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이주희 지음, EBS MEDIA / Mid(엠아이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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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의 조건>은 MID출판사에서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다. MID출판사는 과학전문 출판사인데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철학책이며 제자백가 시대의 대표 철학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EBS 다큐프라임은 믿을 만한 브랜드다. MID출판사 역시 믿을만한 출판사다. 의외로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지루할 새 없이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나갔고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 확장되고 전복되는 경험을 했다. 고대 철학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해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난세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절망적인 시대였기에 그 절망을 이기기 위한 철학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다양한 생각이 폭발했으며 그 결과가 제자백가라 불린 사상의 난무였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주요한 사상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노자와 장자로 도가. 묵자의 묵가. 한비자의 법가. 이 책은 이 네 가지 주요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 사상의 핵심을 전달한다. 고전을 인용하고 해석해서 들려준다. 옛 사상가들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그 고민에 대한 답으로 어떤 답을 내렸는지 저자는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전쟁이 끊없이 이어지던 춘추전국시대 속에서 각 사상가들은 그러한 시대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사상들을 주장했을까? 한 번 저자의 이야기 속으로 따라가 보자.

 

 공자와 맹자의 유가는 인의예지, 사단칠정이라 불리는 인간의 본성에 주목했다. 인간은 공감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다. 만약에 어린 아이가 혼자서 우물 쪽으로 가게 되면 당신은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가 아이를 구할 것이다. 누구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득을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공자와 맹자는 인간의 이런 본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 대해 주목했다. 부모는 아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자식을 사랑한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은 그 사랑은 주위에 전파할 수 있다. 이것이 유가 사상의 핵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갈고 닦아 계발하기만 하면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또한 마찬가지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진 정치를 펼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자식과도 같은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겠는가? 어떤가? 이상적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상적이다. 너무도 이상적이다.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공자는 이 이상적인 사상을 펼치기 위해 12년을 떠돌았다. 남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말이다. 그렇게 그의 사상은 2천 5백년을 건너 뛰어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유가 사상을 실천한 왕이 우리에게 있었다. 세종대왕이다. 어떤가? 이상적이지 않은가? 공자와 맹자가 제시단 답은 분명 정답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아쉽게도 그리 쉽게 정답을 따르지 못했다. 인간에게 어진 마음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욕망과 이기심이 있다. 물론 공자와 맹자가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들은 노력했지만 왕들은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가진 것을 포기할 줄 몰랐다.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리라. 

 

 노자와 장자의 도가는 다른 방식의 해법을 들고 나왔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헛된 꿈이고 부질없는 짓임을 그들은 잘 알았다. 난세를 바꿀 수 없다면 어떻게야 하는가? 그들은 난세를 등지는 것을 택했다. 장자는 국가로부터 높은 자리를 권유받았지만 자연을 벗삼아 사는 길을 택했다. 난세 속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보장받기 힘들다. 수많은 유능한 인물들이 난세 속에서 죽어나갔다. 남들의 시기와 질투, 모반과 모략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맛봤다. 부와 명예보다 그들은 생명과 자유를 택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를 비웃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상의 가치의 허실을 간파했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이었으며 다른 이들의 생명이었다. 국가의 이익 추구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무수한 생명이 사그라진다. 만약에 자신이 국가의 요직에 오른다면 그런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들은 난세를 등졌고 세상을 비웃었다. 가치를 허물고 생명과 자유를 즐겼다. 이들의 답은 어떤가? 역시 정답이다. 장자는 결국 난세에도 천수를 누렸다. 지금 현실에서도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며 자연과 벗삼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들과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옳은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일까? 쉽게 결론짓기 어렵다.

 

 묵자의 묵가는 평등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말씀 하신 예수님보다 앞서서 말이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갈등은 해소되고 모두가 이웃처럼 살아갈 수 있으리라. 차별을 두지 않는 사랑. 난세에 가장 어울리지 않은 종교적 사랑을 이야기한 묵자.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면서도 묵자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병기를 개발했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나라에 찾아가서 직접 담판을 짓기도 했다. 차별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전쟁병기를 개발하는 묵자의 사상은 참으로 눈물겹다. 철저하게 이상적이면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다. 아무리 남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남이 나를 죽이려고 하면 방어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고의 지성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품으면서도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묵자는 이것을 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묵가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났다. 인간은 무차별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차별적인 사랑이 각인되어 있다. 자신과 유전자가 유사할수록 더 애정과 사랑을 가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부모와 자식, 가까운 친척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되어 멀어질수록 점점 옅어진다. 묵자가 제시한 해답 역시 옳은 해답이었지만 인간이 따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한비자의 법가는 내가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사상이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으로 묘사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느낌으로 법가를 봤었다. 아니었다. 법가는 시스템이요 법치주의를 논한 사상이었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을 교화시키려는 다른 사상들과는 달리 한비자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았다. 인간을 믿지 않고 법을 믿었다. 법이란 간단하다. 인간에게 미리 자신에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게 해주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법은 태양과도 같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며 뜨겁고 확실해야 한다. 난세에서 군주들이 가장 선호할만한 사상이며 법가를 채택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결코 요행이 아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듯이 현재에서도 법치주의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시스템이 완벽해도 그 속에서 직접 일을 하는 자들은 인간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권련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믿을 것은 그 시스템을 개선하고 더 잘 작동하도록 조정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인간을 믿는 것보다 시스템을 믿는 편이 낫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스템이 잘못 작동하면 어마어마하게 대규모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치의 홀코코스트나 스탈린의 숙청,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그리고 현재 북한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끔찍한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읽은 책을 이런 식으로 되돌아보기는 오랜만이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여러분도 춘추전국시대의 난세 속에 뛰어들어 제자백가 사상가들과 함께 해법을 고민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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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7-08-08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D출판사의 EBS 다큐 시리즈를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40억년이던가요. <경계>,<멸종>,<짝짓기>모두 재미있었는데...

˝읽은 책을 이런 식으로 되돌아보기는 오랜만이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여러분도 춘추전국시대의 난세 속에 뛰어들어 제자백가 사상가들과 함께 해법을 고민해보시길.˝ 구절을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공원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한권씩 모으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어야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8-08 11:46   좋아요 1 | URL
우향님에겐 조금 가벼운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서문부터 해서 구성도 좋았고 뭔가 독자를 자신의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고전을 인용하고 해석하는 저자의 견해도 공감이 많이 갔고요^^ 추천드려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