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p.
..당시의 과제 도서 중에서 말하자면 『죄와 벌』보다는 『국화와 칼』이 훨씬 재미있었다. 만약 베네딕트의 말처럼 서구 사회가 ‘죄의 문화‘이고 일본 사회가 ‘수치의 문화‘ 라면, 일본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인은 전세계에서 완전 범죄에 가장 적합한 민족일지도 모른다.

158p.
..슈이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용한 분노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간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휘감았던 붉은 불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의 뇌리에서 빛나는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이었다. 가장 깊은 사색을 나타내는 푸른색. 그러나 그 차가운 빛과 반대로 푸른 불꽃은 붉은 불꽃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자신을 불태운다.
..그는 이미 자신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술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361p.
.."분노는 3독 가운데 하나야."
.."뭐?"
.."한번 불을 붙이면 분노의 불꽃은 끊임없이 타오르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모두 태워버리고 말지."

398p.
..그는 어둠 속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고 있었다.
..네발이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호랑이가 된 것 같다.
..등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떠다녔다. 분노, 슬픔, 격분, 그리고 살의. 그것이 모두 자신을 향한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여러 마을을 습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니까.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는 언젠간 마을 사람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진짜 짐승이라면 그런 것은 의식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절망적인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530p.
..머나먼 바다를 건너온 바람처럼 자신은 지금 종착역에 도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 돌연 발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목적을 이루려는 의지를 지탱한 것은 뇌리에서 번뜩이는 푸른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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