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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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에 대한 질문

 뇌과학자로 알려진 김대식 교수의 글은 적확하고 간결하다. 한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싫어졌을 때 그는 미친듯이 책만 읽었다. 그 때 만났던 반짝반짝이는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그 책들로 하여금 독자를 매혹한다.
하루에도 수 백권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이다. 예전에는 이야기가 좋아 그저 좋아하는 소설을 읽기 바빴고, 그 이야기에 심취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를 '의심'조차 하지 않고 오롯하게 듣고 있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고, 그 때부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요지? 저자가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읽고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러고보면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 제대로된 독서법을 배우지 못 한 것 같다. 그저 시험에 나올 내용에 대해 암기를 하고, 그것이 왜 중요한 개념이고, 이 것으로 하여금 닥칠 원인이나 결과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늘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질문의 틀을 깨지 못했고, 여전히 우리는 근원에 대한 질문에 대한 깊이를 논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아끼는 책 리스트에는 아르튀르 랭보와 이탈로 칼비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움베르토 에코,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 굵직굵직한 거장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아직도 나는 그들의 작품을 조금씩 맛보고 있지만 그처럼 간결하고 적확하게 이야기를 꺼낼 정도의 깜냥은 되지 않는다. 특히 소개한 책 중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가 미처 쓰지 못한 자신의 회상록을 마르그리트 유르스나스의 필치를 통해 하드리아누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의 많은 왕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하드리아누스였을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접했기에 로마의 왕들을 주르룩 훑어보아도 도무지 하드리아누스는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은 왕이었다.
다른 왕들보다 더 복잡한 인간형이었던 그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인 <장미의 이름>에서부터 그가 천착했던 주제인 중세까지 김대식 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남들과 다른 해석과 거장들의 책들을 더 엿볼 수 있도록 그들의 책을 더한다. 때론 그가 소개한 저자와 소개한 책 중에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는 책들도 많았다. 다양한 분야의 책과 저자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고전과 과학, 역사, 기술등 다양한 분야의 총망라한 책의 길잡이를 해주며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명확한 논리로 책의 이야기를 풀어갔지만 과한 편집과 많은 여백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각각의 페이지마다 영화의 한 장면이나 저자의 사진이 삽입되어 있는데 저자의 얼굴이 정중앙에 있을 때는 책을 반으로 펼쳐도 그들의 얼굴을 명확히 볼 수 없다.
그런 점이 한 번이라면 책을 엮는데 있어 어쩔 수 없겠지 하며 넘어갈 수 있으나 그런 것이 여러번이다 보니 그럴꺼면 왜 저자의 사진을 책에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책에서 읽었던 부분을 다시 하나의 문장으로 다시 페이지에 수록해 놓거나, 책 전체의 색깔을 초록색으로 내지 디자인을 모두 초록색으로 통일했는데, 그것이 너무 과하게 쓰인 것 같다. 텍스트보다 더 튀기도 하고, 자주 반복되는 문장들이 오히려 생각을 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기도 했다. 책을 엮는데 있어 디자인이 중요한 책도 있지만 이 책 같은 경우는 텍스트를 더 내세웠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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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정한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기원은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이 아닌, 남들의 답에서 시작했다. 시작을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주어진 답의 형식적 순결에만 집착한다. 공자 보다 더 유교적이고, 마르크스보다 더 공산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다. 우리는 매순간 전혀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선다. 질문은 지금껏 매달려 온 신념이나 편견을 넘어 낯선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하는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이 질문은 외부에서 오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데서 오기도 한다. -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P.37~38)


나는 책이 없는 세상에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그러나 현실은 책 속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은 책 속에 전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더더욱 불완전한 방법일 텐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악의가 만족을 얻는 방식의 아주 저열한 검증으로 결론 나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 (P.54)


"잘 생각해 보면 독서는 필연적으로, 글쓰기보다 훨씬 더 개인적인 행위이다. 글이란 게 작가으 한계를 넘어서까지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개인에게 얽히고 그 정신의 회로를 관통할 때에만 계속해서 의미를 갖는다." - 이탈로 칼비노,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에서 (P.79)


"모든 권력은 사람에 대한 폭력이며 언젠가는 황제의 권력도, 다른 어떤 권력도 전부 없어지는 때가 올 거라고요. 사람은 진리와 정의의 제국에 들어설 것이며 그곳에서는 어떤 권력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P.154)


우리는 왜 중세를 이해해야 하는가? 문명이 다시 야만으로 쇠퇴하고, 개인의 문명이 다시 야만으로 쇠퇴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억룰리는 세상. 오늘도 '중세'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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