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믿는다는 뜬소문이 많은 것 같은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주로 개신교쪽에서 천주교를

성모 마리아 믿는 종교라고 음해를 하기도 하는데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무엇을 믿는지는 그 종교의 신자가 가장 잘 알겠지요? ^^

천주교는 당연히 예수를 우리 구세주 주님으로 섬기며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신앙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으로 공경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종파에 대한 질문을 굉장히 자주들 하시는데요.

예전에 올린 답변을 다시 또 올립니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차근히 읽어보시면 이해가 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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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님으로 섬기며 삼위일체의 신앙을 가진 종교가

크리스트교입니다.

크리스트교 또는 그리스도교라고도 하고, 한자식 표현으로 기독교라고도 합니다.

 

기독교는 원래 하나의 종교였지만 여러차례 분열을 거치면서 여러 종파가 생겨났는데

  천주교(로마가톨릭 또는 줄여서 가톨릭 Catholic), 동방정교회(오더독스 Orthodox),

개신교(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크게 세 종파로 나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들 목사님이 계신 개신교를 가르켜 기독교라고 하죠.

기독교는 상위개념이니깐, 개신교만을 지칭해서 기독교라고 표현하면 틀린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워낙  그리 쓰이다 보니 기독교=개신교처럼 되어버렸네요.

널리 쓰이지만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초대교회시절엔 지금과 같은 기독교내 다른 종파가 없었고

오직 하나의 거룩한 교회,  가톨릭교회만이 존재했습니다.

가톨릭은 보편되다는 뜻으로 기독교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가 바로 로마교황들이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2000년 역사의 성교회가 바로 가톨릭(천주교)입니다.

 

그러나 하나이던 초대 가톨릭교회는 동로마 ,서로마 제국의 정치갈등으로 분열될 때,

베드로의 후계자들인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이어온 로마가톨릭

동로마황제를 중심으로하는 동방정교회(오더독스)로 나뉘어집니다.

 

동방정교회는 우리나라엔 신자가 많지않아서 잘 안 알려진 종파입니다.

동방정교회의 중심이던 동로마제국이 망하면서 정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현재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세르비아정교회 등으로 사실상 나뉘어져

느슨한 연대 상태입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천주교)은 변함없이 오늘날도 단일종파로 이어져 오고 있죠.

 

그리고 16세기 무렵  천주교(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천주교가 세속화되고 부패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목사님들이 계신 교회는 개신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신교는 단일종파가 아니기때문에 그 안에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루터교 등등 수많은 내부 종파로 또 갈려있습니다.

 

구교라고 하면 보통 역사가 오래된 천주교(로마가톨릭), 정교회(오더독스)를 뜻하고,

신교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종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천주교는 흔히들 성당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신 곳이죠.

천주교는 로마 교황을 수장으로 하여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와 같은 질서정연한 교계제도를 갖춘 단일종파이기때문에 내부에 다른 종파가 없습니다.

 

천주교(가톨릭) 동방정교회(오더독스)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근본 교리로 내세우는 기독교 종파들이지만, 인간의 역사로 인해 갈렸기때문에 세부 교리들은 서로 다른 점들이 많습니다.

특히 수만 종파로 나눠진 개신교는 그 안에서 이단이다 삼단이다 시끄러운 편입니다.

 

(그리고 특히 한국 개신교는 유난히 극성맞은 편인데.. 큰 집인 천주교를 향해 마리아종교라고 음해하고,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 목사가 그러는 것이고

훌륭하신 목사님들은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를 헐뜯는데 열 올리지 않지요.

오늘날 천주교는 같은 그리스도교 종파인 개신교는 물론이고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들에 대해 존중하며 배타하지않습니다.)

 

 

* 그리고 흔히들 개신교교회라고 지칭하고, 천주교성당이라고 지칭하지만

이런 용어 역시 따지자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교회란 천주교회,개신교회 모두 쓸 수 있는 개념으로 신앙공동체를 뜻합니다.

미사(예배)를 드리는 장소로서 지칭할때는, 천주교회는 '성당',  개신교회는 '예배당'이라고 표현해야 올바른 것이죠.

하지만 이미 잘못된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익숙해져 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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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가톨릭 교회 (초대 기독교)

                                                  ↓                                     ↘
                    로마가톨릭 (서방교회)       ,                  동방정교회 (동방교회)
흔히 가톨릭 또는 천주교라 불림                      (단일종파라고까지는 말하긴 힘듬.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단일한 교계제도의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등등

단일종파)                                                                     대체로 국가별로 나뉘어져있어

                                                                                         느슨한 연합체적 성격을 띔)

  ↙

개신교

(로마가톨릭에서 갈려나옴.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가장 역사가 짧은 종파.

