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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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생, 서울대 법대 82학번(좀 빨리 학교에 갔네요^^), 서울대법대 조국교수가 언론인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만나 제대로 사고를 쳤다. 사고라 함은 국립대교수, 언론사 대표의 위치에서 완전히 한 쪽 편에 서서 집권 계획까지 세우는 행위가 불러올 일부의 비난, 압력, 딱지 같은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이런 걸 감수할 만큼 지금 보수정권 아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내용을 보면 보수정권과 정권교체를 해야 할 개혁진보세력에 대한 질책과 충고가 대부분이다. 힘과 내용과 실력을 쌓아 정권 교체를 해야만 정권 교체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이름도 거창한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놀란 점은 조교수의 다방면에 걸친 상식의 풍부함과 균형 감각이다. 그리고 어떤 주제든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의 방안을 사고해내는 진정성이다.

물론 조교수가 제시하는 담론과 방안들이 많은 경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 두레박들은 아니다. 다양한 개혁진보진영의 담론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시장에 넘쳐나는 상품들 중 최적의 상품을 골라내고 때론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어 내놓고 논란이 분분한 상품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공하는 그의 실력이 만만치가 않다. 가능하면 2012년, 늦어도 2017년부터 최소한 10년은 집권하여 되돌릴 수 없는 개혁진보의 말뚝을 박자고 호소하는 그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조국교수는 진보는 남북문제 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각종 정치적 기본권을 확대 강화하고, 강자나 부자가 아닌 약자나 빈자의 편이라고 상정한다. 그는 법학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진보의 길이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므로 공개적으로 진보를 자처한다고 말한다.

이명박정권이 추구하는 정신은 “인권이, 민주화가, 진보가 밥 먹여 주냐?”이고 이 질문에 대해 진보진영은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답해왔다. 하지만 그는 이제 진보가 밥 먹여 준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정치적 기본권이 위협 받고는 있지만 선거라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착한 후 대중의 관심은 밥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이란 먹고 자고 입는 문제, 즉 보육,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 문제이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진보개혁진영이 비전, 정책, 능력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이 정치권력이 시장권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그는 정치권력이 법과 제도를 통해 경제 권력을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진보개혁진영이 합의할 수 있는 재벌에 대한 정책은 ‘재벌의 경제력 남용은 막아야 하고’,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고’,‘경영과 부의 상속은 투명해야 하고’,‘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해야 한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대부분의 경제 문제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려면 구체적인 대안적 경제모델에 대한 설계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민주당, 진보정당 들에게는 이런 설계도가 제대로 없거나 있어도 현실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대안적 경제모델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더 구체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불안사회담론을 소개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 일자리, 건강, 노후 등에 대한 걱정은 스카이(서울대,고대,연대)대를 나와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각자도생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연대나 단결도 어렵다. 공정한 경쟁 체계와 사회 안전망 등 복지국가가 절실한 이유이다.

그는 미완의 사회경제 민주화의 달성을 위해 노는 문화 정착, 사회 임금 높이기,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준 무상의료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나 중소기업과 대기업 문제, 기업 민주화 문제 등을 넘어 욕망의 문제까지 설명해 나간다.

교육 문제에서는 외고 문제 해법, 학력차별금지법, 지역균형 선발과 계층균형 선발, 학벌주의 문제 등을 거론해 나간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5% 인데, 스위스는 25%, 프랑스도 60% 정도이다.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서울대 분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남북문제에서는 확실한 대안모델을 보여주었다고 긍정한다. 분단 이 남쪽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분단지형을 평화지형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이 퍼주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보수의 논리가 왜 허구인지 구체적 근거를 들이댄다.

그는 북한의 수령 중심, 군부 위주 사회체제 아래서 북한 인민의 보편적 인권이 분명히 억압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북한의 인민에게 도움이 되고, 북한 권력집단에게도 장기적으로 더 좋다는 메시지가 되는 방식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 하고, 진보개혁진영의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적절한 방법으로 북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북한체제의 억압성을 비판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평화공존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비북, 연북 노선을 주장한다. 또한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민생민주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한미동맹의 파기가 아닌 평등화가 중요하고, 숭미도 반미도 아닌 용미를 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특정 조항인 투자자 국가 소송제나 역진 방지 조항 등을 빼고,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의 침해를 막고, 농업 등 취약 산업을 보호 할 수 있다면 한미 FTA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는 법학자답게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대한민국 검찰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핵심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신설과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을 중심으로 집권 초기에 전광석화와 같이  밀어부쳐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2012년을 위한 개혁진보진영의 연대 방안도 제시하고, 현실의 유력 정치인 개개인에 대한 친절한 평가까지 덧붙인다.

