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플리카가 생겨나고 유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디자이너나 경영인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던 패션 산업의 일부분이 생산자와 공장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옷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껏 디자이너나 경영인의 뒤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을 거치며 확장된 생산자 제조 중심의 패션 트렌드는 이들 생산 주체를 패션 산업의 전면으로 내세웠다.

..테네시에 있는 포인터 브랜드의 공장들은 여전히 구식으로 돌아가며 아직 현대화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러한 공장이 미국 전역에 수없이 많았지만, 지금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포인터 브랜드의 경우처럼 몇몇 남은 공장들은 아메리칸 메이드 트렌드와 구식 공장 제품이 지닌 독특한 외향과 촉감이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데님 마니아들과 서구의 워크 웨어 팬들이 이들 공장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으며 수많은 업체에서 올드 아메리칸 제품 생산을 의뢰하고 있다. 한마디로 포인터 브랜드는 현재 진행 중인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트렌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빈티지 청바지를 만들 때 보통 십여 종류의 재봉틀을 사용하는데, 지금도 오슬로우의 작업 스튜디오에는 구형 유니언 스페셜부터 컴퓨터가 제어하는 최신 기종까지 삼십여 대의 공업용 재봉틀이 놓여 있다. 이것들은 그저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샘플을 만들어서 제조 공장과 좀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오슬로우의 몇몇 제품은 공장을 통하지 않고도 스튜디오에서 직접 완제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의 헤리티지 청바지, 데님 웨어, 워크 웨어, 밀리터리 유니폼 등 레플리카 브랜드가 주로 다루는 옷들은 20세기 초중반에 발전했다. 그 시대에 전쟁에 동원되고, 공장에서 일하고, 철로를 놓고, 석탄을 캐고, 소를 몰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던 사람들이 입던 옷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남녀의 역할 분담 구조가 지금보다 확고했기 때문에 워크 웨어 계열에도 여성 전용 의류는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 오늘날에는 고단한 육체노동이나 극한의 날씨, 위험한 작업 환경에 따른 위협을 예전의 워크 웨어가 해결하고 있지 않다. 이미 훨씬 더 훌륭하고 기능에 충실한, 가볍고 저렴한 소재들이 많이 나와 있다. 광산에서 일하려고 청바지를 입는 경우는 없다. 만약 현대의 봉제 기술이 부실해서리벳이 필요한 것이라면 치노 팬츠와 슬랙스 등에도 리벳이 붙어 있어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셀비지의 빨간 줄, 신치 백, 멜빵 고리, 덧댄 캔버스 천 등은 이제 일종의 표식이자 장식으로 존재하며, 레플리카 제품의 배경이 되어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드는 서사로 기능한다.

..미스터 프리덤의 크리스토프 르아론은 "현대의 자유는 자기만의 감옥을 만드는 데 있다. 감옥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용감하게 감옥 안으로 돌진하든 감옥을 피해 돌아가든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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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p.
..새로운 방에 ‘정말 좋아하는 물건‘만 채우면서 나는 비로소 내 집에 대해 ‘여기가 바로 내가 살 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43~44p.
..이런 상자나 캔처럼 자질구레한 물건을 보고 있으면, 제일 마지막에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물건이나 비싼 물건이 아니라 어쩌면 잡동사니에 가까운 것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4p.
..그때까지 ‘나는 접점이 없는 세계‘인 줄 알았던 세계가 알고 보니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이런 순간이 가장 설렌다.

117p.
..오감을 충족시키는 것은 어떨까.
..좋은 향이나, 좋은 감촉이나, 좋은 음악. 그런 것과 접촉하면 행복하다고 느낀다. 창문을 열면 그 계절의 바람이 불고 커튼을 젖히면 햇볕이 따듯하다. 깜박하고 안 뿌리지만 좋아하는 향수도 있고, 향이 마음에 드는 화장품도 갖고 있다.
..느끼고자 하면 행복이 손에 닿는 곳에 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나를 실망하게 하는 ‘성실하지 못해 빈곤한 생활‘의 본질인 것 같다.

