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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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작가의 여섯편의 단편 작품이 담겨 있는 소설집. 계절마다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끝에는 한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작은 희망과 따뜻함이 베여있다.

모두가 비슷하게 사는 세상 같지만 저마다 다른 이야기 속에서 상처받고, 위로 받고,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여도 괜찮으니 꽃 핀 그 순간만큼은 찬란한 모습처럼 나도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표제작 <가벼운 점심>.

10년만에 가출한 아버지가 돌아왔다. 조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조부의 기대도 저버리고, 부인과 자식들도 내팽게친 무책임한 아버지는 파란눈을 한 영국계 미국인 여자와 완전 다른 생을 살고 있었다.

왜 떠났어요?

26p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질책보다 이해하려는 아들의 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새벽 16층 아파트에서 서 있던 위태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본 후로 어떤 죄든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괜찮아 보이는 아들의 생각은 내게도 조금 납득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나의 사건이 각각 다른 깊이와 형태의 상처를 만든다. 대상이 가족이라면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된다. 그 중 어떤 상처는 누구에게도 따지거나 죄를 물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도 이른다.

장례가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가는 그 길에서, 공항 안의 패스트 푸드 점에서 부자가 3시간이 넘도록 마주 앉아 밀린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들에서, 구원받기 위해 떠나버린 한 남자의 마음과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의 생이 겹쳐진다. 과연 다시 돌아온 지금의 봄처럼 그들에게 돌아온 아버지는 끝인걸까, 시작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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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더스 오브 힘
콜린 후버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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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티>보다 먼저 읽게 됐다. <리마인더스 오브 힘> 은 로맨스 소설이지만, 내게는 삶의 치유와 용서를 중심으로 한 힐링 소설이었다.

케나는 사랑하는 남자친구 스코티와 함께 탄 차로 이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순간 그녀는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혼자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온다. 불행히도 스코티는 살아 있었고 가까스로 차에서 기어나와 구조요청까지 했다. 하지만 6시간을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했다.

과실치사죄로 케나는 5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감옥에서 출산한 그녀와 스코티의 딸 디엠은 제대로 품에 안지도 못한채 빼앗겼다. 스코티의 부모님들 곁에서 자라고 있는 딸 디엠을 만나고 싶어 케나는 출소후 모든 비극의 시작점인 마을로 돌아간다.

출소 직후라 돈도 없었고, 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스코티 가족에게도 딸 디엠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에 난 검은 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을때 마을 안의 바(bar)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렛저라는 남자를 만난다.

렛저는 죽은 남자친구의 절친이었지만, 케나는 점점 그에게 기대게 되고 마음을 주게 된다. 렛저는 처음에 친구를 죽도록 방치한 여자가 케나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알게 된 후에도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케나와 스코티 부모의 화해를 옆에서 돕는다. 죄를 지은 케나는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고, 배려심도 없고, 가치없는 여자여야 했지만 그녀와 만나면서 그것은 렛저 자신이 만들어낸 선입견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소설은 케나와 렛저가 번갈아 이야기하는 형태지만, 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양쪽입장을 다 이해하게 만든다.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너의 상처는 어떤 형태인지, 비극적인 사고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산산히 부서졌는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충분한 과정을 쏟는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 걸어가는 그 과정에서 조금씩 치유가 생기고 위로를 받으며 힐링이 되는 소설이다.

후회는 멈춤 속에 우리를 가두는 거야. 감옥처럼 말이야. 네가 여기서 나가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걸 잊지마.

193p _케나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해.

이게 나의 하루야. 매일을 그렇게 반복해.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329p _케나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해 주어도 괜찮을 때가 온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용서하려고 한다.

널 용서해, 케나.

398p _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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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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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00세 이상의 고령자 인구는 2020년에 이미 8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70대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질렀고, 인류는 앞으로 경험한적 없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보통 미래는 아이와 젊은이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 우리들의 미래에는 노인밖에 없게 됐다. 이렇게 되면 모든 문제 의식이 달라지고, 예측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체적인 사회 구조 시스템도 고령자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토대로 한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 사토 신이치는 45년이나 고령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하면 할수록 새로운 의문과 과제에 부딪혔고 현재는 치매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과거엔 60세만 넘어도 노인이라고 했지만, 현재는 75세이상은 되어야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10살 이상 젊어졌다는 것인데, 식생활이나 위생상태가 좋고 감염병이 감소하고, 의료가 발달 된 이유도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스타일이 훨씬 풍요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이만 먹으면 노인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앞으로 노인들을 돌보거나 관계 맺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될 것이다.

MZ세대를 이해하려고 했듯이 앞으로 변해가는 사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고령자들의 심리도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고령자라고 그저 쇠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몇 살이 되어도 성장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봐야한다.

