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 The Hurt Lo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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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이유도 제각각이다. 겉으로는 정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석유 때문에 벌어지기도 하고 종교와 이념의 갈등으로 촉발된 전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어떤 전쟁이든 수많은 희생이 뒤따르고 마지막엔 아무도 웃을수 없다는 점이다. (전쟁 특수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예외이지만) 전쟁에 투입되는건 기계나 로봇이 아닌 뜨거운 피가 흐르고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채 실전을 치룬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전쟁 영화를 보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전쟁터로 말이다.  

누가 선량한 민간인이고 테러범인지 알수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미적거림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곳이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난 과연 이런 곳에서 하루라도 버틸수 있을까? 만약 1년간 있어야만 한다면 정신과 치료는 필히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영화 속 폭탄 제거반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서로 농담도 지껄이며 긴장을 풀려고 하지만 죽음은 느닷없이 다가오고 그로인한 정신적 폐해는 심해진다. 특히 자신의 판단 때문에 팀장을 죽게 만들었다고 여기는 오웬은 많이 괴로워 한다. 하지만 어찌 알았겠는가. 이라크인의 손에 든 휴대폰이 폭탄과 연결이 되어있었는지를..만약 무고한 민간인이 휴대폰을 들고있다가 총에 맞았다면 이 또한 비극일테니까.  

사고로 팀장을 잃은 폭발물 제거반 EOD에 새로운 팀장 제임스가 온다. 그는 팀원들의 안전 우려와 규칙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단독으로 폭탄 제거에 뛰어든다. 조심을 해도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벌이는 그의 행동은 무모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잃을게 없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다음에야 그렇게 행동할수는 없을것 같다. 그로인해 팀원들은 그와 다투고 믿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단합이 있어야 할 전쟁상황에서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된다는건 곧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오웬과 샌본은 제임스를 사고로 위장한 암살(?)까지도 생각한다. 물론 농담으로 한 얘기겠지만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설마..했을 정도다.  

하지만 괴짜 팀장과 같이 일하면서 조금씩 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가끔씩 도를 넘나드는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하면서도 걱정은 하게 된다. 그동안 제거한 수 백개의 폭탄 제거물을 모으는 제임스를 보며 걱정을 안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전쟁에 참가해 폭탄을 제거하는 일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자 유일한 일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아이가 있음에도 집에서 평온한 삶을 버리고 긴장감이 넘치는 전쟁터로 달려오는건 바로 그곳에서만 스릴과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맛에 중독을 느껴 벗어날수 없게된 제임스. 그가 유별난 것일까? 아니면 전쟁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숙소에서 전쟁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군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바로 문 밖을 나서면 곳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라크인이 자살 폭탄 테러범인지 선량한 시민인지 의심해야 하고, 방금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폭탄 때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봐야만 한다. 실제 상황속 전쟁터는 게임 과는 너무도 다르다. 게임에선 내가 총을 맞아도 "GAME OVER"만 뜰 뿐이다. 다시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늘 오후에 죽을수도 있고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수도 있다. 그곳이 전쟁터이다. 그리고 끔찍한 그곳에 자발적으로 가는 제임스같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죽음의 순간과 싸우고 그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는 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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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 The Craz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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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게 되고 결국 마을을 폐쇄하려는 정부와 목숨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대결(이라기보단 한쪽의 일방적인 진압)이 그려진 [크레이지]. 포스터만 보곤 재난 영화일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스토리의 영화는 그동안 많이 있어왔고 봐왔지만 이 영화는 보통 이상은 해줬다고 생각한다. 깜짝 놀라게 하는 무서운 장면들과 효과음 덕분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요즘들어 이런 영화, 즉 정부와 힘없는 개개인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 단순히 영화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마을의 주민이 바로 내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보안관으로 근무중인 데이빗은 한 주민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총을 들고 사람들앞에 나타나자 위험을 느끼고 사살하게 된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서로 잘 알고지내기 때문에 주민들은 데이빗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고, 죽은 남자의 가족도 울분을 터트리긴 하나 최대한 잊으려고 한다. 죽은 남자가 총으로 누굴 위협할 사람도, 데이빗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걸 다들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은 남자가 술에 취해 이런 소동을 벌인거라 생각했는데 부검에선 알콜 복용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의문 사이에서 데이빗은 고민을 하게 되지만 해답은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죽은 남자와 똑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며 급기야 살인사건 까지 일언게 된다. 데이빗은 강가에서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 담겨있던 미지의 바이러스가 물을 통해 마을에 유입된다는걸 알아냈다. 별다른 단서없이 밝혀내는게 좀 허술하긴 했지만, 어쨌든 수돗물을 막아야 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정부에선 이미 알고 있었다. 비행기에 바이러스를 싣고 가다 추락했고 이 마을에 퍼지고 있다는 것을.. 

