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없는 삶 - 나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스티안 베르브너 지음, 이승희 옮김 / 판미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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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버블의 시대, 혐오로부터 우리를 구할 우연의 민주주의

(괄호에 표시된 쪽수는 전부 혐오 없는 삶으로부터 인용된 것입니다)

 

지금을 혐오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난민을 향한 혐오,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 여성과 다른 인종을 향한 혐오는 우리 사회의 유대와 결속을 약하게 할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쩌면 혐오는 한낱 개인의 정서에서 출발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의 결과가 불러오는 폭력과 전쟁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혐오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혐오 없는 삶의 저자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접촉 가설을 혐오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직접 만나보면 혐오의 대상-이었던-사람을 더 이상 혐오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믿기 힘들 정도로 간단한 혐오의 해결 방안인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기자로서 자신이 목격한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이주민과 개인적으로 친해짐으로써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극복한 사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극복한 사례, 나치와 친구가 되었던 사례 등등


그러나 앞서 혐오를 극복한 사례를 제시했다고 요약했으나 그 사례들이 개인적으로 친해진 사례일 수는 있어도 혐오를 극복한 사례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르비아 이주민들을 혐오하던 하랄트 헤르메스는 특정한 세르비아인들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지만 롬족이 여전히 위험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79). 그리고 존 귄터 딘은 나치인 슐리케와 친해지는 데 성공하지만 그의 나치즘적 성향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슐리케는 딘에게 그저 좋은 나치”(161)일 뿐이다. 이런 지점들에 주목해 보건대 베르브너가 제시한 사례들은 혐오를 극복한 사례가 아니라 혐오를 저편에 묻어두고 사적인 관계가 진행될 수 있었던 사례에 속한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연하고 사적인만남으로부터 비롯된 친교를 혐오를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혐오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그 누구도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서 특정 집단을 혐오하게 되지 않는다. 국가, 자본주의, 군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등 수많은 사회적 이데올로기들에 의해서 혐오는 발생한다. 그렇기에 혐오의 해결책 또한 (그것이 제도화된 것일지언정) ‘만남이라는 사적인 층위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층위의 투쟁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혐오를 개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할 경우 우리는 해결(화해)의 주체가 될 양극단의 평등한사람들의 존재를 전제로 삼게 되는데 혐오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소수자들을 향해 있다. 그러나 저자는 혐오를 동등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것으로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우연의 힘을 강조했던 우연과 민주주의라는 챕터는 몹시 재미있었다. “추첨을 통한 선출은 민주주의의 본성과 잘 맞으며, 투표를 통한 선출은 과두정의 본성과 잘 맞는다”(192쪽에서 재인용), 민주주의와 우연성을 연결짓는 몽테스키외의 말도 인상깊었다. 생각해 보면 훌륭하고 잘 교욱받은사람들이 주도하는 정치는 어디까지나 따옴표를 치는 한에서만 가능하며 따옴표 밖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바야흐로 필터 버블의 시대다. 양극화된 미디어의 관점과 알고리즘의 발달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평소 관점에서의 정보만을 습득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SNS 친구를 맺고, 그들이 올린 게시글()을 보게 된다. 우리의 타임라인에 타자는 없다. 또한 알고리즘은 평소의 우리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여 기존의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우리의 타임라인에 보여준다. 나와 다른 것,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수많은 필터에 걸러져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나의 세상 밖으로 쫓겨난 지 오래다.


게다가 코로나 19의 세계적 전파는 사람들 간의 우연한 접촉을 어렵게 만들었다. 우연성이 초래하는 낯선 것과의 만남은 점점 그 빈도를 줄여가고 있다. 반면 사람들의 생활 기반이 오프라인 세계에서 온라인 세계로 전환되면서 필터 버블은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듯 한없이 좁아지기만 하는 시야와 그 시야 너머로 보이는 좁은 사회에서 베르브너가 제안하는 우연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더 넓고 북적북적한 광장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베르브너가 경험하고 제언했듯이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이주민 자체에 대한 생각, 나치즘 자체에 대한 생각, 동성애자 혐오 자체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생각을 바꿔 나가는 아주 사적인 관계에서의 정치적 쟁투를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쟁투야말로 아무리 작은 것일지언정 혐오를 묻어두는 것이 아닌 혐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관계맺기의 방식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적과 친밀할 권리만큼이나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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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2021-06-21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답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작가라는 한 ‘사람’이 연구한 수많은 소중한 가치가 담겨 있을 뿐입니다. 타인의 의견에 이렇게 조목 조목 다 따져서 틀렸다 틀렸다 틀렸다 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내는게 정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