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사회주의자 초청 강연: 유럽 사회민주주의 좌파(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의 최근 경험 — 그리스 시리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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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월 30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주최 온라인 토론회 ‘유럽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최근 경험 — 그리스 시리자를 중심으로’에서 파노스 가르가나스가 한 발표와 정리 발언을 글로 옮긴 것이다.
가르가나스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기관지 〈노동자 연대〉 편집자이다.
이 토론회를 통역한 천경록은 전문 통역가이자 노동자연대 회원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지난 10~15년 유럽 좌파들의 경험은 매우 소중합니다.
이 시기 대부분 좌파 투사들은, 좌파의 부흥을 약속하는 단체들에 가입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리스의 시리자, 영국의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이 바로 그런 방향을 공약하며 좌파 투사와 단체들에 합류를 종용했습니다.
이런 종용은 이탈리아 리폰다치오네(재건공산당)의 지도자 파우스토 베르티노티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요약됩니다. ‘혁명가들은 혁명을 선사하지 못했고, 개혁주의자들도 개혁을 제공하지 못했다. 새로운 급진 좌파가 필요하다.’
이는 얼핏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지만, 사실 매우 오래된 전략인 ‘의회를 통한 권력 장악’의 재탕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시도들이 초기에는 반짝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힘든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그 결과로 매우 실망스러운 타협을 하게 됩니다.
이는 [위에서 열거한] 모든 사례에 해당하는 말입니다만, 저는 특히 그리스의 사례를 들고자 합니다.
이런 경험들에는 핵심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 역량을 중심에 두는 명료한 전략이 좌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회주의적 길이 더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조직해 작업장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보다 선거 승리가 더 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계급에 희망을 거는 것이 의회에 기대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입니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시리자가 부상하기 시작했을 때 여러 급진 좌파 단체들이 시리자에 합류했습니다. 전에 마오주의 단체였던 곳도 있었고, 트로츠키주의 단체였던 곳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전술이 꽤나 성공적인 듯했습니다. 이 단체들은 시리자 지도위원회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의원들을 몇몇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자가 집권하고 은행가들과 유럽연합의 협박에 굴복했을 때, 이 좌파 단체들은 시리자의 배신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시리자의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그리스 총리가 됐고, 총리 자리를 이용해 당내 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치프라스는 총리로서 국가 관료 기구를 이용해 [통치하며] 당내 민주주의에 전혀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혁명가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노동계급에 뿌리 내리고 노동자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의회에서 의석을 얻거나 시리자 중앙위원회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힘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낙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시리자의] 배신이 거듭된 후, 노동계급 내에서 새로운 급진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신민주당 정부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노동자·학생 투사들이 많은데, 이들은 시리자에 대한 환상이 전보다 덜합니다.
투사들은 지난 한 주기를 거치며 엄청난 경험을 겪었습니다. 이들은 시리자 집권을 위해 투쟁했고, 시리자의 타협에 맞서 투쟁했으며, 이제는 시리자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좌파 세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하려 애쓰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자 파업 조직을 지원하고, 반(反)파시즘 운동을 조직하고, 극우의 준동에 맞선 운동을 조직하고, 난민에 대한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리자에 몸담았던 사람들과 시리자 당원들에게 이런 투쟁들에 동참하라고, 함께 투쟁을 건설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리자의] 배신과 타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발제자의 정리
먼저, 그리스뿐 아니라 영국의 제러미 코빈과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 여러 다른 좌파들의 부침에 관해 풍부하게 발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쟁점을 명료하게 하는 데 유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쟁점 중 하나가 지중해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각축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전쟁 발발 위험까지 있었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관련 그리스·터키·키프로스 사회주의자 공동 성명 보기]
좌파 개혁주의적 입장과 혁명적 입장의 차이는, 전자는 이런 문제에서 굴복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애국적 좌파’를 자처합니다. 반면, 혁명적 좌파는 국제주의 좌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에너지 다국적기업들이 지중해 동부에서 시추권을 얻으려 벌이는 쟁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린 뉴딜
이 문제는 ‘그린 뉴딜’ 문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녹색 전환을 이루겠다는 정당[시리자]이 동시에 ‘지중해 동부의 석유·천연가스 채굴권은 그리스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독하게 위선적인 것입니다. 석유·천연가스는 화석 연료이고, 캐내면 캐낼수록 기후 문제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풍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유럽연합의 재정 지원 계획을 지지하면서도, 키프로스·이집트·이스라엘 등의 인근 해역[지중해 동부]에서 석유를 시추할 권리가 그리스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 사이의 차이는 여러 사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저 경제 정책에서 긴축 지지냐, 긴축 완화냐, 약간의 긴축이냐, 노동자 투쟁 지지냐 하는 것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 정책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 사이의 차이는 대외 정책, 전쟁 위협, 기후 변화 등에서도 드러납니다. 전체 스펙트럼을 모두 봐야 합니다.
현재 그리스 노동자들은 신민주당 정부에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급진화·좌경화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급의식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좌파들이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특히 청년층에서 자율주의나 연성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시리자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상들의 뿌리는 깊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반격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 좌파가 혁명적 사상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쟁취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하는 노력의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희는 보건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해, 파업을 지원하고 기층 노동자들이 단체를 조직하도록 지원합니다. 이로써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과 팬데믹 와중에 당한 공격에 반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저희가 노동조합 투쟁 지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을 반(反)파시즘 운동에 동참시키려 조직하고 있습니다.
수행해야 할 과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급진화와 노동자들의 반격에서 [혁명적] 좌파들이 자동으로 지지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회는 있습니다.
혁명적 좌파들은 노동계급에 혁명적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또, 가장 능동적인 투사들을 국제주의와 노동자 권력이라는 사상으로 설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는 우리가 쟁취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연대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속한]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은 이를 위해 전 세계에서 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책]
그리스 외채 위기와 시리자의 부상 - 좌파 정부는 긴축을 끝낼 수 있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소티리스 콘토야니스, 니코스 루도스, 파노스 가르가나스, 타나시스 캄파기아니스, 코스타스 피타스, 페트로스 콘스탄티누, 조셉 추나라, 모나 돌, 정선영 (지은이), 차승일 (엮은이) 지음, 2015년 5월 16일, 232쪽, 12,000원, 책갈피
강연 영상
https://youtu.be/xc9ApkuW_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