그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정치인들에게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왕 밑에서 안주하는 영주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사회경제적 과제의 실현, 당의 혁신, 연대에 헌신 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정치인이건 생활인이건 자기 세대인 386 전체에 대해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있다.”고 자각 하자고 호소한다. 2,30대가 386과 손잡고 전 세대를 아울러 다시 한 번 잔치를 벌여 보자는 것이다.

‘매력 있는 진보’라고 불리는 조국교수가 먼저 용감하게 자기를 내놓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큰 용기이고 의미 있는 전진이다. 더구나 상당히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 풍부하다. 그의 바람대로 활발한 논의와 진지한 준비가 이어 나가야 될 것 이다.     
그가 인용한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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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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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퀴르발 남작의 성’은 남다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전이나 과거의 사건들을 비틀고 뒤집어 다양한 시각에서 변주하는 솜씨는 가히 환상적이다. 더구나 작가는 상당히 탄탄한 심리학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디즈니 영화주인공들의 혼합 퍼레이드처럼 여러 작품의 온갖 등장인물들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해서 한자리에 모여 개성 있는 수다를 떤다. 소설로는 보기드문 발상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비틀기와 변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하며 여러 화자를 통해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비교해주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치밀하게 엮어 전달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1993년 한국 K대학의 교양 강의를 통해서 1953년 제작된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호러영화 속의 여성 문제를 건드린다.

1932년 뉴욕에서 처음 소설을 쓴 미셸 페로를 등장시켜 원작자의 심리와 여자 주인공 카밀라의 내면의 변화를 추적한다.

2004년에 이 영화를 ‘도센 남작의 성’으로 리메이크 한 일본 영화감독 나카자와 사토시를 통해서는 1932년 대공황의 상황에서 출구 없는 암흑 같은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에 부합하는 기괴스러운 소설의 결말과 1953년 영화의 결말이 할리우드식 호러 영화로 달라진 이유를 설명하고 2004년의 영화를 다시 원작소설의 결말로 리메이크하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2006년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는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의 배경인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델로 유명한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의 배경인 일본의 오카야마 성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한다. 1952년 영화 주인공 카밀라와 빌을 연기한 영화배우 제시카 헤이워드와 로버트 허드슨을 등장시켜서 현실의 연기자들의 욕망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슬쩍 들이민다.

2005년 한국의 MBC 방송을 통해서는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을 보고 영향을 받아 조카딸을 납치해 인육을 요리해 먹은 엽기적인 부부의 소식을 전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카니발리즘에 대한 소개와 아이들을 잡아먹으며 200년 넘게 살면서 언제나 중후한 귀족적 품위를 잃지 않는 퀴르발 남작의 궤변과 카밀라 부부가 결국 자진해서 남작의 카니발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남작과 드라큘라와의 비교도 흥미롭다.

원작자 미셸 페로에게 어린아이 장과 퀴르발 남작에 얽힌 전래동화를 이야기 해 준 할머니 자네트 페로의 등장도 의미있다.

특히 이 작품을 자본주의와 무한 욕망에 대한 고발로 이해하는 해석과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상반된 시각에 대한 소개도 그럴 듯하다. 한편의 디즈니랜드식 호러 다큐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소설 주인공인 홈즈와 작가 코넌 도일의 고뇌와 두뇌 싸움을 다룬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도 흥미 있는 발상이다. 다만 소설 속 사건의 열쇠들이 다소 허술하고 단순하다는 점이 아쉽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여러 아류 영화들에 대한 변주이다. 소설 속 괴물은 이름이 없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작가는 괴물과 박사의 심리적 관계를 파고든다.

또한 작가는 소설 속에서는 주변 인물로 잠시 등장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에르네스트 프랑켄슈타인을 중심 인물로 등장시켜 원작의 비밀을 파고들며 그럴 듯한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야기로 변주한다.

