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나이즈미 렌 지음, 최미혜 옮김 / 애플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는 책을 보는 것이 표지, 제목, 저자의 이름을 보고 나서 책을 읽었다. 각 상황에 따라 순서는 달랐지만 책의 내용만 살폈는데, 요즘은 책을 읽기 전 혹은 책을 읽은 후에는 어떤 제본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에이전시는 어디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하고 저자의 이력이나 번역자의 이력을 살펴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이 초판본인지 아니면 몇 쇄를 찍고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는지 판권란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한다. 그들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내가 보는 이 책을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판권란의 이름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 속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수고했던 이들의 이름이 하나 둘 박혀 있는 것처럼 책 역시 그들의 수고로움을 판권란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책을 읽다보면 판권란 역시 출판사의 개성이 담겨져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다.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놓은 것이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다. 작가의 글쓰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원고가 나오게 되는 이야기를 1장에 써놓았다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책을 계약해 가져오는 과정인 에이전트의 이야기를 2장에 담았다. 3장은 원고가 편집자의 손으로 넘어가 다듬어지는 과정인 교정과 교열의 시간을 담고 있는데 이때부터는 편집자가 매의 눈으로 오류가 되는 부분을 짚어가는 과정 오탈자들을 찾아내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4장은 서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5장은 작가의 이름이나 책의 내용만큼이나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6장은 어떤 종이를 써서 출판을 할 것인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면 드디어 7장에서는 인쇄를 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종이를 책으로 묶는 제본의 과정을 다룬다.

얼마 전에 채널을 돌리다가 일본의 진보초 거리에서 도서 축제를 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은 스페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프로였고,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진보초 거리에 가서 책을 구매하고, 고서점 거리에서 자신이 구하고픈 책들을 찾아 읽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기도 했다. 요즘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는 다들 손바닥만한 사각형 기계에 정신이 팔려 그것만 계속해서 들여다볼뿐 책을 잘 보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도 전자책을 읽는 것 보다는 종이책이 좋아 책을 읽고, 사고, 또 읽으면서 종이책이 가진 매력에 빠져있다.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각 장마다 가볍게 그려내고 있어 읽는 내내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갈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저자가 예로 든 일본의 출판사가 문고본의 이름이 다소 생소했지만 각 출판사에 계약된 저자의 이름이 가끔씩 등장할 때마다 몇몇 작가의 이름이 반가웠고, 그들이 쓴 원고를 다른 이의 손으로 만지고 만져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깐깐하고 빈틈이 없는 작업이었다. 우리나라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투닥투닥 조각칼로 만들어내는 장인들과도 같았다. 고단하면서도 때론 지난한 작업이지만 투박한 원고를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만드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스럽게 들린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 책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마법의 책이기도 하고, 책을 더 아껴가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던 책이다.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꼼꼼하게 책을 읽고 더 깊이 생각해야겠다는 반성 아닌 반성을 했지만 무엇보다 각 페이지의 글들을 볼 때마다 계속해서 포스트 잇을 붙이다 보니 페이지 곳곳마다 붉은 꽃이 핀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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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두 페이지 정도 읽지 않으면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책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금방 좋아지고 무엇보다 다음에는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되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행위는 생각하고 혼자서 깨닫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자세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기쁨은 아이에겐 정말로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 p.19~20


"우리 어렸을 땐 책이 귀해서 모두 활자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고부터는 이와나미문고였나 뭐였나, 뜻도 모르면서 한자 옆의 히라가나를 더듬어가며 읽곤 했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산더미 같은 활자와 정보에 배가 잔뜩 불러 있잖아요? 배가 부른 아이에게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참 힘든 일이죠.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주던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읽으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책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작가의 책임은 무거운 거예요." - p.21~22


"수평선이란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 소실점)지요. 배에서 보든 높은 산에서 보든 반드시 눈높이가 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 점이 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에 있든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 p.39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마라." 터틀사의 창업자이자 숙부 찰스 터틀의 말버릇이었다. 이말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건 학생 시절 광고 계약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 문전박대를 당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는 한밤중이 다되어서야 서른한 번째 집에서 스테이크하우스 여주인과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Keep Tryig, 계속 도전하라. 누군가가 웃어준다." 그때부터 그는 이 말을 인생의 버팀목으로 삼아왔다. - p.63


"지금 출판업계에서는 비생상적인 교열부문을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열부야말로 출판사의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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