만약 처음부터 알고있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물줄기를 막거나 사람들을 격리 수용해 치료할 방법부터 찾아야만 했다. 설사 감염후 48시간내에 죽음에 이른다 할지라도 아직 감염이 안됐거나 내성이 있는 사람이 있을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정부는 간단하지만 잔혹한 해결책을 선택했다. 감염이 됐건 안됐건 생존자를 살해하고 마을을 없애버리는 것. 그들에겐 감염자와 생존자의 숫자만 있을 뿐, 개인의 이름과 삶은 중요치 않았다.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서 소중한 목숨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정부의 참혹한 짓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한밤중에 주민들을 끌어내고 생존자와 감염자를 분리시키면서 가족들은 생이별을 했다. 감염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른채 그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생존자들은 이별의 아픔과 더불어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두려워했다. 그래도 살수있다는 한가닥 희망은 품었을 것이다. 설마 정부에서 자신들을 죽일거라는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데이빗과 아내, 그리고 주민 몇명은 마을을 탈출하려고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잃고 감염자가 발생해 서로를 믿을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이웃마을로 가서 목숨을 부지할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유일한 희망과 처절한 탈출기는 정부 라는 큰 벽앞엔 너무도 우스워 보인다. 그들은 탈출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글쎄, 그러기엔 정부의 정보력과 파괴력은 너무도 거대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소름끼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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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영웅의 탄생 - Kick-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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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봤으면 큰일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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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영웅의 탄생 - Kick-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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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고선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인줄 알았다. 주인공들의 연령도 10대이고 예고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그런데 이 영화가 18세 관람가란다. '어린이 영화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줄거리와 평을 찾아보니 무관심에서 점점 관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나처럼 어린이 영화라고 착각해 안보려고 했는데, 안 봤으면 큰일날뻔 했다는 평들도 있었고, 대체로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봤는데 기대 대로 재미있었고 정말 안봤으면 억울할뻔 했다. 그러고보면 포스터와 예고편,배우 때문에 놓친 좋은 영화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괜한 편견을 버린다면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날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있으니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지 알수 있을만큼 잔인하고 수위가 강한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경쾌한 분위기 때문인지 조금은 덜 해 보인다. 그래도 악당들이 벌이는 짓은 잔인하고 끔찍했다. 그래서 영웅들이 응징하는 것에 정당성이 생기고 환호를 더 보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데이브는 괴짜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자들에겐 투명인간 취급 당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학생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사람들을 구해주는 정의로운 영웅이 되는 것이다. 싸움 실력이 좋지도 않고 불량배들에게 돈만 뜯기는 데이브가 꾸기에는 얼토당토않는 꿈이다. '~맨" 자로 끝나는 영웅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슈퍼히어로가 될 운명이었거나 거미에게 물리거나, 부모님의 죽음으로 복수를 꿈꾸고 많은 돈으로 최신식 장비를 갖추거나 했다. 하지만 데이브는 초능력을 가지지도 거미에게 물리지도 않고, 어머니는 급사로 세상을 떠서 복수할 상대도 없고 집에 돈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킥 애스'라는 이름을 짓고 슈퍼히어로가 되려고 한다.

