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야, 공차자
김용택 엮음 / 보림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이 동시집은 전라북도 섬진강가에 자리한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 다니는 열 여덟 학생의 동시를 이 학교 선생님이신 김용택 시인이 모아 펴낸 것입니다. 시골의 정서와 동심의 세계가 때묻지 않은 채 처녀지 같이 남아있는 글들이 실려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펴낸 시인 김용택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생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들이 없는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 어떤 세상의 가치도 나를 이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아이들과 농부들에게 세상의 희망이 있음을 믿고 살았다. 아이들은 나를 늘 세상의 부질없는 욕심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 것을 가르쳐 주었고 농부들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다운 삶인가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무슨 백일장을 해서 추려모은 글도 아니고 열 여덟 전교생의 글을 다 모은 것이니까 당연히 문학성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아니 그런 문학성을 애초부터 추구하고 만든 글도 아닙니다. 독자는 그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으면 기대가 깨질 것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마암분교 어린이들의 글을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5학년 윤귀봉 어린이의 '개미'라는 동십니다.
   '오늘 개미가 / 이사를 갔다.  오늘 잘하면 /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비 오니까 / 준비를 해야지.  개미는 티브이 / 일기 예보보다 / 확실할 것이다.  우리 엄마 말씀이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이런 것을 알까요.'
   이번에는 2학년 서동수 어린이가 지은 '산'이라는 십니다.
   '산산산 산은 누구보다 크지요. / 산산산 엄마처럼 / 아기를 업지요 / 나무는 아기 / 산은 엄마.'
   졸업생 박진희 어린이가 쓴 '이슬'이라는 동십니다.
   '이슬이 / 풀잎 위에 / 잠자고 있다.  이슬은 / 풀잎 위에 잠을 자도 /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새벽에 / 풀 잎 위로 몰래 내려와서 / 풀 잎 위에 잠을 자는 이슬. (박진희 졸)
쓸쓸한 촌'
   또 5학년 박초이 어린이가 쓴 '쓸쓸한 촌'이란 십니다.
   '사람들이 / 다들 도시로 / 이사를 가니까 / 촌은 쓸쓸하다.  그러면 촌은 운다.  촌아 울지마.'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웠습니다. 나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하는 자괴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엮은 김용택 선생님은 저보다 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책 서문에 실린 김용택 선생님의 그 걱정어린 글을 소개하면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이와 같은 아이들의 글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작은 학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 어떤 선생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과 같이 글을 쓰려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이 아이들의 글은 내 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자유와 사랑, 더할 수 없는 이해와 부드러움, 그리고 불간섭의 아름다운 인간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단언하건대 농촌 아이들의 정서가 그대로 담긴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시대가 된 것이다. 농촌 아이들 세계도 세기말에 다다른 것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