개신교는 단일종파는 아님.

내부에 루터교,  청교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등

수없이 많은 교단과 종파로 나뉘어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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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5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미 2007-10-15 15:26   좋아요 0 | URL
댓글 이건 공개.. 푸헤헤헤..

2007-10-15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문규 2007-12-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님 오신 성탄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글쓴이 임문규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 (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아멘”

글쓴이 임문규



임문규 2007-12-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님 오신 성탄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글쓴이 임문규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 (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아멘”

글쓴이 임문규



임문규 2007-12-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님 오신 성탄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글쓴이 임문규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 (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아멘”

글쓴이 임문규



임문규 2007-12-2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20문도가 모여 기도한 일(행 2:1-4).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는 곳에 마리아가 참석 했다는 것은 그녀도 이미 소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도 알았고(눅 24:16-19). 또 다른 문도들과 함께 모였으니 저도 한가지로 기도를 한 줄로 믿는다, 그때 그녀가 기도할 때 비로써 어미로서의 모정을 회복하여 동정녀의 몸으로 아들 예수를 잉태한 사실과 두 번이나 있었던 천사의 현몽 또 아들의 일을 방해한 일 등으로 슬픔에 잠겨 회개와 통곡으로 기도하고 회개 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성령 을 받았다고 확신한다(행 2:1-4).
은혜를 받은 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러니라. 고 하였는데(로마서 10:10), 성령 받고 입으로 침묵하는 자 는 마치 일제시대 때에 신사에 참배하여 주님 나는 비록 신사에 참배는 하지만 지금 나의 심령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한 배교자와 무엇이 다른가? 입으로 주를 시인 하고 복음을 전해야 했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을 지라도 그 은혜를 인하여 항상 깨어 있고 근신 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다시 마귀에 잡힐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성령을 받은 후에도 일한 기록이 전혀 없다. 성령 받은 자의 임무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다. 한 달란트 받아 일하지 않은 종에게 주님은 책망 하시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한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시며 심히 책망 하셨다. 성령도 받았고 동정녀의 몸인 당신(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예수가 그리스도인 줄을 깨달았으면서도 주님께 무익 하였다면 한 달란트 받아 게을러서 저주받은 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 이니라(롬10: 10).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는 회개의 기회조차 잃었다는 증거다.

과연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을까?
모자의 정을 어미가 끊었다면 이는 어미가 스스로 자식을 버린 것인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부모 자식간의 정은 천륜(天倫), 곧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칭찬한 대목 대목을 살펴보았을 때 마리아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를 동정녀의 몸으로써 친히 낳은 사실을 스스로 망각하여 망령된 그 모든 행위는 멸망과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천주교 신부에게 묻습니다.
1). 이 세상 그 어떤 어미가 자식이 처참한 형벌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기절하지 않고 무사 하였다면. 그러한 모성애를 무어라 설명이 가능 한가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대견 하게 생각 함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또 다른 사람들은 향 품을 준비하여 예수의 장사를 위하여 무덤으로 달려 갈 그 때에 (로마서 10:10). 친모인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요?

3). 죽은 아들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었단 말입니까(마27:56-61)?