<고령자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노인들의 말과 행동, 노화와 질병에 어떤 식으로 취약해지는지 등을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풀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키워드를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한집에서 살지는 않지만 바로 옆집에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 공간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지만, 처음 2년 정도는 아주 작은 문제에도 서로 오해가 쌓였다.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라기보다 말투나 사소한 행동에서 문제가 발생됐다. 이 책을 읽으니 그때의 부모님의 말들이 일부분 이해가 되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 우리 부모님도 처음 겪는 고령자의 이런저런 심리적인 변화로 힘드셨을 텐데 딸과 사위에 맞추며 살려니 나보다 더 힘드셨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름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지함이 부끄러워졌다. 작게나마 이 책을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고, 앞으로 언젠간 고령자가 될 나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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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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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가라앉는 배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신생아인 첫째를 품에 안고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았고, 실재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하자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참사였지만, 계절이 돌고 돌아 10번째 봄을 맞이하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생환자의 가족들과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동안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대며 말하고 노래하고 위로하고 일하면서 지내온 삶의 기록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해결된게 없기에 유가족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는 일이고,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며 고통받고 있다.

사랑하던 아이는 이미 떠나고 없는 폐허인 현장에서 왜 유가족들은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걸까. 아이가 죽었다는 것은 알지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이에게 정확히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고,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고문에 끝없이 시달리며, 정확한 진상규명을 알아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짜 아이들을 위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제대로된 조사도 없고, 오히려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비난, 모욕, 혐오를 겪으니 다친 사람들끼리라도 더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2부에서 들려주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가장 가슴 아프고 절절히 다가왔다. 피해자라고 풀리지 않은 의문에 분개하고, 억울한 울분을 토하는 부정적인 심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긴 세월의 비극을 이기고 그 너머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유가족과 돕는 시민들을 뜨겁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라는 소망이 담긴 부분이다.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길 바라는 유가족의 간절한 다짐과 '가야할 것 같아서', '뭐라도 해주고 싶다.'며 찾아와 나름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시민들의 연대의 힘에 숙연해진다. 결국은 진짜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도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방향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투쟁과 연대에 관련한 이 모든 기록들은 앞으로도 우리가 싸워야 할 때에 꼭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기록은 마음을 모으는 일이라고 봐요.

기억은 왜곡될 수가 있어요. 근데 이 기록을 보면 다시 기억하거든요.

284p (2장 : 10년의 기억을 품은 사람들_매일 무너지고 매일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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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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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로 일찍이 알고 있었던 정지우 작가님. 이분은 매일 쓰는 작가이면서 이후에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도 되신 대단한 분.

<그럼에도 육아>는 정지우 작가님의 육아 에세이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온 사유와 글로 작가님만의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을 만날 수 있어 좋았던 책이다. 거기에 육아라는 공통분모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반갑고 위로 되어 오늘도 되지도 않는 임기응변으로 아들 둘을 챙기는 내 모습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온전한 나의 삶을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했다.

이 책은 매일 경제에 기고한 칼럼을 기초로 두고 만들진 에세이다. 당시 수많은 맘카페를 뜨겁게 달구며 SNS에서 공감 육아 칼럼으로 크게 회자되었다고 한다. 실재로 아빠가 쓴 육아일기는 현실과 깊숙히 닿아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글들이라서 나 역시도 깜짝 놀랄만한 공감을 느끼게 했다.

현재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78명이다. 이 합게 출산율은 앞으로도 급격히 줄것이고, 전시보다도 낮은 출생율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것도 물론 큰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건 인식이다. 육아에 대한 가치 저하는 돈으로 아무리 지원해줘도 출산율은 크게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으로 귀결된다.

육아 앞에 수식어로 '독박', '경력 단절', '잉여' 라는 뜻이 붙는 한 여성들은 흔쾌히 인생의 일부분을 출산과 육아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주변에서 물어보면, 낳지 않는 것도 좋고 낳더라도 하나만 낳으라고 말한다. 한 사람을 키운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너도 그렇게 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나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둘 낳고 키운 것이라고도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10년 키우면서 이것이 내 세계에서 명확해진 부분이다. 육아는 힘들어도, 다시 돌아가서 한번 더 겪어야한데도 내 인생에서는 꼭 필요한 시간과 기억이 되었다.

큰 돈을 벌고, 좋은 물건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 모든 애씀보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서 같이 그네 타고 실없는 농담으로 웃겨주고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마중갈 때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 미소 안에 이제 진짜 내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작가는 매일 느끼고 있는 이 분명한 행복을 글로 참 잘 정리하고 표현해 냈다. 읽으면서 저절로 끄덕여지는 고개와 은은하게 퍼지는 미소는 덤이다.

이 모든 것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을 따뜻하고 유려한 글솜씨로 내 지나온 10년을 토닥이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도 든다. 매일 마시던 공기가, 매일 걸어다니던 땅이 갑자기 귀하고 고마워지는 기분. "그래 나는 확실히 내 삶을 살고 있어." 라고 혼자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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