따라가다가 이르게 된 결말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주인공이 보였다. 만약 이 책이 요즈음의 대세를 충실히 따랐다면 이 책은 오히려 아이들의 이야기보다 어른들의 이야기로 쓰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든 남자의 며느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자신의 시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다가 사고를 당한 여성의 남편과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 안에서 깨어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요즘 트렌드에 먹힐만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필력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낼 이 이야기 대신, 그 남녀의 아이들에 '새롭게' 주목한다. 요즈음의 '쿨'한 대세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겪게되는 엄마, 아빠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아이들의 고통. 이제는 너무도 진부하고, 어른들의 인생은 어른들의 인생,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의 인생이라는 대세 속에서 옛것이 되어버린 것을 작가는 다시 한 번 들추어낸다.

 

이런 이제는 새로운 것이 되어버린 진부함, 진부함 속에 엄마와 아빠로 감추어져버리는 어른들의 사랑과 그 안에서 안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이러한 참신한 진부함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든간에 시도 자체가 말그대로 참신하게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의 이력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미치오 슈스케는 일본의 권위있는 추리소설 상은 모조리 휩쓴, 소위 잘나가는 추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그간 자신의 장기로 인정받았던 추리소설의 범주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하는 진부한 시도는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상당부분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작가를 아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도 언제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를 과감히 깨트리고 자신이 추리소설 잘 쓰는 작가가 아닌 글 잘쓰는 작가로 거듭나길 원했던 저자는 한 번 더 참신하지만, 진부한 곳으로 파고들어가 자신과 작품에 대한 완벽한 목표를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미치오 슈스케는 달과 게를 통해서 자신의 외연을 무한히 확대시켰으며 그 방법으로 대세를 거스르는 방법을 과감히 사용하였다. <달과 게> 이 작품에 한하여 한정지어보면 그것으로 통해서 얻은 것이 더욱 많이 보인다. 하지만 대세는 괜히 대세가 아니다. 물론 그 대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 작가들의 역할이지만 그 재조립이 과거로의 똑같은 회귀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미치오 슈스케의 다음 작품이 어떨지 몹시도 궁금해지게 하는 작품. 그것이 <달과 게>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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