4). 예수께서 유대에서 피하여 갈릴리 고향에 오셔서 전도 하실 때에 그의 형제들이 예수 형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빈정 되며 쫓아내려 하였다. 왜냐하면 가족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 모두는 자식들을 잘못 교육한 어미 마리아의 책임이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사역에 도울 길을 모색하고 앞장서서 치마 바람 이라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세상의 보통 수준의 어머니라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의 형 예수는, 너의 오라비 예수는, 천사가 현몽 하여 낳은 아들로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니 너희는 믿고 또 믿으라, 그리고 그의 일에 돕고 따르라, 고 교육하고 또 교육하여 자녀들을 밖으로 내몰았어야 마땅하거늘 마리아는 오히려 다른 자녀들(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예수를 미쳤다고 여겨 그리스도의 사역을 앞장서서 방해하고 훼방했던 장본인이 오늘날 예수를 대적하는 왕 마귀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흠모의 대상이 된 이 불행은 곧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리아가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라고 마리아를 호도(護導)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을 찾을 수가 없으니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마귀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갈보리 산 언덕 위에 높이 서서 지금 예수를 비웃고 조롱 하고 서있는 지도 모른다.
천주교의 정문에 가보면 마리아의 석상이 뱀(원 죄를 상징)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뱀을 밟아도 예수께서 밟아야지, 최후의 심판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설뿐. 회개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도 특권이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저의 친척 중에 열 열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마리아가 어째서 기도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본 낱말 사전을 지칭하여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마리아의 청을 덜어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반문 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께 부탁하여 그 기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 뜻은 마리아는 지금도 천국에서 예수님 보다 위에 계셔서 주님의 뜻을 꺾고 지옥에 갈 자도 마리아의 빽 이면 언제라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도 우리와 동일한 주님의 피조물이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
마리아도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임이 분명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갈 곳이 어딘가?
천주교에서 절대자로 추앙을 받으며 성모라 불 리는 기도의 대상 마리아는 성경으로 조명하여 볼 때에 주님의 피조물로 성모(聖母)가 될 수 없으며 우리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하니 회개 하지 않은 그녀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또한 성도가 호칭할 때는 성모라 부르지 말고 예수의 모친. 또는 육신의 어머니라고 (롬 1:3) 불려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는 구원이 없는 사이비 종교요,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 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 자매 모친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도님들 그만 속고 속히 나오십시오.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에게 빌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도 마리아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
(주님 오신 성탄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글쓴이 임문규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는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요?

성모(聖母)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리아는 과연 성모(Holy Mother) 인가? 또 그녀가 확실히 구원은 받았을까?
천주교에서 절대 신으로 추앙하며 성모라 불리는 마리아는 과연 존경과 경의를 표할만한 이유와 또한 그만한 근거와 가치가 있는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때로 개신교 목사님들도 "성모 마리아" 라고 칭(稱)하는가 하면 설교 중에 가끔 그녀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처녀의 몸으로 그녀 자신이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 두려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인하여 감격의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었다.

눅 1:46-47에서 그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
보라 이제 이후로는 만세에 나는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한 그녀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양육 하였으며, 또 그의 다른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였고, 또 주님의 사업에 무엇을 얼마나 도왔고, 헌신 하였기에 천주교 에서는 마리아를 주님 이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만한 존경과 경의를 받을만하며 과연 성모라 불리기에 합당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낱말 사전 편저: 엄 도성/김용일 1982/3/30 초판 1982/12/30에 마리아에 대하여 기술 하기를 저는 성품이 온공(溫恭)하고 은인성(隱忍性)이 풍부하고 또 신앙심이 돈독하니, 라고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는 일에 대하여(눅 1:30).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일에 대하여(마 2:14-21).
3)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고 애쓴 일에 대하여 눅(2:41-45).
4) 혼인 잔치에서 행한 일(요 2:3-5).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마 12:46-50).
6) 예수가 십자가에서 정사(釘死) 하심을 목도 한 일에 대하여 (요 19:25-27).
7) 예수께서 부활 후 한번도 모친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았던 일. (요 19:27).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에 사도 요한의 봉양을 얼마 동안 받았던 일 (요19: 27).
9) 마가의 집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에 참여 한 일(행 1:14).
함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등 아홉 가지 내용을 예로 들어 마리아를 칭찬 하고 있다. 과연 칭찬을 받을 만 한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져 그의 당(當). 부당(否當)을 따져 짚어 보고자 한다.

1.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높이고 있다. (눅 1:30).
동정녀의 몸으로 만 왕의 왕이 되실 분을 잉태 하였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 세상 그 어떤 임산부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도 태몽 꿈을 꾸면 길흉을 알려고 점을 치려 다니는데, 남이 그 꿈에 대한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길몽입니다, 라 고하면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기에 아들 꿈 이라면 더욱 그렇다.
눅1: 30-35절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현몽하는 내용이다.
천사의 말은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였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을 때
그 천사의 대답은 어떠하였는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지 않았는가?
이 이상 더 좋은 태몽 꿈이 어디 있겠으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런 경우는 기뻐할 일인데, 마리아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 세상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때의 높임은 무의미한 것이다.

2.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일 대하여 (눅2: 14-21).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마 2: 13)하였고. 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 하여, 일러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 19-20) 라고 하엿다.
만 왕의 왕 이 될 그 아들을 그 밤에 헤롯이 죽인다고 확실히 현몽하여 알려 주었다,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는 꿈도 그 꿈을 해석하여 해석 여하에 따라 바른 처신을 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思考)인데, 하물며 천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꿈은 생시보다 더욱 확실한 꿈이거늘 어찌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받은 확실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로써 또 어머니로써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란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의 표본이거늘.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과연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 할 것인가?

