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노트 움직씨 퀴어 문학선 1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잘못된 대우에서 오는 것이다.“- 구묘진(p74)
대만의 전설적인 천재소설가 구묘진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악어노트”를 읽었다. 소설로 분류되긴 하지만 읽다보면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글. 대학 시절 4년 동안 쓴 일기 (일기임이 분명하다!) 가 번갈아 나온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법제화 국가인 대만의 “혼인평권”운동을 촉발한 소설이라고.
소설 중 주인공의 별명이 “라즈” 는 리더, 선동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이후 레즈비언을 뜻하는 은어로 폭넓게 알려졌다고.
수령, 몽생, 초광, 탄탄, 지유, 소범..이 다섯 명의 사람들과의 인연이 들쑥날쑥하게 얽혀지면서 라즈의 정체성, 고민이 낱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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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
라즈는 천재이고, 그래서 너무나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하면서 이미 生에 대해 통달한 사람. 이해하기도 가까이 하기도 힘든 사람이다. 이런 그(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해 준 사람이, 그리고 그(그녀)가 사랑하고 위안을 받는 사람이 하필이면 여자다. 그것만 빼면 라즈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그토록 완벽한 파트너를 찾는 사람이, 찾을 기회가 어디 그렇게 흔한가. 그러나 사회는 아직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고, 라즈는 한편으로는 수령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고 가까이에서 사는 방법도 생각하지만, 수령은 그 짐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라즈가 떠났나? 그러면서 또 다른 커플들이 등장하고 힘들어한다.
성별을 떠나서 인간으로 새김하게 되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같이 있고 싶어하고..그러면 내버려두면 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일은 하고, 둘이 사랑하고 살게 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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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의 인간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간섭하고, 제도 안에서 숨 쉬어야 한다고 억압하고,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형벌도 불사한다. 그래서 개인은 괴롭다. 어쩌면 동물로서의 인간 사회에서는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남녀가 만나서 교접하고 후손을 낳아야 이 인간 사회가 이어지므로. 그런데, 모든 인간 개개인이 꼭 그렇게 후손을 남겨야하나? 이미 포화상태인 지구상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결혼하고 후손을 낳고 싶은 사람은 낳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그래도 될 텐데?
그냥 다양한 살아가는 모습을 인정해 주고, 그렇게 보듬어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에게 자기 행복 결정권을 주고 선택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여자를 하나의 가구 취급하는 작태가 만연한 현실에서 나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가.
작가 구묘진이, 결국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좀 더 버텼으면, 아니 최고의 사랑이 이미 곁을 떠났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었는지도..(소설로 읽으면서 자전소설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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