‘그림자 박제’는 대표적인 본격 심리 소설이다.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에 대한 잘 짜여진 단편 드라마이다. 주인공 강철수는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 회계사가 된 평범한 인물이다. 아내와 어린 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난 기러기아빠이다.

강철수는 어느 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멍키 스패너로 끔찍하게 살해한다. 강철수는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속에 존재한 또 다른 인격인 톰과 제리에 대해 설명한다.

톰은 거칠고 당당한 욕망의 화신이고 제리는 말을 더듬고 내성적인 유아적 인물이다.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한 때 잘 어울리며 공존한다. 그런데 마음의 지하실 밑바닥에는 어려서 장애를 갖고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한 우빈이 있다. 이들은 마음 속에서 점점 심각한 갈등에 빠져들어 간다.

전체를 연결해 보면 우빈이 진짜이고 강철수는 과거와 자기를 지우고 싶은 우빈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페르조나이며 톰과 제리는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강철수와 완전히 억눌러져 있는 우빈 사이에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이 소설을 해설한 우찬제는 멍키 스패너로 살인한 인물이 톰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톰은 몽키 스패너를 산 것 뿐이고 정작 휘두른 사람은 진짜인 우빈이 튀어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직접 건드려지는 돌발 상황 속에서 비로서 우빈이 현실에 직접 등장하는 순간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잠에 빠져들고 우빈은 망설임없이 살인을 하고 어린 시절의 자기로 보여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건네주는 것이다. 잘 짜여진 구성과 심리학적 지식은 훌륭하지만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유부단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스러운 현대인의 모습을 사실성 있게 그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2007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고 문단에 나온 작가 최제훈의 재기발랄한 변주와 시대와 인간에 대한 드러냄이 어디까지 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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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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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원제는 The Empathic Civilization)는 주요 언론사가 지난 연말에 선정한 올해의 책에 대부분 들어가 있다. 짧지 않은 분량(800쪽이 넘는다)에 쉽지 않은 내용인데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두루 받았다. 불안과 위기로 특징지어지는 현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상당한 근거를 들이대며 대안과 전망을 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감(empathy)을 다른 사람의 정서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공감에 앞서 등장한 동정(sympathy)은 다른 사람의 곤경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는 것이고,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1부인 ‘호모 엠파티쿠스’는 공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다. 그는 탐욕적이고 물질적이고 쾌락을 쫒는 인간이라는 근대적 인간 규정에 대해 반론을 펼친다. 특히 성충동과 죽음 본능을 주장한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을 들여 반박 한다. 그는 하위징가나 수티 등의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화의 핵심요소가 놀이와 유대감, 사회성 등임을 설명한다.


   
 
  ▲ 공감의 시대  
 
생물학적으로는 거울신경세포가 발견되면서 인간 뿐 아니라 일부 동물들도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자신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고 이 세포를 공감뉴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공감적 반응은 전체 집단이나 심지어 동물 전체의 고통을 자신의 고민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인류 전체적으로 보아 공감 능력은 확장되고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앙적 인식과 합리적 인식은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둘 다 존재에 대해 비실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본다. 반대로 공감 영역을 개발하고 인간을 성숙한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느낌과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감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에 참여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고, 언어를 발전시키고, 설득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적이 되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는 참여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대전환하면서 실체적 경험을 중시하는 공감이 역사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는 이성의 시대에 핵심 개념이었지만 이 자유는 노동을 통제하고 재산을 확보하는 능력으로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고립될 수 있는 자유였다고 해석한다. 반면 자유에 대해 실체적으로 접근하면 인생의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런 삶은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의 삶이며, 관계에서 가능성을 찾는 삶이고, 이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불굴의 의지로 싸워 쟁취하는 자유가 아니라 믿음을 토대로 자신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고 개방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논리로 공감이라는 안경을 통해 자유 뿐 아니라 진리, 평등, 민주주의, 삶의 유한성 등을 재정의 하고, 신앙과 이성도 경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수단으로 실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감의 시대 속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2부 ‘공감과 문명’은 저자가 에너지제도와 소통 방식, 생산 방식이라는 문명사의 변화를 통해 본 공감의 역사이다.

