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청목 스테디북스 61
알베르 카뮈 지음, 임해진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가끔 이런 소설을 만난다. 다 읽고 '머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하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영화에서 만날 때도 있고 이렇게 소설에서 만날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를 뒤져본다. 또는 그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 찾아본다. 저자에 대해서, 작품이 씌인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본다. 글쓴이는 결코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자기자신이 살아온 생애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들을 통해서 작품과 작가의 의도를 더듬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해 나가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간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너무도 익숙하고 유명한 작품이며 저자이다. 나는 아직 실존주의가 무엇인 지 잘 모른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이 소설을 읽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주인공을 긍정해야 하는지 부정해야하는지부터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주인공을 등장시켰을까가 나의 궁금증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스포가 있음을 유념해주셨으면 한다. 내가 해석한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방인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좋으련만..) 나는 이렇게 해석을 했다. 이 작품이 씌인 시기는 두 차례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이후이다. 분명 파리는 황폐해졌을 것이며,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져서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이 나왔다. 주인공 뫼르소는 공황상태로 보인다. 뫼르소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슬픔을 느끼지 않고 엄마의 나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엄마의 장례식 후 여자도 만나고 데이트를 즐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재판장에서도 적극성이 부족하다. 재판과정은 부조리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재판과정이 부조리하다고 해서 뫼르소를 긍정하기도 어렵다. 분명 살인을 저질렀고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패륜아로도 비쳐지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 받게 되고 감옥에 갇힌다. 뫼르소는 감옥에서의 성찰을 통해서 드디어 죽음 앞에서 실존을 경험한다. 종교의 쉬운 해답을 부정하고 부조리를 부정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

 

 주인공 뫼르소는 도시 파리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파리의 사람들은 분명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고 삶과 죽음의 틈새에서 공황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종교에서 구원을 찾으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삶의 부조리에 순응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 영혼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파리의 모습은 이처럼 1부에서의 주인공 뫼르소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라는 명문장에서 불현듯 시작된다. 그리고 뫼르소는 굉장히 지친모습이고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적 공황상태처럼 보인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종교와 부조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전후 파리 사람들의 모습에서 카뮈는 주인공 뫼르소를 발견하고 창조해 낸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하지만 2부에서 뫼르소는 죽음을 대면하고 실존을 체험한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이 찾은 해답이었을지도 모르고, 파리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해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해석한다.

 

 <이방인>을 읽고 소설가 김연경씨가 쓴 글인데 참고가 많이 된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6&contents_id=575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수진 2015-06-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딱딱하게 생각해보자면 실존주의는 모두 실존주의적 공통점을 가지면서 그중에서도 각각, 개별적인 특성을 가져요. 적어주신 측면으로 보면 하이데거의 말이 들어가있는 느낌이네요. 죽음에 이르는 존재요. 제가 배웠던 해석이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뫼르소를 제외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겠다거나 여자친구가 사랑하느냐는 말에 그런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하려면 해도 좋다는 등의 것들은 전부 사회에서 정한 일반적인 `본질`이에요. 이러면 그래야 하고, 저러면 저래야 한다는 것들 등의 가치가 정해진 것들이요. 하지만 뫼르소는 다르죠. 본질에 앞선 `실존`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의 가치는 자기가 정해가는 거지, 사회가 일반적으로 정한 `본질`을 꼭 따를 필요는 없어요. 결론적으로 솔직하고 대담하게, 진실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게 조금 더 실존적인 삶일 것이라는 걸 제시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도 어디까지나 학습된 거라서.. ㅎㅎ 그 와중에 이런 글 보니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06-02 23:32   좋아요 0 | URL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이란 책에서 <이방인>에 대한 해석을 읽으니 제가 많은 부분을 놓치며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더군요. 부족한 리뷰 읽어주시고 댓글로 설명까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을 통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는 문장을 해석해주신 것 같은데, 아직은 제게 조금 어렵습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소설 속 장치와 상징으로서 이해해야겠죠? 저도 윤리나 선악은 사회에서 정한 규칙이며 상대적이다라고는 생각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최소한의 보편적 윤리나 규칙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문에 전 뫼르소의 행동에 대해서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