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드디어 개봉(8월 3일 개봉)을 했습니다.

 

지인분과 보기 전 주말을 맞아 부모님을 보여드렸답니다.

더운 날씨에 휴가는 안가신다고 하셔서 영화를 보여드리기로 했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를 보고 오신 부모님께 어떻게 보셨냐고 물어봤답니다.

"괜찮았어~"라고 짧게 말씀하시더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라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일본, 그들이 나쁘지...그런데 우리나라가 더 나빴던 것 같아..."

어머니도 옆에서 같이 거드셨습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야속한 법이지..."

 

 

 

그들은 그들의 행동이나 역사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나쁘고...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도록 방관한 것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성 하지 않는 그들에게 분노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안일했던 대응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고 아린 역사고 그 역사 속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가 더 안쓰러웠습니다.

 

그대여 이젠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던 그녀에게 걱정 말고 편히 쉬어도 좋다고 다시한번 ㅁ라해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정말 편히 쉬어요...덕혜옹주~

 

사진을 클릭하시면 덕혜옹주 리뷰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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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드디어 덕혜옹주가 개봉을 합니다.

국민알리미로 활동하게 되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덕혜옹주...

 

덕혜옹주를 미리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 주에 덕혜옹주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후기도 남겼답니다. (http://blog.aladin.co.kr/711967199/8663703)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덕혜옹주...

올핸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많이 주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영화 '덕혜옹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기사 한번 살펴볼까요?

기사들은 전문을 가져올 수 없어서 링크만 가져왔습니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7/31/20160731001032.html?OutUrl=naver

왜 다시 덕혜옹주인가 '대한민국 우리나라'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607300911091421758_1

가슴 울리는 영화 덕혜옹주 입소문 제대로 터지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9&aid=0002143362

덕혜옹주 라미란, 가슴 울리는 절절한 연기 호평

 

http://m.metroseoul.co.kr/news/newsview?newscd=2016080100074

덕혜옹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대와 맞선 사람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1607301535003&sec_id=540301&pt=nv

덕혜옹주 3000천여 관객 대상 시사회, 뜨거웠던 반응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07281436096710

덕혜옹주’ 손예진 “10억원 쾌척, 여성영화 순탄히 제작됐으면..”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0305 

덕혜옹주 손예진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 인생연기~

 

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8/dh20160801171955139040.htm

덕혜옹주 이색적인 미학으로 선보인 '조선의 마지막 모습'

 

그들도 빠졌다 영화의 매력에~

 

아릿해서 더 큰 슬픔을 담아 낸 영화...

 

그녀의 또 한번의 변신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함께 있지 못해 아련했을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답니다.

 

어린 나이에 그곳으로 끌려가 성인이 되어서도 돌아올 수 없었던 그녀...

나이가 더 들고 할머니가 된 뒤에나 다시 밟을 수 있었던 고국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오늘따라 그녀의 마지막 메모가 생각이 납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당신의 아픔으로 우리의 행복을 지켜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젠 편안하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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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름다운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권비영 작가님의 책 '덕혜옹주'를 만났을 때였다. 시간이 지나 이젠 영화를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덕혜옹주...그녀는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의 딸이다. 고종의 나이 61세에 태어난 딸로 그만큼 고종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고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일본은 그녀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국민들이 화합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부터 일본의 감시와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일본에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끊임없는 일본의 감시와 멸시 앞에서 그저 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해방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두번 좌절하고 실망했으며 아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오랜 시간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녀는 왕의 딸이라는 것 때문에 아픔을 겪었다. 누릴 수 있었던 어떤 것도 누릴 수 없었고 오히려 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더 받아야 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녀는 그래도 황족이라고 대우를 받았지 않느냐고...

맞다. 일반 국민들에 비해서는 몸의 고통은 덜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황족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국민들을 위해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는 정신적인 아픔은 어느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더군다나 적국인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일본은 그녀의 본국 행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의 사망소식에도....

그 어느 누가 부모의 죽음에 애통하지 않을까...그 죽음 앞에서도 제대로 슬퍼할 수 없었던 그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당신의 아픔이 이제 그곳에서 치유되길...

 

 

 

당시 우리의 많은 국민들이 일본으로 인해 아프고 상처받았으며 슬펐다. 그 속에 덕혜옹주도 있었다.

이 아픔은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사과는 커녕 뻔뻔한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의 그런 행태에 대해 제대로 따져 묻지도 못하게 했던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서도 무척 화가 난다. 그들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어떤 것도 제대로 요구하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하고 싶다. 무거운 이야기만 하기엔 그들의 연기가 좋았으므로..