그 첫 단계가 초록색 쫄쫄이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었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으며 원대한 포부를 가진다. 이쯤에서 보면 데이브는 '자신이 슈퍼히어로가 되고싶어하는 수천 수만의 만화책 광'들 중 한명일 뿐이다. 쫄쫄이 의상을 입는다고 없던 용기가 생기거나 싸움을 잘하게 되는것도 아닐텐데. 하지만 의상을 입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슈퍼히어로라 생각하게 되고, 갱들의 싸움에 무작정 뛰어들어 말리면서(많이 얻어맞긴 했지만) 진짜 영웅이 된다.  

데이브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유투브 영상은 TV에까지 방송되고, 킥 애스의 홈페이지는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의 방문으로 넘쳐나게 된다. 사람들은 영웅을 사랑하고 닮고 싶어한다. 비록 또 다른 영웅이 나오면 금방 잊혀질 테지만, 현재로선 킥 애스가 뜨는 인물이었고 그의 코스튬과 이름은 상품으로 만들어져 날개돋힌듯 팔린다. 이제 그토록 꿈꾸는 슈퍼히어로의 삶을 살게 된 데이브. 하지만 한가지 잊은게 있다. 악당에게 영웅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는 것, 슈퍼히어로라는 이름은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정사정없는 악당 디아미코가 자신의 마약 거래를 방해하는 사람이 킥애스라고 오인 했고, 졸지에 데이브가 위험에 처해다. 물론 데이브는 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도 전혀 몰랐고 나중에는 함정에 자기 발로 들어간다. 영웅이라고 하기엔 많이 허술한 데이브. 사건 현장에 증거물을 남기고 ip주소를 바꾸지도 않고 세상에 악당이 많다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데이브. 악당의 입장에선 손쉽게 처리할수 있는 상대였고 문제거리를 일으키지도 못할 존재였다. 빅 대디와 힛걸이 나타나기 전까진.  

어찌보면 디아미코와 빅대디의 관계가 우리가 알고있던 악당과 영웅의 대결 구도이다. 정의로운 형사인 데이먼(빅 대디)을 디암코가 함정에 빠뜨려 명예와 가족을 앗아갔다. 유일한 혈육인 딸 민디(힛 걸)의 손에 바비인형이 아닌 칼과 총을 쥐어준건 죽은 아내와 자신들을 위한 복수였다. 딸을 훈련시켜 디아미코에게 복수를 하고 모든걸 파괴하는 것이 그가 살아온 유일한 이유였고 목표였다.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 있다면 제거하고 경찰에게 뇌물을 먹이는 디아미코와 복수를 다짐하는 데이먼과 민디. 이들이 대결은 진지하고 두근거리게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에 킥 애스가 끼어든다. 진지한 분위기에 웃음 폭탄을 던지는 격이다. 빅대디와 힛걸 입장에선 협력자가 아니라 도와줘야 하는 존재만 늘은 셈이다. 더구나 킥 애스 때문에 같이 함정에 빠졌으니 짐짝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들은 킥 애스를 버리지 않고 목숨을 구해준다. 그리고 죽음의 목전에서 다시 살아난 데이브는 그제서야 '슈퍼히어로'가 되는게 어떤건지 조금은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을 보니 2편이 나올것 같고, 보고싶기 때문에 꼭 나와야 하는데 과연 나올지 궁금해 진다. 무엇보다 힛걸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은데 더 크기전에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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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 The out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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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감우성씨의 새 작품이라 보게됐는데 굳이 추천하고 싶진 않은 영화이다. 막장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영화를 보고있으면 그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려 진다. 오정수가 무법자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고뇌가 별로 없었지만,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서 어느정도의 당위성은 가지게 됐지만 입체적인 역할은 아니었다. 경찰 부하들의 역할도 미미했고, 오정수를 좋아하는건지 아리송하게 만든 한소영(장신영)의 역할은 좀 의아했다. 혼자 말만 하다 끝나는 역할이랄까? 나중엔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황당한 장면들이 많았고(오정수의 두명의 친구는 웃음만 선사했다.) 마지막 2~30분 전까지는 좀 지루하게 펼쳐진다. 물론 18세 관람가를 받을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승민 역의 이지현씨는 피해자 역할을 잘 해준것 같다.

