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을 드러내고, 용변처리를 맡기고, 음식을 받아먹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쇠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 또는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다. <크로닉>은 그런 마음 속으로 조용히 들어와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한줌의 희망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매몰찬 결론을 내리고 사라진다. 날것 그대로의 인간은 한없이 고독하고 삶과 죽음에 의미 따윈 없다. 영화는 지독히도 염세적인 세계관을 담담하게 읊조린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하기 꺼리는 그것을.
데이빗은 이 모든 것을 경험으로 체화한 인물이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환자를 성심성의껏 돌보지만, 그의 눈빛은 공허하고 그의 삶은 껍데기만 남은 무덤이다. 그는 환자의 삶을 자신의 그것에 투사시킨다. 그리고 그 힘으로 버틴다. 환자들은 데이빗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데이빗에게는 지푸라기와도 같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데이빗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다. 그 도움이 삶이든 죽음이든 상관은 없다. 어차피 삶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다. 그조차 항상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팀 로스를 처음 만난건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였다. 도둑의 오른팔로 나온 그는 양아치의 완벽한 체현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좀 안타까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지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반가웠었다. 나에게는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크로닉>에서도 그는 텅 빈 집과 같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작은 몸집과 평범한 생김새에 짙게 묻어있는 공허함은 많이 건조하게 표현되었음에도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제목인 chronic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은 극 중의 환자들을 향해 쓰였다기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하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떤 모양새로 닥쳐올지 모르는 삶의 끝으로 천천히 향하고 있는,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내일도 여전히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올 때 뭔지 모를 감정에 눈물이 터졌다. 생각해보니 그건 안쓰러움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안쓰럽다. 선택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고 기우뚱거리는 우리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