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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ㅣ 세계사 시인선 15
이연주 지음 / 세계사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이연주의 시 세계는 썩어가며 악취가 진동한다. 그것은 썩어가는 세상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이미 썩은 세상에 대한 묘사처럼 보인다. 가난과 그 부패한 삶의 냄새는 이연주에게 삶 그 자체이다("지독한 삶의 냄새") 이미 망할대로 망한 세상에서의 삶에 무서울 것이란 없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차라리 구원처럼 느껴진다는 그 삶은 죽음보다 무겁다. 죽음은 삶과 달리 "부패의 냄새가 없"고 삶과 죽음 사이는 "쉽고 간단"하다. 굶어죽기 직전의 한 남자가 "한 끼니의 식사를 제공해 준다면 그 대가로 저 강물에 빠져 죽"겠다고 제안하는 아이러니.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 속에서 교환되는 것은 삶과 죽음이 아니라 죽음과 죽음이다. 살아있는 자들이 삶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을 "돼지코의 진주"라고 명명하는 이 시인은 "파동의 꼭짓점에서" 도달할 고요, 흘러들어간 모든 폐기물들과 썩은내들을 품어줄 바다에서의 죽음을 소망하면서도 끈질기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연주는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매일의 죽음을 견디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서서히 죽어가는 방식으로서만 삶을 연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