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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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건 음악이건 컴필레이션이라는 모음집 종류들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여러 작가의 작품집이건 한 작가의 베스트 작품집이건 간에, 대부분의 경우 히트곡의 단순한 모음이거나 유명 작품들 위주로만 꾸며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이 번역되지 않았다든가, 미발표 보너스 트랙이 들어 있다든가 하는 이유)를 제외한다면 가능한 모음집은 잘 사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는데 특정 목적을 가지고 새로 만들어진 모음집이라면 절대적으로 환영한다. (가장 쉬운 예라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노래가 들어 있는 사운드 트랙 같은 것들이다.)

마이클 셰이본이 기획하고 작가로도 참여한 『안 그러면 아비규환McSweeney’s Mammoth Treasury Of Thrilling Tales』은 위에서 말한 특정 목적에 딱 어울리는 작품집이다. 제목처럼 오싹한 이야기를 테마로 쓰인 작품집이다. 참여 작가들의 면면은 굉장히 화려해 공포, 추리, 범죄, 역사, 판타지, SF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관통하는 주제인 오싹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장르’ 뷔페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모음집의 가장 큰 장점이겠지만 최소한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물론 그 장점만큼 모든 작품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내판의 제목이기도 한 닉 혼비와 데이브 에거스, 셔먼 알렉시 등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책의 말미에 보면 제작 노트가 첨부되어 있는데 이게 꽤 흥미롭다. 함께 실린 그림들과 함께 읽다 보면 이 책의 기획은 숭배하던 문학에 비해 푸대접을 받았던 펄프픽션(값싼 갱지로 만들어진 통속 잡지인 펄프 매거진에 실린 소설로 주로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장르소설이 실렸다)에 대한 재조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표는 현재의 유명 작가들이 단편 장르문학을 쓰는 것으로, 과거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책의 제목은 둘째치고라도 펄프픽션이라는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만든 표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작 노트에 있는 그림이 책의 원래 표지인데 검은 줄로 그림을 다 가려놓아서 무슨 그림인지도 알 수 없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에 있어서는 가볍고 통속적인 펄프픽션이라기보다는 유명작가들이 작정하고 써낸 이야기들인지라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쉽게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런저런 소소한 불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단편집 자체가 너무 반갑고 즐겁다. 단편과 장르를 즐기는 독자이고 단편 자체를 구경하기 힘든 요새라면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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