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눈앞의 현실 - 엇갈리고 교차하는 인간의 욕망과 배반에 대하여
탕누어 지음, 김영문 옮김 / 378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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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좌전> 해설서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름이 낯익은 저자의 이름이 눈에 사로잡는다. <한자의 탄생>(2015,김영사)과 <마르케스의 서재에서>(2017, 글항아리)에 이어 세번째로 <역사, 눈앞의 현실>이 출간되었다. 탕누어는 타이완 출생으로 프랑수아즈 사강과 같은 글을 쓰는 소설가 주텐신의 남편이기도 하다. 문자 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덕분인지 <역사, 눈앞의 현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동서양의 문학들이 앞다투어 예시로 전개된다. 분명 동양의 고전을 맛보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보니 중국의 고전 뿐만 아니라 경계를 넘어 세계의 모든 이야기가 다채롭게 들어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각각 한 줄기 도(道)의 빛이고, 한 가닥 한 가닥의 직선이며, 아주 고독한 것이라고 상상한다.​ - p.15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시대 역사서인 <좌전>의 해설서다. <장자> <노자> <중용>등 동양고전 하면 들어봤을 많은 이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좌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우리가 <춘추 좌전>이라 부르던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으니 당연히 좌구명이 쓴 이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원래 <춘추>가 본 이름이며, <좌전>은 <춘추>의 해설서다. 해설서에 또 해설서를 읽으니 그야말로 포괄적인 해설서를 한 번에 읽고 있는 기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는 『춘추』 판본인데,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쓴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이르러 『춘추』는 더 이상 열린 성격의 기록이 아니면서, 또 끝없는 현실과 결합된 즉시적인 기록이 아니게 되었지만, 처음으로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며 또 한 사람의 식견과 의도도 들어 있는 완전한 책으로 재탄생 했다. - p.85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터라 <춘추>의 이름이 반가웠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알지 못하기에 탕누어가 쓴 해설서의 글만으로 유추하기는 쉽지 않았다. <춘추>와 <좌전>을 읽은 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좌전>의 세계를 동양 사상의 경계로 두지 않고 단테의 <신곡>과 ​보르헤스, 휘트먼, 마르케스, 한나 아렌트, 레이먼드 첸들러등 그야말로 동서양을 뛰어넘는 철학가들과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섞어가며 그들의 세계를 해석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뒤로 완전히 숨겨야 한다."

"작가는 후대인들에게 자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_플로베르 (p.93)


<춘추>에서 보여지는 역사서에서는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사유와 보편적인 행동, 선과 악의 세계가 고스란히 보여진다. 처음 가는 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작가들의 이름이 등대처럼 하나둘씩 등장 할 때마다 길을 잃지 않고 탕누어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책의 생명은 시대의 유행을 따르는 표지가 아니라 작가가 다루는 독특한 내용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즉 그 한 가지는 공통의 내용, 공약수의 부분, 여분은 삭제한 것, 오직 평면적으로만 펼치는 시대의 목소리, 통상적으로 모종의(비슷함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지혜로 응결되는 교훈이다. - p.107


역사의 수레바퀴는 과거의 현재의 세계가 공존한다. 이미 전처를 밟고 있음에도 인간은 다시 그 길로 넘어서거나 단숨에 뛰어넘어 전진한다. 때로는 전진한 만큼 다시 후퇴하는 종족이기도 하다. 인간의 손으로 많은 것을 이룩해 냈지만 다시 과거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눈앞의 현실로 보고 있는 요즘 그의 해석은 다층적이면서도 다변적인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동양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책이다. 다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춘추>와 <좌전>을 읽은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의 넓고, 깊은 사유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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