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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브, 참 오래 미뤄뒀었다.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우리를 놀라게하는데다 손을 놓을 수 없는 재미까지..."
그녀의 소설을 언급할 때마다 으례 따라붙는 현란한 수식어와, 퇴고의 과정없이 일필휘지로 작품을 써 낸다는 천재적 글쓰기에 몇 번이고 마음은 동했지만, 아직도 작가라면 '온갖 고민에 휩싸여 원고지를 북북 찢어대는' 지진아적 인상에 사로잡힌 탓인지, "이 나이에, 그만한 작품들을, 일필휘지로?" 라는 의심에 차 번번히 일독을 미뤘던 것.
어디 한 번 읽어볼까? 로 시작했지만, 역시 훌륭해! 로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저 모든 수식어 속에 안락히 몸을 파묻고 나 역시 박수나 쳤으면 될 일을.
<살인자의 건강법>, 살인자가 건강하게 살아남는 법?
가슴에 살인이라는 주홍글자를 달고서도 끝내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패기에 찬 젊은 기자와의 인터뷰. 불꽃 튀는 내공의 진검승부를 기대했던 건, 아무래도 내가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일까. 각각의 기자를 별 되먹지 않은 논리로 내치고, 마지막 기자와 인터뷰를 시작할 때, 난 포기했다. 그냥 그랬다 치자, 진짜는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노작가의 여성혐오적 발언에서부터 이미 그의 이유란 여자로부터 왔으며, 따라서 여기자와 최후의 한판승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반전이라고? 이렇게 빤한 스토리가? 여자를 성녀 아니면 창녀로 구분짓는,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마저도 구제하리라는 아, 언제적 캐캐묵음인가 말이다.
치료감호가 필요한 정신병자가 어쩌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지, 작가는 왜 이런 살인자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설정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순전한 나의 과문 탓인가. 작품 속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지성들이 언급됐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고? 도대체 너의 이데올로기는 뭐냐고?
아멜리 노통브가 주인공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설정했을땐 분명 깊은 뜻이 있었겠다. 단순히 동일인인 살인자의 과거를 추적하기 위한 구조적 설정으로서 만이 아닌, 작품 속에서 <허위>라고 이름붙인 독자와 평단, 문학계에 대한 최전방 저격수로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주인공의 지위를 쓸모로 했으리라는 것.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일관성있게 횡설수설대는 인터뷰의 어느 지점에서, 독설과 설전의 반향인 자성과 깨우침의 계시가 오는지, 아, 어쩌라고.
기자가 발표하고 살인자가 인정하는 공소사실은 또한 추리소설의 면모로써 적합한가. 막판까지 피의자를 몰아붙이던 의기양양한 여기자는 왜 또 다른 살인자가 되어, 미친 노인네의 편집광적인 인생에 공범으로 휘말려든 것인지. 교살했건, 당했건 결국 여자는 동일한 희생양이 되었고 무릎으로 기던 미친 노인네 홀로 승자가 되지 않았나. 은유는 필요없고 그냥 읽으라면서?
최근 들어 작가의 명성에 대해 이렇게 실망스럽고, 불유쾌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책장에서 날 쏘아보는 아멜리 노통브. 호기심과 의구심에 사로잡힌 채 그녀의 작품을 읽게 될 날은 아마 또 오겠지만, 그래서? 이건 창조적이지도, 독특하지도, 놀랍지도, 더구나 재밌지도 않았다고!
그래서?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