130p.
..무언가를 할 때, 우리는 죽음에 끌려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167p.
..활기가 샘솟을 때는 그냥 쉬었을 때가 아니라 즐거운 일을 했을 때다. ‘즐거움‘이라는 말을 들으면 환한 미소가 떠오르는데, 내게 ‘즐거움‘은 꼭 웃음의 이미지만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울거나, 친구와 평소에 하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연에 몰입해서 몇 시간 동안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푹 잠기는 일이다.
..사람에 따라 ‘즐거움‘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무언가에 열중하거나 감동하면 내일부터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 아니라 앞으로 오래 이어질지 모르는 인생을 열심히 살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그런 날이 최고의 휴일이다.

183p.
..할머니의 쇼핑 방식은 나와 비슷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의 마음으로 열심히 사 모은다. 통일성은 없다. 동경하는 상징물을 사면서 자신 안에 이런 것을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고 인식하는 작업에 가깝다.
..물건을 손에 넣으면 비로소 그게 어떤 욕망이었는지 형태가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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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A란 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의 약어로, 쉽게 말해서 미확인 생물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실제로 존재하는지 증명되지 않은 생물을 가리키는 총칭이다.
..영어로 쓰여 있어 외국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명칭은 일본식 영어다. 모두 다 아는 UFO가 Unidentified Flying Object(미확인 비행 물체)의 약칭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1976년 일본의 모 유명 SF 전문지가 명명한 것이 시초다. 덧붙여 영어로는 크립티드(Cryptid)라고 부른다.

..공포의 대상은 전국 공통이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이름을 바꾸어가며 전승되기도 해요.
..메리는 집 전화가 없어진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때로는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지. 이젠 뭐, 메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괴담 자체가 없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남을 거야.

...신이란 존재는 잊히면 나쁜 짓을 한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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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당시의 과제 도서 중에서 말하자면 『죄와 벌』보다는 『국화와 칼』이 훨씬 재미있었다. 만약 베네딕트의 말처럼 서구 사회가 ‘죄의 문화‘이고 일본 사회가 ‘수치의 문화‘ 라면, 일본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인은 전세계에서 완전 범죄에 가장 적합한 민족일지도 모른다.

158p.
..슈이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용한 분노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간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휘감았던 붉은 불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의 뇌리에서 빛나는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이었다. 가장 깊은 사색을 나타내는 푸른색. 그러나 그 차가운 빛과 반대로 푸른 불꽃은 붉은 불꽃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자신을 불태운다.
..그는 이미 자신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술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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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p.
..계속 걸으며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몸과 마음이 합해진 것이 내가 아니라 몸은 그저 몸이다. 몸에게 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면 몸은 몸의 언어로 의사 표시를 한다. 그런데 마음이 그걸 곡해하면 마음은 그 원인을 몸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몸이 힘들어지는 찰나에 나쁜 마음들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77p.
..순례자 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걷는 동안 잠시 작가의 삶을 살 뿐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저 걷는 것. 원고지 1매, 1매를 써서 800매를 쓰는 것. 1킬로미터, 1킬로미터를 걷다가 800킬로미터를 걷는 것. 그저 글을 쓰는 것. 그 순간이 잠시 되어보는 것. 그때 걷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은 ‘나‘가 아니다. 직접 걸어보고 글을 써보면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을 잠시 살아볼 수는 있어도 걷고 나서도 계속해서 작가가 되거나 순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73p.
..나는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 대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감추지만 아낌없이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모든 감정은 똑같은 크기의 감정이 받쳐주고 있다. 나의 지옥과 상대방의 지옥의 크기가 비슷해 보일 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고 동시에 밀어내는 힘도 생긴다. 그렇게 서로의 지옥이 된다.

234~235p.
..그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연결되는 모습들을 보았다.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차별당하거나 거부당할 거란 두려움 없이 언제든 편하게 들를 수 있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느슨한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 환대의 공간. 공간을 지키는 데는 품이 많이 든다. 만약에 어떤 공간에서 마음이 편하고 많은 것을 얻어온 기분이 든다면, 그건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한 공간을 만들고 지킨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눈다는 마음 없이는 공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공간을 만들고 지킨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더 사는 것과 같다. 그 공간으로 사는 삶에는 기쁜 날도 있지만 슬픈 날도 있고 사실 대부분의 날은 지루하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지루함을 이겨내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공간의 삶도 우리의 삶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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