에너지 제도가 질적으로 달라지면 에너지의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사람들의 소통 방식도 변하고 이에 따라 사고방식도 변한다. 수렵채집 사회는 예외 없이 구두 문화이지만, 관개농업 사회는 문자가 있었고 곡식을 생산 저장 분배하는 데 필요한 계산법을 고안해 냈다. 석탄, 증기 기관, 철도로 대표되는 19세기의 1차 산업 혁명도 이를 조정 관리할 인쇄매체가 필수적이었다. 20세기 초의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은 내연기관과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산업 혁명을 관리하고 마케팅하는 데 필요한 중앙집중식 통제 메카니즘이었다.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 제도 역시 인간의 의식을 바꾼다. 구두 문화는 신화적 의식에 대응하고, 경전 문화는 신학적 의식을 낳았고, 인쇄 문화는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중앙집중식 전기 문화는 심리학적 의식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의식의 각 단계들은 ‘우리’와 ‘타인’의 경계선을 긋는다. 신화적 인간에게 낯선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나 괴물이다. 신학적 인간에게 그들은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이다. 이데올로기적 인간에게 그들은 야만인이고, 심리학적 인간들에게는 병자가 ‘타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인류의 공감 능력은 확대되고, ‘타인’은 점차 친숙한 존재가 되어 왔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에 비례하여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동 지방, 인도, 중국 등 거대한 관개농업 제국은 인간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진보시키고 보편적 공감을 개화시켰지만, 이들의 몰락은 토양의 염분과 퇴적 작용의 변화에서 비롯된 엔트로피 수치의 증가라는 열역학 제2법칙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로마 역시 도로와 우편제도, 방대한 인적 교류 등을 통해 공감의 문명을 최대로 발전시켰고 특히 초기 기독교 문화는 보편적 공감과 동정의 문화를 확산시켰다. 하지만 로마도 더욱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피해와 공감의 물결이 정면충돌하는 과정에서 종국을 맞이했다. 더 이상 정벌과 약탈로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로마가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의지하던 농업이 토지 비옥도가 나빠지면서 생산량이 급감하고 제국을 지키기 위한 비생산적인 군대는 늘어나면서 자멸의 길로 빠져 들어 갔다는 것이다. 에너지법칙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결과로 숲은 사라지고, 토양은 침식되고, 인간은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유럽은 500년 동안 암흑기에 들어간다.         
 
권력의 중심은 수천 개의 봉건 영토로 조각나고, 상업은 위축되고, 생계형 농업이 주종을 이루고, 학문은 쇠퇴하고, 도시 생활은 붕괴된 유럽에 10세기가 되면서 새로운 에너지 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말과 수력과 풍력이 사용되고 이것이 인쇄 혁명과 맞물리면서 원산업혁명을 이끌고 인구는 증가하고 도시화가 촉진되고 개인화와 자의식이 깊어졌다. 주 연료와 산업 자원으로 쓰였던 목재 고갈의 위기를 석탄과 증기기관, 철도를 통해 극복하면서 1차 산업 혁명을 이루었고 교통과 이동의 혁신, 인쇄술의 발달, 공교육의 발전, 노동 인구의 증대 등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를 이루었다.

석유 사용과 내연기관과 자동차와 전기의 발명은 세계를 2차 산업 혁명으로 이끌고 이와 연결된 중앙 집중적인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가 등장한다.

3부 ‘공감의 시대’에서 저자는 화석연료와 우라늄이라는 엘리트 에너지의 사용은 심리학적 의식을 이끌며 지구적 차원에서 공감의 시대를 확대해 왔지만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른 한계에 봉착해 있음을 강조하고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를 열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석유시대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화석 연료의 사용과 축산의 결과로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위험할 정도로 증가하여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고조되고 있다.
저자는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의식을 대폭 재조정하여 다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길 뿐 임을 역설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소 수준의 경제적 요건이 충족 되었을 때 그 이상의 재산 축적은 우울, 걱정, 질병과 불만족 등 도리어 행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 성공의 기회를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유러피언 드림을 강조한다.

그는 다가올 3차 산업 혁명은 21세기 분산에너지 제도와 분산 정보통신혁명이 이끌 것이라고 예견한다.

석탄, 석유, 가스, 우라늄처럼 일정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엘리트 에너지와 달리 분산에너지는 햇빛, 바람, 쓰레기, 바다, 지열, 물 등 어디서나 다양한 규모로 발견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말한다. 또한 생산하는 에너지의 30-40%를 소비하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인 빌딩부터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건물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수소 이용법 같은 에너지의 저장법이 만들어져야 한단다.

