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 Lumley - She Talks In Maths: Interpretation Of Radiohead [재발매]
엘리자 럼리 (Eliza Lumley) 노래 / Beatball(비트볼뮤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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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고를 때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은 감독이 어떤 변형을 가하든 새로이 창작된 영화보다 튼실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미 원작을 본 경우라면, 그것이 어떤 낯선 형식으로 변화되었나, 혹은 얼마나 원전을 잘 살렸나 살펴보는 것이 영화 내용 자체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다.

비틀즈의 음악들을 다양한 장르로 해석하는 시도들은 변형이 가져온 재미와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거나, 역시 원곡을 따라 올 수 없다는 비틀즈에 대한 변함없는 찬탄을 내뱉게 만들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해석으로 원곡과는 다른 맥락에서 귀를 휘어잡을 때에도 역시 비틀즈의 원곡이 얼마나 완벽한 음악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대표적 넘버들이 재즈로 해석되어 발매되었다 했을 때,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라디오헤드의 곡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커버된 곡들이 High and Dry, No Surprises, Karma Police 등 라디오헤드 베스트 음반 격의 구성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원곡을 망쳐 놓았다는 원망이든, 이런 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놀라움이든 세평을 이끌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앨범의 운명이다. 데뷔 앨범의 실패가 대개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해서 오는 것과 반대로 이 앨범의 실패는 엄청난 비난 속에서 이루어질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패리스 힐튼이 존 바에즈를 부르겠다고 나선 모양새라면 그냥 그러나 보다 하고 말 일이겠지만.

라디오헤드 커버 음반의 주인공은 1999년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 OST에서 Honey Honey를 불렀던 영국의 뮤지컬 가수 엘리자 럼리Eliza Lumley다. 엘리자 럼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실연은 하지 않았지만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 <맨 오브 라 만차(Man of La Mancha)>의 OST에 참여하며 뮤지컬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재즈와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녀는 <She Talks in Maths>라는 앨범을 통해 이 둘에서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재즈와 록의 간극을 메워보는 실험에 착수한다. <Bends> 음반에 수록된 Black Star는 트럼펫으로 처리한 도입부에 이은 퀸텟 편성의 재즈 트랙으로 재해석되었다. 이 곡은 작년 미국 드라마 <본즈(Bones)>의 OST에 삽입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OK Computer>의 수록곡이자 Creep과 함께 라디오헤드의 대표적인 넘버인 No Surprises는 나른하고 주술적인 느낌의 원곡에서 나른함은 살리되 절제된 피아노 반주와 청량한 목소리로 원곡 못지않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외 다른 곡들에서도 역시 그녀가 행한 음악적 실험들은 상상을 뒤집는 악기 편성과 편곡으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음악적 변화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She Talks in Maths> 음반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되려 라디오헤드 음악의 해석 가능성과 변주의 폭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감탄하게 되니 이 여가수에게는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원곡의 종교와도 같은 지위에 길들여진 팬들의 눈높이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어 성공적인 앨범을 만들어낸 신인 음악인의 용기와 음악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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