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난지 30여분이 지난 지금도 소름이 가시질 않고 가슴은 여전히 오그라들어 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공포와 긴장감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멈추면 일종의 만족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신체적 반응이 동반되는 정서는 뭔가 "진짜"인 것을 경험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body cinema 라고 하는데 "몸으로 보는 영화"를 의미한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온몸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두가지 게임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는 진실과 거짓의 게임. 또 다른 하나는 감금과 탈출의 게임. 이들은 팽팽하게 짜여진 네러티브의 그물망 위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진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의 시험대 위에 놓이고 거짓은 드러날 듯 말 듯 숨바꼭질을 한다. 감금된 자와 감금한 자 사이에는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고 탈출은 매번 또 다른 벽 속에 갇힌다. 그리고 공포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사건들을 이어주는 매듭 역할을 한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만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게임은 승자 아닌 승자를 낳으며 끝이 난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단 3명의 배우로 이끌어가는 폐쇄성은 영화의 긴장감을 배로 증가시키는 요소다. 중간에 잠시 집중도가 흩어지는 대목이 있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스토리는 탄탄했고 배우들은 훌륭했다. 존 굿맨은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침착한 사이코를 완벽하게 그려내는데, 서로 상반되는 이 두 가지의 성질은 그가 하는 행동에 예측 불가능성을 한층 더한다. 미셸 역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존 굿맨의 상대역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두려움과 대범함을 오가며 이야기에 추진력을 불어넣는다. 에밋 역의 존 갤러거 주니어는 두 배우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막판에 황당해하는 관객들도 분명 있겠고, 그 대목에서 영화의 결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그전까지 보여준 장점만 가지고서도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충분히 성공적인 스릴러 영화다. 긴장과 층격과 공포를 B급 영화의 정서와 메인스트림 급의 짜임새로 경험하고 싶다면 주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