그는 향후에는 에너지 민주화의 길로 가야하고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산된 재생 가능 에너지는 어느 곳에서도 생산 가능하므로 가난한 나라에서도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길이 열리고, 에너지가 모든 개인의 사회적 권리이자 인권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분산 통신 혁명은 네트워크 사고방식, 오픈 소스 공유, 통신의 민주화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분산자본주의는 대규모 협업과 분산 네트워크 체제이다. 자발적인 수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 지혜를 창조하고 있는 분산컴퓨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리눅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방식이다. 분산자본주의는 경쟁보다 협동이 대세를 이루고, 접속권이 재산권보다 중요해지고 삶의 질을 추구할 것이라고 한다.

매우 방대한 내용이다. 특히 경제 위기, 지구 온난화 등 위기의 시대에 3차 산업혁명과 분산자본주의라는 긍정적 대안을 제시한 것은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공감의 확장을 통해 재구성한 것은 단순하고 도식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을 경쟁하고 이기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 뿐 아니라 저자처럼 공감하고 이타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 역시 실체적인 접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인류는 경쟁자, 협조자, 응징자 등의 혼합전략으로 문명을 만들어왔다는 견해가 더 타당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이성과 감성 중에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보다는 이성, 감성, 직관과 감각이 균형 있게 발달하고 작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그럴 듯 해 보인다. 

물론 개인주의와 경쟁이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 구부러진 자를 펴기 위해 반대쪽으로 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자력갱생과 승자독식의 정글 사회에서도 이 책의 관점은 바람직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처럼 공감이 더 확대되고 삶의 질을 추구하고 모두에게 더 따뜻한 사회가 꼭 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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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감옥
스리 오로빈도 지음, 김상준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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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주 전 한 참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열독하고 있을 무렵 신문에서 경희대 안병진교수의 칼럼을 읽다가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공감의 시대’에 일정하게 ‘공감’하고 있던 상태라 마음과 영성을 강조하는 이 책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어 바로 인터넷서점에서 검색을 했는데 아뿔싸 아직 판매되지 않는지 찾을 수 없었다. (오늘 검색해보니 팔고 있다.) 고맙게도 안교수의 도움으로 며칠 후 이 책을 건네받았다. 우연한 인연과 우연과 인연의 고마움이란!

처음 얼마간은 생소한 이름, 지명, 문화와 문체 탓에 쉽게 읽어 가질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마자 100년의 시차를 뛰어 넘어 오로빈도 고슈에게 푹 빠져들었다.


   
 
     
 
1872년 인도에서 태어난 오로빈도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곱 살 때 영국으로 보내져 14년 동안 영국화 교육을 받는다. 지독한 책벌레이자 성실했던 그는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다. 이미 대학 시절 독서를 통해 현실비판의식을 가진 그는 인도유학생급진조직에서 활동하다 귀국한다. 아버지의 오랜 소원인 식민지 관료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대학교수가 되어 인도독립을 위한 활동을 한다.

당시 인도인에게 영국은 너무 강하고 우수한 체제를 가진 나라였고, 따라서 영국의 지배를 내심 인정하는 온건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빈도는 최초로 인도의 미래는 완전한 자주독립에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 주장하기 시작하고 온건파와 대립하는 ‘열렬파’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된다. 결국 1908년 5월 2일 오로빈도(당시 36세)는 영국 행정장관 폭탄테러의 배후주모자로 체포되어 투옥된다.

이 책 ‘유쾌한 감옥’은 1년 간의 투옥 경험과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과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그는 짐승 취급을 받는 비참한 감옥 생활을 통해 오히려 고통과 슬픔을 관조하고 뒤집는 엄청난 영적인 성숙을 이룬다. 그의 글에는 적과 아, 신분 고하를 넘어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조국 인도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넘친다. 자신을 끝내 사형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검사 노턴에 대한 묘사에서도 잘 드러나는 특유의 유머 감각과 통찰력, 균형감각도 감탄스럽다.

오로빈도는 인도는 게으르고 어둡고 정체된 기운인 타마스에 빠져 무기력하다고 보고, 뜨겁고 공격적이고 움직이는 기운인 라자스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라자스는 타마스를 누를 수 있지만 넘치면 독이 되는 기운이다.