'묻지마 살인'은 더이상 놀라운 화젯거리도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각종 묻지마 범죄는 그때마다 전문가들이 나와 원인을 밝히고, 경찰들은 죽어라 범인을 잡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치유할수 없을만큼 썩어 문드러진 사회가 낳은 사건과 범인들을 점차적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인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는 대신, 뻔뻔하게 웃고 자신이 한 일을 떠벌리는걸 보고있자면 기가 막히고 같은 인간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오정수(감우성 역) 형사가 무법자로 변해가게 한것도 바로 이토록 뻔뻔한 피의자들 때문이었다.  

일반인들도 이런 범죄를 보면서 분노와 살의를 느끼는데 사건을 맡고 범인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은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것 같다. 이런 사건을 대할때 '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자를 생매장 시킨 젊은이들은 현장조사에서도 히히덕거리며 웃고 있고, 여자들을 납치해 강강후 살인한 범인은 그 재밌는걸 더 하지 못한게 원통할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죽이는 일은 단순히 '재미'있는 일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정수는 유독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감정을 교류하게 되는데, 범인들에게 잡혔다가 겨우 탈출한 지현을 취조하면서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모르는 남자들에게 잡혀 강간을 당하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피해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걸하던 그녀는 범인들의 눈을 피해 탈출 했지만 그때의 공포는 그녀를 계속 그 장소에 머무르게 한다. 누구에게 원한 한번 산적이 없는 그녀가 겪어야 했던 일들, 더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수 없을거라는 절망감에 그녀는 흐느껴 운다. 그런 지현에게 오정수가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오정수 형사가 피해자인 지현에게 느낀 감정은 처음엔 연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준건 그의 사랑이었고, 그렇게 지현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지만 완벽하게 치유된건 아니었다. 그저 기억 저편으로 끔찍했던 사건의 조각을 꾹꾹 눌러 담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몇년이 흐른 뒤, 남편 오정수의 옷에서 범인의 편지가 발견됐을때 큰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감옥에 있는 범인이 자신을 찾을리 없다는걸, 남편이 지켜줄거라는걸 알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몇년 전의 힘없고 고통스러운 피해자로 돌아가버린 것이니까.  

그렇게 지현은 떠나고 오정수에게 남겨진건 큰 슬픔과 자괴감,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세상은 변한게 없었다. 여전히 죄없는 사람들이 묻지마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고, 끔찍하게도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중 한명이 되었다. 지현이 연락을 해왔고 처음으로 딸을 만나게 된 바로 그 날, 2명의 외국인이 '재미'로 그들을 죽인 것이다. 딱 봐도 '이태원 살인사건'을 재현한 것이었는데 약에 취한 남자들이 칼을 들고 화장실로 가며 재미있는걸 보여주겠다고 말하는것 까지 똑같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진술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것 까지 말이다.  

과다하 싶을 정도로 오정수에겐 고통스러운 일들의 연속이다. 정서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더이상 이성적인 형사 일을 할수 없었고 주변 사람들, 특히 한소영이 많이 도와주려고 하지만 이미 그는 마음을 굳힌 상태다. 형사 신분으로서는 할수없었던 '복수'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등지고 범인들과 썩어빠진 법조계를 처벌하기 위한 하나의 쇼를 준비하는 오정수. 비록 그 복수가 성공한다고 해도 그에게 남은건 뭐가 있을까 싶다. 관객들은 잠깐이나마 통쾌함을 느낄지 몰라도 그는 평생 밝은 빛을 보지 못할것만 같다. 이미 그의 손에도 피가 묻어있으니까. 천국에 가 있는 딸을 보고싶다는 그가 과연 그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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