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의 지혜>를 리뷰해주세요.
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앤디 메리필드의 『당나귀의 지혜』에 처음부터 매혹됐던 것은 아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서랍장 위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던 이 책에 문득 눈길이 멈춘 것은, 당나귀 그리부예와 함께 길을 나선 앤디 메리필드의 여행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당나귀 모데스틴과 떠난 세벤느 여행 기록인 『당나귀와 떠난 여행』에서 얼만큼 기인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의 『당나귀와 떠난 여행』은 그의 애인 패니 오스본을 미국의 남편 곁으로 떠나보낸 후에 밀려드는 상실감을 고스란히 안고서 구교와 신교의 종교 분쟁 중심지였던 프랑스 남부 세벤느 지역을 여행한 기록이다. 이 여행의 믿음직한 동행으로 그는 홀로 세벤느의 자연을 여행하기 위해 꼼꼼히 준비한 행장을 대신 져줄 암탕나귀 모데스틴을 선택한다. 스티븐슨의 여행에서 당나귀는 길벗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의 주체인 스티븐슨의 객체였다.

그러나 ‘그리부예’라는 정다운 이름을 붙여준 당나귀와 함께한 메리필드의 여행에서는 당나귀가 줄곧 예찬의 대상이다. 이 여행은 그리부예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못한다. 이 여행길에서 당나귀 그리부예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과 한 쌍을 이루는 동물이 하나씩 있다는” 메리필드의 “동물 자아”로 기꺼이 영혼의 짝꿍이 되어준다. 그 신비로운 침묵과 깊은 눈길로.

메리필드가 진정한 자아를 찾아 푸른 풍경 속을 그리부예와 더없이 순수하게 걷기 전에 그는 뉴욕의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공적인 소음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게 인파에 치이며 일터를 향해 종종걸음 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터에서는 물질적 부를 보장해 주고 타인의 위에 설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쟁탈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고, 그로 인해 쇠잔해진 기력과 신경을 견디지 못하고 녹초가 된 몸을 잠자리에 뉘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이런 일상의 반복. 나의 내면에서 움트는 완전한 행복을 찾기보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의지해 말초적인 기쁨을 이끌어내는 일에 골몰한다.

언제 남에게 빼앗길지 모르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자리와 그 덕분에 누리는 욕망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내 시선을 끊임없이 외부로 향해야 한다. 그 자리의 내 정체성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까지 타인의 우호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민하게 반응한다. 때로는 가식적인 행동으로. 이를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따라 개인의 사회성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까.

『당나귀의 지혜』를 읽을 즈음 내 말들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들었다. 또 저렇게 듣는 타인의 시선에 날카로워지는 내 신경이 못마땅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말과 말이 조응하지 못한 채 서걱이다가 낱낱이 흩어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황망한 눈빛, 엇갈리는 마음, 갑자기 낯설어진 사람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이는 어떻게 들을까, 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인데도 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럴 때 나는 ‘말을 줄일 것!’이라고 자동 경보를 울린다. 지금은 침묵해야 할 때라고. 이 방법은 대개 주효했지만, 언제 어느 때고 불시에 외로움이 깃든다.

메리필드와 당나귀 그리부예가 침묵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푸른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침묵에 공명하는 자연의 소리는 예민한 신경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고요한 평온함을 조금도 해치지 않는다. 내 말을 해석하는 타인의 말이 난무하지 않아도 외로움이 스며들 여지는 없다. 내 말을 신비로운 침묵으로 감싸 무슨 말이든 깊은 눈길로 온전히 이해해 주는 당나귀는 평화를 선사한다. 그렇다, 나도 이곳을 벗어나 당나귀와 푸른 풍경 속을 걸어가고 싶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내 의도와 다르게 전해질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안심시키는 당나귀의 침묵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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