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is - Ode To J. Smith
트래비스 (Travis)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다분히 취향 문제겠지만, 작년 겨울 Radiohead의 신보를 시작으로, 올 여름 Coldpaly, 이어진 Metallica의 신보, Maroon5의 아일랜드 버전 The script의 탄생, 그리고 지난 주 발매된 Oasis의 <Dig out your soul>까지 음악사까지는 모르겠지만 밴드사적으로 의미 있는 앨범들이 연이어 나오니 음반 매장 갈 일이 부쩍 잦아졌다. 예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행렬에 Travis가 가세한다는 사실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평균적으로 2년에 한 번 앨범을 발매하던 그들의 전례에 비춰 봐도 그렇고, 앨범마다 장르를 오가는 한국 국적의 가수도 아니면서 1년 만에 작곡과 녹음 작업을 마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올해 여름 한국의 펜타포트페스티벌까지 찾아 왔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Travis의 이전 앨범 <12 Memories>는 마치 해체를 예고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폐적인 자기 탐구에 빠져 있는 느낌이었고 후속 작 <The boy with no name>은 밝은 이미지를 과장하긴 하지만 다른 한 쪽의 극단에서 <12 Memories>에서 해 온 자기 검열을 연장하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밴드 음악으로서 나쁠 것도 없지만, 이 앨범들은 소설로 치자면 단편집이 아니라 연작소설들이라 곡과 곡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closer’와 ‘battleships’는 <The boy with no name>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 가면 이 두 곡의 멜로디가 겹쳐지고 만다.

J. Smith라는 가상인물을 내세워 인간 삶의 모습을 단편으로 전개하는 새 앨범 <Ode to J. Smith>는 전작 두 앨범과 비교하면, 어둠 속에 가려졌던 어렴풋한 형체가 자신의 실체를 밝게 드러내고서,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노래 한 번 해 볼까, 하고 외치는 것 같다. 여전한 소년의 감수성으로 세상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묻고 있지만 이제 제법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는 힘까지 생겼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기타 소리가 아닐까 싶다. 멜로디가 좋아서 오히려 맥 빠진 록이 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Oasis식의 노이즈들을 배경에 깔아 놓았다. 피아노는 여전하지만 전처럼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미트로프의 곡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두 번째 곡 ‘J. Smith’ 후반에 삽입된 합창은 몇 번 듣지 않고서는 납득이 안 갈 만큼 낯선 매력을 주는 반면 ‘Last Words’에 가서는 <The man who>에서 흘러넘치던 가식 없는 시적 감수성과 반갑게 해후할 수도 있다.

닉 혼비의 소설『Long Way Down』과 동명의 곡인 ‘Long Way Down’은 투신자살을 앞둔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을 익살스럽게 전달했던 소설처럼 박수 치며 따라하고 싶은 멜로디에 비관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역설로써 슬픔을 강조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Before You Were Young’은 상큼한 피아노 소리가 발라드 소품을 기대하게 하지만 이어지는 극적인 반전과 절규에 가까운 고음 처리가 꽤나 진지한 음악적 성찰을 마무리 짓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Metallica, The script, Oasis 등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 음원 시장더러 한 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의 좋은 음악을 내놓더니 비슷한 시기 Travis가 그 맥을 이었다. 이런 마당에 발매가 임박한 Keane의 음반까지 기대가 가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퇴근길이야 그렇다 치고 휴대용 CD Player만으로 출근길마저 흥겨워지던 때가 또 있었던가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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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 Lumley - She Talks In Maths: Interpretation Of Radiohead [재발매]
엘리자 럼리 (Eliza Lumley) 노래 / Beatball(비트볼뮤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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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고를 때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은 감독이 어떤 변형을 가하든 새로이 창작된 영화보다 튼실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미 원작을 본 경우라면, 그것이 어떤 낯선 형식으로 변화되었나, 혹은 얼마나 원전을 잘 살렸나 살펴보는 것이 영화 내용 자체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다.

비틀즈의 음악들을 다양한 장르로 해석하는 시도들은 변형이 가져온 재미와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거나, 역시 원곡을 따라 올 수 없다는 비틀즈에 대한 변함없는 찬탄을 내뱉게 만들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해석으로 원곡과는 다른 맥락에서 귀를 휘어잡을 때에도 역시 비틀즈의 원곡이 얼마나 완벽한 음악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대표적 넘버들이 재즈로 해석되어 발매되었다 했을 때,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라디오헤드의 곡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커버된 곡들이 High and Dry, No Surprises, Karma Police 등 라디오헤드 베스트 음반 격의 구성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원곡을 망쳐 놓았다는 원망이든, 이런 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놀라움이든 세평을 이끌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앨범의 운명이다. 데뷔 앨범의 실패가 대개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해서 오는 것과 반대로 이 앨범의 실패는 엄청난 비난 속에서 이루어질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패리스 힐튼이 존 바에즈를 부르겠다고 나선 모양새라면 그냥 그러나 보다 하고 말 일이겠지만.

라디오헤드 커버 음반의 주인공은 1999년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 OST에서 Honey Honey를 불렀던 영국의 뮤지컬 가수 엘리자 럼리Eliza Lumley다. 엘리자 럼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실연은 하지 않았지만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 <맨 오브 라 만차(Man of La Mancha)>의 OST에 참여하며 뮤지컬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재즈와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녀는 <She Talks in Maths>라는 앨범을 통해 이 둘에서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재즈와 록의 간극을 메워보는 실험에 착수한다. <Bends> 음반에 수록된 Black Star는 트럼펫으로 처리한 도입부에 이은 퀸텟 편성의 재즈 트랙으로 재해석되었다. 이 곡은 작년 미국 드라마 <본즈(Bones)>의 OST에 삽입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OK Computer>의 수록곡이자 Creep과 함께 라디오헤드의 대표적인 넘버인 No Surprises는 나른하고 주술적인 느낌의 원곡에서 나른함은 살리되 절제된 피아노 반주와 청량한 목소리로 원곡 못지않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외 다른 곡들에서도 역시 그녀가 행한 음악적 실험들은 상상을 뒤집는 악기 편성과 편곡으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음악적 변화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She Talks in Maths> 음반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되려 라디오헤드 음악의 해석 가능성과 변주의 폭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감탄하게 되니 이 여가수에게는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원곡의 종교와도 같은 지위에 길들여진 팬들의 눈높이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어 성공적인 앨범을 만들어낸 신인 음악인의 용기와 음악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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