덕혜옹주로 분해 그녀의 아픔을 열열하게 표현했던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다시 바라볼 기회가 된 것 같다. 영화의 제작이 무산될까 직접 10억원의 제작비도 쾌척했다는 그녀의 배포에도 놀랐다.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있어 덕혜옹주가 더 빛났다. 그녀의 잔잔한 듯 긴장되면서도 아릿한 연기가 좋다. 역사엔 그다지 크게 부곽되지 않았던 김장한으로 분한 박해일...그와 함께 했던 독립군들...당신들도 덕혜옹주를 위해 열심히 달려주었다. 그래서 영화가 더 빛났다.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당신들께 드립니다.

 

당신들의 희생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당신들이 있어 우린 지금 이렇게 편히 살고 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뼈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시고 돌아가신 모든 독립군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들이 있어 우린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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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짧은 예고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번엔 메인 예고편이 나왔다고 하여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공식사이트로 이동합니다~ 

 

그녀의 삶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을 때에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아플 수 있을 줄..

그녀의 일생에 대해 조금 알게 되어 글을 쓰던 순간은 아팠고 화가 났으며 분개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일생을 우리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줄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하지 않았던 무거운 삶을 살야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곧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blog.aladin.co.kr/711967199/8582501 

 

*덕혜옹주 국민알리미로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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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제도서전에서 소설 덕혜옹주의 권비영 작가님의 강연이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해 강연을 다 듣진 못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곧 개봉하는 덕혜옹주가 그것에 힘을 실을 듯 하다. 그전에 그녀에 대해 좀 살펴보도록 하자~

 

 

위 사진을 클릭하면 공식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고종의 후궁이 된 복녕당의 양씨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던 고종에게 힘이 되었던 그녀는 고종이 3명의 딸을 잃고 회갑을 맞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딸이다. 그러니 얼마나 귀히 여겼을까?

그런 예로 고종이 자신의 처소로 딸을 데려와 유치원을 만들었고, 그 유치원은 현재 덕수궁의 준명당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그곳에도 가보면 좋을 듯 하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덕혜옹주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국민들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고종이 1919년 승하한 후 그녀의 인생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당시 우린 일본의 침략을 받은 상태였고 그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해서든 망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못된 종족이었다.

그러니 황녀였던 그녀가 곱게 보일리 없었다. 황손이었던 그녀가 한국에 그대로 멀쩡하게 살고 있다면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 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일본은 그녀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라며 억지로 일본 학교에 입학을 시키더니 오빠 영친왕처럼 일본으로 억지로 끌고 갔다. 그녀의 나이 고작 14살 때의 일이다.

 

14살 소녀에게 그곳은 감옥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일본이 언젠가 자신을 독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늘 보온병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거처는 오빠인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가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이방자의 수기에서 그녀에 대한 아픈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덕혜옹주가 도착한 날 밤 그의 침대 곁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조용히 잠든 앳된 얼굴에는 애수가 서려 있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의지가 되었던 오빠마저 1926년 세상을 떠났다. 3년 후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녀는 이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즈음 일본은 그녀를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소 다케유키와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이때도 그녀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여자로서의 삶도 그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순간이다.

그와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안정이 되는 듯 했으나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녀의 자리가 온전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핍박과 통제로 인해 정신분열증과 실어증을 앓기에 이른다. 그로 인해 그녀는 급기야 정신병원에 갖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1945년 드디어 그녀와 우리 국민이 원했던 광복이 되었다. 허나 그녀에겐 광복이 진정한 광복은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일본 패망으로 경제력을 잃었고 그녀와의 이혼까지 감행했다.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59년 그녀의 하나뿐인 딸 정혜가 실종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끝간데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후 그녀는 16년간 정신병원에 갖혀있게 된다. 조국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원수의 나라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그곳에서 보냈을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녀의 그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서울신문의 김을한 기자가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정치적 타격을 걱정한 이승만 정부의 허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박정희 정부 때 다시 탄원서를 올려 그녀는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그녀는 한국에서도 다시 병원 생활을 하게 된다. 7년의 병원 생활 후 창덕궁의 낙선재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1989년 그녀는 한 많고 가련했던 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가 낙선재로 거처를 옮긴 후 정신이 맑은 상황에서 썼던 낙서를 보니 그녀가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이 말을 읽는데 울컥했다. 이글을 쓰면서 다시 읽은 이순간도 울컥하다.

 

 

소설 덕혜옹주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비정한 역사 속에 태어나 잊혀질 수 밖에 없었고 감추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인생을 영화를 통해 만나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영화로 다룬 최초의 영화로 그녀의 삶에 대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길 바란다. 더불어 나처럼 그녀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 그러니 올 여름엔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영화 덕혜옹주 통해서...

 

영화에 대한 만나보기 전 그녀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울컥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리도 모진 짓들을 했을까..

그들의 어긋난 욕심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파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파하고...

제발 그들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여 살아있는 그들 뿐 아니라 죽어 넋이 되어 떠돌고 있을 그들에게도 용서를 빌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을 책도 함께 소개합니다.

 

 

 

 

 

 

 

 

 

 

 

 

 

 

 

 

 

 

 

 

 

 

 

*덕혜옹주 국민알리미로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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