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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신호 ㅣ 단비어린이 문학
김명선 지음 / 단비어린이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 1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담벼락 신호」는 작가 김명선님의 책이다.
그림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림 또한 작가님이 직접 그리신 책.
글을 쓰면 그림이 그립고, 그림을 그리면 글이 그리워 둘 다 한다고 작가의 소개에 있었다. 능력자시다.
001
아주 패셔너블한 할머니가 아이의 뒷덜밍를 잡고 있는 표지와 속표지 그림.
이 할머니의 정체와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벌써 궁금해지는 그림이다.
002
작가의 말 중에서 발췌한 내용.
책 서두에 보면 '언제나 내 편이었던 할머니. 탁성례 할머니께'라는 헌정 문구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작가님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셨음직한 할머니의 사랑이 짐작됐다.
책을 처음 받아들고 이 문구를 보고 한동안 책을 펼치지 못했다.
이 헌정 문구를 보고도 울컥했는데, 나중에 나오겠지만, 전기밥솥의 장례식에서 근조 띠가 둘러진 그림을 보고,
또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한참을 울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세상에서 손녀가 태어나기 전에 늘 사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늘 사랑해주시고 표현해주신 분이셨다.
003
책의 목차는 웹툰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이 아주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또 디테일은 살아있어서 참 독특한 그림이다~하고 생각이 들었다.
004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 담벼락 신호
그중 마지막 장면이 참 따뜻하다.
매일 낙서가 그려진 담벼락. 벌처럼 지워도 지워도 다시 그려져 있는 암호와 같은 요상한 글자.
잠복 끝에 알게 된 그 낙서의 정체는 어린 장애 아이를 잃은 할머니의 애타는 신호였던 것이다.
독특한 차림새에 주변에서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라 생각하지만,
이 신호들의 모든 화살표는 할머니 집으로 향해 있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사랑하는 아들과 닿으려는 할머니의 노력에
기범이와 아빠도 이제는 두 팔 걷고 화살표를 그리고 있다.
005
두 번째 이야기, 전기밥솥의 장례식
사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내내
'버려야지, 10년이나 썼는데, 고장 난 김에 버리고 좋은 전기밥솥 하나 사시지.'
하는 봄이 엄마와 같은 입장인 주부의 마음이 나오다가도,
'10년을 한결같이 같이 한 밥솥인데, 하루아침에 새 걸로 바꾸다니. 아쉽다. 고쳐서 쓰지.'
하는 봄이의 마음이 서로 계속 싸웠다.
10년이 넘어 15년이 된 가끔 울고 있는 냉장고를 보면 당장 새 걸로 바꾸고 싶다가도,
10년 타고 다니던 차를 중고차로 팔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하고.
006
아차, 잠깐 한 눈판 사이에 버려지거나, 중고매장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결국 봄이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테이블에서 떨어질 땐 나도 모르게 꺅! 소리가 났다.
버려질 줄 알았던 밥솥은 고장 수리를 맡기려고 했던 봄이와 봄이 엄마 마음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일까?
그동안 아끼고 사랑했던 관계가 허무하게 끝나기보다는 조금은 고치고 움직이며 기억해내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수리가 되지 않아 다시 저 밥솥을 쓸 수 없더라도, 봄이네 식구와 주변 친구들이 밥솥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밥솥도 이제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은 없으리라.
'장례식'이라는 행사가 서로가 완전히 이별하고 나서 추억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시간이기보다는
황당하지만, 이별을 준비하고 서로에 대해 아낌없이 추억하고, 감사할 시간이 있다는 점에 이별하기 전 같이하는 '장례식'이 참 괜찮다,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07
세 번재 이야기, 해적 강철
이 그림이 참 재미있다.
보면 볼수로 묘한 그림이다.
할아버지와 웃고 있는 은호.
안 듣는 척 몸은 반대 방향으로 기울이고 있지만, 귀는 열려있는 성호.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해적 강철.
엄마, 아빠의 사정상 바닷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네에 오게 된 성호, 은호.
할아버지 집은 지루하고 할아버지에게서 풍겨오는 비린내는 짜증이 난다.
그러다 해적 강철에 대해 듣게 되고, 이 섬이 큰 보물이 숨겨진 섬이라 큰 물섬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처음에 성호는 은호의 탐정 놀이가 유치했지만, 밤에 속상해서 올라간 옥상에서 보게 된 장면으로 인해 은호의 탐정 수첩에 관심을 기울인다.
옆집 마당을 팔 때, 비밀 쪽지의 비밀을 발견할 때, 어찌나 가슴 졸이고, 흥미진진하던지.
강철의 정체를 알게 된 성호, 은호는 이제는 섬 생활이 지루하지 않겠지.
비린내 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자식 사랑, 손주 사랑도 알게 되겠지.
009
네 번재 이야기, 침묵 게임
읽으면서 짜르르했던 부분.
똥 스티커는 너무했다 그러면서 읽다, 욕심쟁이 현수를 꼬집어 주고 싶기도 했다가,
마지막에 느껴지는 감동.
너희랑 똑같아서 좋았다고 적어서 마음을 전하는 동우.
불쌍한 아이도 동정해야 하는 아이도 아닌
그냥 우리와 같은 친구라고 이해하고 친구들에게 말해준 나.
이제 동우와 나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친구가 될 것 같다.
010
다섯 번재 이야기, 달려라, 왕번개!
친구들 다 가지고 있는 자전거, 그거 하나 사달라고 하는데,
엄마가 어디서 흥정해서 사왔다는 고물 자전거.
처음에는 본 척도 않다가,
닦으니 반질반질 좀 괜찮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연습해서 잘 타게 되었지만,
친구들의 놀림에 내던져 버린다.
너무나도 이해됐던 시우의 이야기.
고물 자전거를 친구들이 놀려서 너무 속상해서 버렸지만, 9000원에 흥정해서 되사온 시우.
고물 자동차를 할머니와 자식을에 대한 추억으로 폐차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물건 하나, 추억 하나,
그 어떤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모습이 지금은 밉고, 낡고, 흉해도,
한때는 아름답고, 새롭고, 멋졌던, 그 모든 것들.
그로 인해 내가 누렸던 행복, 사랑, 감사함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