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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공해 ㅣ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오정희 지음, 조원희 그림, 강유정 해설 / 길벗어린이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읽어 본 책은
소설가 오정희님의 <#소음공해>를 그림과 해설로 농축시킨 그림책 소음공해다.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시리즈는

우리 성인이라면 학교 수업시간에 들어봤던,
우리 아이들이라면 앞으로 한 번 이상은 만나게 될
주옥같은 단편 문학들을 모아놓았다.
각각의 문학 작품들에다 품격있는 그림과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여
다소 어렵고 무거운 옛날 소설들임에도 다가가기 쉽게 느껴진다.
처음 이 책을 받아 훑어보고는
그림으로 보나, 두께로 보나, 이웃간 층간소음을 다룬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막상 읽어보니 요즘은 쓰지 않는 고어에 가까운 단어들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시', '험구', '삼동네'와 같은 단어는 나도 생소한 단어라서 읽으며 심각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주석이 달려있어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목요일마다 다녀오는 심신장애자시설 봉사활동으로 온몸이 녹초가 된 주인공은 한 달 이상 개념 없는 윗집의 드르륵 소리로 인해 이제 병이 날 지경이다.
아랫층에서 들려오는 부부싸움 소리도 모자라 윗층의 드르륵거리는 소리라니.
마땅히 이 피곤을 풀고 휴식을 즐길 권리가 있는데, 교양 없는 이웃들의 소음은 불청객마냥 주인공을 진저리치게 만든다.
게다가 윗집 여자의 뻔뻔스러운 반응은 결국 주인공을 폭발하게 만든다.


분노의 대상이 사는 이 집의 이 문이 열렸다 닫히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기에 마음대로 규정하고, 욕하고, 비난할 수 있었지만,
정작 이 문이 열리고 나면 내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결과가 놓여있다.
경고!!!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 어쩐다.........
뒤통수를 쟁반으로 맞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이 기억나는 6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파트에서 살던 나라서 주인공 아주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이해가 갔다.
자려고 누우면 위에서 쿵쿵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고3 마음이 초조해 앉은 책상 위에서 쿠당탕 쿠당탕 걸핏하면 싸우는 윗집 소리에 이사 가자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고,
아이들 겨우 재우고 나니 내 심장까지 쿵쿵거릴 정도로 크게 틀어 놓은 옆집 음악 소리에 부스럭 아이들이 깨기도 했고,
밤이고 새벽이고 짖어대는 아랫집 개들 때문에 분노에 차올라서 혼자 속앓이를 할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수시로 인터폰을 하고, 아랫집 부인에게 오지랖을 부리던 주인공의 모습에 나조차도 당황하긴 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주일 만에 아빠와 만나 목욕을 하느라 욕실에서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에 인터폰이 울렸을 때 정말 그 억울함과 속상함이 한 달은 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동생들과 흥이 올라 막 신날라치면 엄마에게 ‘밑에 집에서 뭐라고 할라!’하며 주의를 들었고, 두 아이 엄마가 된 지금, 역시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하는 소리 ‘뒤꿈치 들고 걸어야지~’하며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생각해보면 아파트라도 위아래옆집 할 것 없이 문 열어놓고 살던 어린 시절에는 층간소음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누가 사는지 다 알고, 내 집같이 드나들던 어린 시절 아파트에서는 뛴다고 야단맞기보다는 ‘어제 뭐 하느라 그리 신났냐?’, ‘집에 손님 오셨냐?’ 정도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면 주인공 아주머니도 그런 오해와 억측으로 본인과 윗집 여자를 괴롭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음 :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
공해 : 산업이나 교통의 발달에 따라 사람이나 생물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피해.
요즘 뉴스에서 만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 층간소음의 문제는 소음공해에 가깝다.
하지만 알고 나면 보일 것이다. 이웃의 ‘소음’은 ‘공해’가 아니라 그들 삶의 ‘흔적’이고, 내가 내는 ‘소음’은 ‘무관심’과 ‘무신경함’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은 초등학생이 그렸음직한 단순한 선과 단조로운 색감으로 그려진 그림만 보고는 오해하기 딱 좋았다.
이런 심플한 그림이 어쩌면 내용과 상황의 복잡미묘함을 더 극대화 해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