3, 마리아가 예수가 12살 때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잃고 찾느라 애쓴 일에 대한 칭찬(눅2: 44,45).
이 말씀을 읽으면 나는 세 자녀의 아비로서 비분강개(悲噴慷慨) 함을 금할 수 없다, 마리아란 여인은 참으로 한심한 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惻隱)함을 느끼게 된다.
유대사회는 남자가 13살이면 성인으로 취급 한다고 한다, 아직 12 살밖에 안된 예수는 미성년이다, 설혹(設惑) 예수가 성인이라 하여도 하루 종일 함께 가는 길인데 가족이 함께 다 잘 동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서로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종일 길을 행하며 부모로서 자식생각 한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어떻게 무심히 걸었단 말인가? 사람이 먼 길을 걸을 때는 물을 마시며 때마다 끼니도 먹어야 할 터인데, 어미와 아비는 먹고 마시면서 이제 겨우 12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자식 생각을 종일 하지 못한 모정이 이 땅에 또 있을까? 마리아는 하루 종일 자식은 안중에 없이 동행들 과 노닥거리며 걷다가 저녁 때에야 비로써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 하고 친척과 동행자들에게 우리 예수 못 보았오? 우리예수 못 보았오 (누가복음 2:44-45). 라며 예수를 찾고 있었다. 그 후 사흘 만에야 비로써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아기 예수를 찾으려 성전으로 바로 갔으면 하루면 만났을 텐데, 삼일 후에야 성전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틀을 찾느라 낭비한 것이다. 왜 근심하고 찾았을까? 그녀의 심중에 예수가 누군지 잊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예수를 밖에서 보고,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나 이틀이나 헤매고 찾았든 것이리라.
사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났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을 찾으셨나이까?
주님의 이 응답을 그 양친(兩親)이 깨닫지 못하였다. 아울려“내 아버지와 내가(어머니가)근심하였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심정은 통곡 하고 싶은 심정이 이였으리라.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라고 반문하신 것은 "어머니시여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 한 장차 이 세상의 메시아가 될 줄을 왜 모르시나이까? 천사가 현몽하였던 일을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베어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 하신 것이다, 먼 여행길에서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도 무관심한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12살 밖에 안 된 자식을 하루 종일 거두지 못한 부실한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아마 이런 일이 오늘의 사회에서 벌어 졌다면 부모들은 감옥(jail)에 가야 할 사건이다.

4.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한 일 (요 2:3-5).
이 이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하여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 기사를 통하여 미리아의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한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냥 하면, 그녀가 처음 아들 예수를 잉태 하였을 때 찬양 시를 지었던 그 기쁨과 믿음 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보통의 세상 어미님들 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 증거가 유월절 사건에서 이미 확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지금 내 아들 예수가 과연 메시아인지를 감히, 긴가 민가를 시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서 주님을 의심 하였든 것과도 흡사한 상항이다(마태복음 11:2-5). 만약에 아들이 메시아인 것을 믿었다면 혼인 잔치 집에 술이 있고 없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혼인 잔치 집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는가(참조 시편 45:15; 막2: 19) 그 상황을 지금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술보다 더 좋은 것으로 잔치 집의 흥을 돋우어 주실는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마리아가 잔치 집 흥취에 관여한 일은 예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며 실수이다.
주님께서 모친 의 뜻을 들어준 것은 아직도 아들이 만 왕의 왕으로 또 만민의 구세주로 오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어머님께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자 어머니의 청(請) 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異蹟)을 보이신 것이 리라.

5. 예수를 만나려고 찾아갔다가 당 한일(마12: 46-50).
예수를 만나려고 마리아가 예수의 여려 동생들을 데리고 찾아 갔다가 당한 일이 과연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주님께서 왜 그렇게 질문을 하시듯 답을 하셨을까요? 그의 모친과 동 생들은 예수를 미친 줄로 알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요량 이였던 것입니다(마가복음 3:21).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설령 가족이라 하여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10: 36).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미쳤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너희 형님 예수는, 너희의 오라비 예수는 이 땅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니 너희 모든 형제들은 나가서 그를 돕고 그의 방패막이가 되라고, 타이르고 육박 질러서 밖으로 모두 내 몰아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확실한 현몽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동정녀의 몸으로 낳은 그 아들 예수를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오히려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사사건건 주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기에 예수는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렇게 대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상실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6.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정사하심을 목도한 일 (요19: 25-27).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리아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 이 세상 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성 애를 가진 어머니라면 뛰어 나가 어느 로마 군병 한 사람에게라도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애걸 또는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혼절 할 일인데,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도 그가 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서? 아니다 마리아는 이미 악의 세력에 붙잡혔으므로 그녀는 이미 모성이 상실 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천주교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대견 서럽게 여김은 어쩐 일인가?

