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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평점 :
슬금슬금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하나씩 읽다가, 내친 김에 다 구매해 놓고, 읽기 시작한 소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동안 녹색광선에서 나온 책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이모저모를 다룬 책들이라 이 또한 그러하리니 하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 주제이긴 한데..
노교수가 30년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헌정받은 기념 문집을 보며 자신을 학문에 정진하게 한 선생님에 대한 뒤늦은 고백을 한다.
베를린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후 방종한 한 학기를 보낸 나는, 소도시 대학으로 옮겨가 한 교수를 만난다. 그의 열정적인 수업 방식에 반한 나는 공부에 푹 빠지게 되는데 나의 헌신적인 열정에 비해 교수의 반응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줄거리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면서도, 스토리의 진행을 궁리해 가며 읽게된다. 교수의 집 2층에 하숙하게 된 나, 마을의 호수에서 엉겁결에 수영 대결을 펼친 젊은 여자가 알고보니 교수 부인이었고 등등의 제시된 힌트로 교수와 교수 부인과의 삼각관계가 추측되기도 하고 타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는 교수의 이따금의 잠적은 왜 일어났을까 궁금해 하면서. 그리고 차근차근 쌓여가는, 주인공의 인정받고자하는 열망을 교수가 외면하면서 생긴 내적 불만은 소설의 끝부분에 가서 세 사람의 얽혀 회오리치는 감정의 혼란과 함께 폭발한다.
주인공의 심리적 압박을 묘사한 부분이 탁월하고, 더불어 교수가 구술하는 과정에서 언듯언듯 보이는 셰익스피어 및 잉글랜드 연극에 대한 논문의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소설에서도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런 책이 나왔으면 참 좋았겠구나 싶다.(나와있을지도..ㅎ) "모든 진핵을 빨아들인 꽃들이 순식간에 한데 모여 결정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 언제나 단 한순간, (p17)”이라 표현한 그 시기를 경험한 주인공이 부럽기도 하다. 내 삶을 돌이켜봤을 때 그런 순간이 있었나 싶고.
작가의 삶 자체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벨 에포크'시기를 살았고, 그 아름다운 시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브라질로 망명했다가 부부가 함께 자살로 마무리했다. 그 시기를 살았던 어느 누구의 삶이 평이했을까 싶지만… 츠바이크의 유서에 쓰인 문구조차 너무나 아름답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이 긴 밤이 지나면 떠오를 아침노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무 성급한 이 사람은 여러분보다 먼저 떠납니다.”(p213)
내내 여운이 남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