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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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장편소설이다.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키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키의 특정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하루키빠다. 하루키의 모든 것이 좋다(아마도). 하루키라는 인간도 좋고, 장편 소설도 좋고, 단편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그의 문장도 좋고 유머도 좋고 자신감도 좋고 쿨한 면도 좋다. 


 오랫동안 기다린 장편이었다. 당연히 출간 후 바로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좋지 않았다??! 이런 일이? 지금껏 하루키의 어떤 작품을 읽어도 좋았는데 이번 신간을 읽을 때는 좋은 느낌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하루키의 작품이 이상해진 건가?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건가?? 그래서 읽는 것을 멈추고 시간을 두었다. 마치 처음 조루를 겪는 사람처럼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믿어왔던 것에 크게 배신당한 기분과 당혹감이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다행히 이상해진 쪽은 나였다. 그당시 일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고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집중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리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너무 유사해서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다. 후에 왜 그런지 알고 나서야 편하게 읽었다.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도 안정되고 마침 이 책이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서 다시 책장을 펼쳤다. 불안했다. 읽었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찌? 다행히 아주 재밌었다. 아주 많이. 더할나위 없을 정도로. 즐겁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날 꿈을 꿨다. 꿈 속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이 너무 황홀하고 좋아서 꿈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꿈에서 깨고 내가 음악가가 아닌게 아쉬웠다. 내가 만약 음악가였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음악을 작곡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하루키의 책을 즐겁게 읽은 게 꿈에 영향을 준 거 같다. 하루키의 글은 음악과도 같으니까.


 개인적으로 1부가 가장 좋았다. 17살 소년, 소녀의 마음과 설레임과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17살 소녀의 편지를 읽었을 때는 '아니 어떻게 70대 남성 노인이 이렇게 소녀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거지?' 하며 신기해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17살 소녀의 마음이 정말 이런 것인지. 


 17살 소년이 느낀 깊고 깊은 상실감을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이미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공감이 갔다. 하루키도 분명 큰 상실을 겪었으리라.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공감할 수 없다.


 독서모임에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어떻게 17살의 첫사랑을 45세 까지 잊지 못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느냐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설득력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어떤 사랑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설득할 수는 없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경험해보진 않은 것은 공감할 수 없다.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상실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상실의 아픔을 설명할 수 있을까? 반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이번 독서모임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첫번째로 하루키의 책이 인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뭐, 시기도 있고 책이 두꺼운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 비해 적은 인원이었다. 8명 중 30대 후반이 2명, 나머지는 모두 40대였다. 연령층이 그 어떤 책보다 높았다. 하루키도 시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는 건가? 하루키도 10년, 20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질까? 뭐, 그건 오직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시간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하루키 자신은 분명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 거 같다. 70세라고는 믿기지 않은 건강과 열정을 유지한 채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도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있다. 이번 소설도 부족함이 없었다. 문장들도 좋았다. 


 독서모임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분의 비판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 생각을 바꿨다.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거기에 대고 반박을 하거나 설득을 하려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을. 심지어 그 분은 챗GPT한테 하루키 스타일로 소설을 써주라고 하면 하루키보다 소설을 잘 쓸거라는 말까지 했다. 흠... 뭐 그런거지.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또 있으신가요? 


 알라딘 블로그를 봐도 하루키를 싫어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간혹 나는 부당한 비판이라 생각하고 한 마디 반론을 하고 싶지만... 무의미하다 생각해서 그냥 지나친다. 다행히 내 서친들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하루키의 소설이다. 하루키 월드다. 나는 하루키 월드가 좋다. 현실과 비현실이 혼합된 세계가 좋다.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넘나드는 것이 좋다. 모험을 겪고 성장하는 것이 좋다. 상실을 겪고 치유하는 것이 좋다. 재즈도 좋고 요리도 좋다. 그게 싫다면야 달리 할 말이 없다. 들쥐는 들쥐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즐기면 된다. 

 

 벌써 다음 장편이 기다려진다. 그 사이에 에세이 한 편, 단편소설 한 편 써주실 꺼죠 하루키씨?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이 방의 이 작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음으로 그렇게 원하고, 그대로 불을 끄면 돼요. -p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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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31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근데 주변에 막 추천하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하루키의 팬이라면 이 책을 싫어할 수 없을거 같습니다~!

저도 이 책이 하루키의 마지막 작품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ㅋㅋ


고양이라디오 2023-11-01 00:27   좋아요 1 | URL
하루키의 팬이라면 강추이지요^^

저도 너무 좋았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