그는 이 라자스를 사트바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맑고 차분한 기운을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사트바 역시 이기주의로 빠질 수 있다. 자신의 영적 해방에 집착하여 세상사를 외면하고 자기에게 침잠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마스의 폐기, 라자스의 통제, 사트바의 발현과 사트바 넘어서기”로 그의 사상을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사상은 훨씬 넓고 깊다. 그는 감옥에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인도 최고의 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감옥을 고통과 통제의 공간이 아니라 수양과 성취의 공간으로 삼은 분이 있다. 숱한 투옥의 반복을 통해서 민주주의와 통일의 상징으로 부활한 고 문익환 목사이다. 그의 평전을 보면 학자이던 그와 감옥을 통해 단련된 후의 그는 육체적인 강인함과 정신력 등 모든 면에서 크게 다른 면모를 보인다. 상식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온 문 목사의 영성과 진정성이 북의 김일성 주석을 마음으로 설득하고, 열사들의 이름을 외치는 것만으로 최고의 연설을 만드는 힘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 한다.

진정성, 공감, 영성 무엇이라고 부르던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기쁨이 절박하고 그리운 시절이다. 새해, 오로빈도의 인류에 대한 꿈과 문 목사의 어처구니없는 꿈이 현실로 다가서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빈다. 김상준의 번역과 해설에도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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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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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는 태국 나나역 근처 소이식스틴이라는 거리의 이야기이다. 나나역은 우리나라의 청량리역, 16번가인 소이식스틴은 청량리 588번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거리에는 길이 있고, 이 길을 중심으로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새벽의 나나  
 
이 소설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미덕은 충실한 자료조사와 현장조사이다.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작가는 상당한 기간 동안 현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 소설을 완성 했다. 워낙 자료가 많다 보니 마지막에는 뭉텅이로 사연들이 잘려 나가고 주인공마저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인 청년 레오는 아프리카에 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며칠 태국에서 지내다 운명처럼 매춘부인 플로이를 만나고 그녀에게 한없이 끌리게 된다. 여기에 비현실적인 전생의 기억이 끼어드는데 레오와 플로이는 500년 전 애틋한 사연을 가진 부부였다.

이상한 설정일 수 있지만 레오는 태국에만 오면 사람들의 전생이 보인다. 레오는 플로이의 집에 여러 매춘부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매춘부의 거리 소이식스틴에서 살아간다. 충실한 자료조사답게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매춘부들과 이웃들의 삶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이’에는 온갖 종류의 자유가 넘친다. 그 중에서도 이 거리는 상상 속에나 가능한 인간의 모든 욕망들이 현실화 하는 곳이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것 같은데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평범한 세상보다 더 진한 인간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과 매춘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거리에서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오는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이 거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이 거리와 플로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곤 한다.      

이 소설은 레오의 네 번에 걸친 태국 방문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크리스마스 무렵 태국을 처음 방문한 레오가 플로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레오가 매춘부 라노를 찾아 네 번째로 태국을 찾는 시점에서 끝난다.

한국인 레오를 내세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지아, 플로이, 라노로 이어지는 매춘부 여신 3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물론 그 중 플로이 시대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플로이 이전의 여신이었던 지아는 구전과 레오의 꿈과 환상 속에서 나타나고, 매춘부 여신으로의 라노는 미래의 시작으로 마지막에 잠깐 소개될 뿐이다.

거리의 역사와 풍경과 삶의 모습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이 소설에는 상당히 많은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교차한다. 전생, 환생들이 수시로 등장할 뿐 아니라 이것이 인물들의 성격을 주요하게 규정하거나 소설 속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도마뱀이나 바퀴벌레가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술잔이 있고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함께 살아가거나 살로 한 방을 가득 채우는 뚱보 인간이 있는가 하면 진짜 식물이 된 식물인간도 등장하고 갑자기 물이 방안을 덮쳐 사람을 죽여 버리기도 한다. 이런 초현실적인 설정을 매우 사실적인 현실 묘사들과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리게 엮어 낸 것도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너무 정형화시켜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사건을 끌고 간다는 느낌이다. 예컨대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와 플로이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나 공감에 대한 이야기들은 억지스럽고 밋밋하다. 레오나 플로이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에 대한 설명도 너무 미흡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충실한 사실적 묘사와 풍부한 소설적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소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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