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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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서막


 누군가의 고백을 들으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 책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한 없이 무겁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들리는 말로 설명되는 무엇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만 전해주는 목소리로 들려오는 간곡하게, 묵직하게 방점을 찍어온다. 책을 읽고 나서 마츠 다카코가 연기한 영화 <고백>의 예고편을 찾아 보았다. 소설처럼 영화의 전후반을 다 보지 못했지만, 소설 속 첫머리에 나오는 유코 선생의 모습은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고백이란 때때로 누군가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을 인간의 결핍을 하나의 악으로 만들어 법의 맹점을 잘 파고 들었다.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이야기라도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색은 달라질 수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인 <고백>은 누군가의 복수극이다. 아무런 정보없이 책을 펼쳤는데 책은 고요하게도 누군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교사는 교탁 위에 서서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사직을 하기 전 마지막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이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가 결혼하기 전 HIV감염 보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홀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였다. 미혼모로서 딸아이를 낳았지만 네 해 동안 그녀는 정성을 다해 길렀고, 사고로 죽었다던 딸아이는 사실 사고가 아닌 살해 당한 것이라고 유코는 이야기 한다. "그 범인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선생인 유코는 그간 A와 B에게 겪었던 일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가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경찰에게 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들이 수업 전 바로 먹은 우유에 마나미의 아빠의 혈액을 집어 넣었다고 고백한다.


완벽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한낱 교사가 아이들에게 강하게 뭐라 호소하다니 착각도 유분수 아닐까.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관을 강요하고, 자기만족을 얻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결국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굽어보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일 년의 휴직기간이 끝나고S중학교에 부임했을 때, 저는 자신에게 규칙을 정했습니다. 아이들을 이름으로 막 부르지 않는다, 최대한 같은 눈높이에 서서 정중한 말씨로 이야기한다, 이 두가지 입니다. - P.14~15


나이가 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 소년법에 의해 유야무야 되느니 너희들에게 나는 이런 방법으로 끝을 맺겠다며 펀치를 날린 유코는 선생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시작된 일이 강아지에게 밥을 주러 간 딸아이에게 미치게 되고, 결국 수영장에 익사 되어 발견하게 된다. 학교 선생님이자 딸아이를 잃어버린 한 여자의 고백은 여기서 끝이난다. 그렇게 시작된 고백의 파장은 A인 슈야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B인 나오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렇게 번갈아 가며 성직자-순교자-자애자-구도자-신봉자-전도자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엇갈린 마음. 빗겨난 화살은 희생되지 않아야 할 누군가가 살해 당하고, 그들은 거리낌없이 자신의 결핍어린 마음을 누군가에게 비춰보려고 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 시작은 엄마와의 애정어린 관심이었고, 보살핌이었으나 서로가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은 달랐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정성을 다해 기른다는 의미. '모성'이라는 말의 색깔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을 정도로 '고백'은 저마다의 깊은 고백과 한숨으로 이야기가 뒤덮인다. 

조용한 독백의 이야기가 마치 나에게만 해주는 이야기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쪼여 들었다. 선생인 유코는 학교를 떠났지만, 그녀가 파 놓은 함정 속에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갈구한다. 이기적인 암의 표현들이 난무했고, 그 속에 '우리 아이는 아닐 거라는' 빗겨난 모성이 그를 더 옥죄이게 만든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좋아하지기만을 기대했던 나오키의 엄마는 나오키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나빠지는 동시에 그녀가 믿고 싶었던 진실이 아닌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뭐든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가 언제나 들어줄 테지만, 의논할 마음이 들지 않을 때는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한테 털어놓는다 생각하고 여기에 글을 쓰렴. 인간의 뇌는 원래 뭐든지 열심히 기억하려고 노력한단다. 하지만 어디든 기록을 남기면 더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하고 잊을 수 있거든. 즐거운 기억은 머릿속에 남겨두고, 힘든 기억은 글로 적고 잊어버리렴." - P.121


내 아이를 믿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나오키의 엄마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결국 튕겨져나와 더 나쁜 상황으로 발현된다. 이야기는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전환되고 복수의 핏빛은 선순환되어 다시 돌아왔다. 이야기의 결말을 읽고 나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다.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나야 맞는 것일까. 시작점에 돌아와 다시 그녀가 읊조리는 고백을 듣고 다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과연 이렇게 끝을 맺어야 그녀의 마음이 편했을까. 자꾸만 물음표 가득한 물음들이 가슴 속에 맺혀 온다. 부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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