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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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읽은 중국소설 가운데 떠오르는 일화 하나.
 음악에 정통한 연인을 위해, 매번 졸면서도 연주회장에 동행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땐 그만하면 충분하리라 여겼었다. 문화적 취향이 각기 다르다해도, 상대를 위해 그만한 인내와 배려가 있다면 연인으로써 충분할 거라고. 그럴 필요조차 없다면 不亦說乎일테지만, 단골서점 주인아저씨께서도 항상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다 된 놈을 찾으려 말고, 될 성부른 놈을 찾으라고. 그 땐, 곁에서 기꺼이 졸아 줄 남자가 될 성부른 놈이라 여겼던 거다. 하지만, 각기 다른 취향을 사랑으로 인내하다니, 말이 되나. 
   
 연인의 로큰롤 취향을 참을 수 없었던 바이올리니스트는 비평을 잔뜩 늘어놓은 후 말한다.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p153). 
 
사랑을 위해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감수성을 가진 당신을 사랑하는 것. 충분할 뿐 아니라 완벽한 자격. 사랑에 빠져버린 젊은 그들처럼 완벽한 연인이 결별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 서투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기 때문에 서투르고, 그래서 실패하고, 오해하고 떠나고. 상대방에 대한 열정, 분노, 모욕, 자존심의 최고치인 엉망진창의 상태, 바로 그 <젊음>이라는 이유로 인해 말이다. 
  
 그딴 식으로 말하다니. 아주 못된 년이군. 
 내게서 떠나, 꺼져버리라고, 어서(p176).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할 첫날 밤, 이 무슨 터무니없는 싸움질이란 말인가.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p197). 
그걸 깨닫는데 반백년이 필요했다니, 되돌아갈 수 없는 반백년 전 연인이라니.  
 사회적 관습과 신분의 차이마저 뛰어넘은 비극적 연인의 실화인, 오래 전 영화<엘비라마디간>. 심하게 다툰 어느 날, 연인은 말없이 강가에 앉아있다. 잠시 후 떠내려오는 "미안해"라는 나뭇잎, 달려가 힘껏 남자를 껴안아주는 여인. 용서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묻지 않는 것, 그 말들을 잊고서 다만 그 마음만을 받아주는 것.  

  
체실비치에서 에드워드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를 뒤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는 것을(p197). 
말이 아닌, 말이 내는 절망의 음성에 화답할 것. 우리에게 아직 사랑할 기회가 있을 때, 한번 더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의 뒤를 따라 갈 일이다. 고통스러울 망정,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버리기 전에. 자, 이제 어디 가서 될 성부른 놈을 찾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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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5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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