7.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 한번도 모친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친의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일까요? 그래서 부활 하신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된다고 판단하신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친께서는 지금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을 분이기에,“보소서 아들이니 다”하시며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으실 분이기에, 나중 오순절 날 성령을 받으셔야 믿으실 어머니에게 구태여 지금 만나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 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들(예수)를 만나지 못한 마리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

8. 예수께서 정사(釘死) 하신 후 얼마 동안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은 일 (요 19:26,27).
모친께서 아직도 활동하실 연세인데 예수 사후에도, 또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한 일의 기록이 없다, 너무 늙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 처형 당시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실성(失性)한 때문일까요? 아니다. 그녀가 늙었다 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복음 사업을 방해하며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실성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봉양 받고 잠잠 했든 그녀의 입은 곧 주님을 욕 뵈는 입이요, 침묵의 입으로 주님을 부인 한 것이요, 나아가 스스로 마귀와 짝하는 삶을 택한 것이리라.



글쓴이 임문규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와 기독교가 같은 성경을 읽으므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두 종교 신앙의 차이에 대해서 공부하고 아는 사람이 많지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기독교는 다른 종교입니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같은 성경(기독교와 천주교가 공유한 성경 66권외에 천주교는 외경 7권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을 읽으며 정반대로 믿는 교리가 너무 많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천주교는 성경 66권 외에도 외경이나 전승이나 유전이 모두 다 진리라고 믿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성경 66권 만이 하나님 말씀임을 믿습니다.

 

천주교는 교황이 신앙이나 윤리도덕의 선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교리로 믿습니다. 한마디로 교황의 선포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교황도 사람이므로 신앙이나 윤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 역사를 통하여 교황의 오류는 수도 없이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천주교는 신부에게 사죄권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가 죄를 사해주고 보속이라는 것을 시킵니다.

기독교는 사람은 죄를 용서해 줄 수 없다고 믿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은 죄도 없고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직접 회개하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죄를 씻음받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창조주의 어머니, 성령의 배필, 무염시태., 평생동정녀, 몽소승천, 기도의 중보자, 교회의 어머니, 구원으로 인도하는 분...으로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여 믿고 마리아가 성령님이 하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마리아상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는 우상숭배의 행위를 합니다.

기독교는 마리아를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어머니가 없습니다, 성령님에게는 배필이 없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죄인, 동정녀로서 예수를 낳은 이후에 요셉과의 부부관계를 통하여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 누이들을 낳음, 죽어서 장사됨, 기도의 중보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 교회에는 어떤 형상도 세워 절하고 기도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천주교는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만한 공로가 부족한 사람들이 연옥이라는 곳에서 남은 죄를 불로서 고통받고 정화받는 장소라는 곳으로서 성경에는 연옥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고린도서에서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 상상하고 추측하고 비약하여 만든 가상의 장소가 연옥입니다. 언제 연옥에서 천국으로 구원받을 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연옥에 있다고 추측되는 천주교를 믿다가 죽은 자들을 위하여 헌금하고 위령미사를 계속 드리는 것입니다.  불신자로 죽은 자들을 위하여도  헌금하고 기도하며 지옥을 면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국과 지옥 두 장소 만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예수를 믿지않은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심판받고 지옥에 들어 갑니다.

 

천주교는 예수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어도 착하고 선하게 살면 구원받을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예수 외에는 어느 종교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정반대로 가르치고 믿는 천주교와 기독교 중에서  어느 쪽이 진리를 좇고 있다고 옳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척도인 성경말씀 밖에 없습니다.

 

이 두가지 상반되는 신앙이 같은 것이라고 억지로라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된장과 똥이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모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를바 없습니다.

 

이 두가지 상반되는 신앙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양심이 말한다면 어느 누구든 성경대로 믿고 가르치는 진리를 좇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참된 그리스도를 섬기는 교회에 함께 하셔서 성경말씀의 진리를 좇게 하시고, 참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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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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