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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설날이 지나자, 몇 통의 안부전화를 제외하곤 연휴내내 침묵이었다. 나는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원치않는 관계는 스스로 배제할 뿐, 외롭지 않다 여기려 했지만, 어쩐지 공허했고, 모임의 피로함에선 벗어나고 싶었지만, 모임의 구성원 중 누구도 내게 사적으로 연락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식으로 이어지는 한심한 자괴감의 시간.
살다보니 몇 번쯤 연애에 실패했고, 그럴 때마다 사랑따윈 없으니 혼자 살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홀리데이 증후군이랄까. 설령 늙어서 이럴 순 있어도, 그때까지 이럴 순 없다, 는 암담한 상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문득 붙잡아 준 손. 알랭 드 보통. 당신은 이제부터 친구야.
<우리는 사랑일까> 꼭 이 타이밍에 읽으려고 그렇게 미뤘는지도 모를 일. 일단은 제목부터가 좀 시시했다. 노희경의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연상시키지만, 감은 좀 떨어지는. 퍼머하는 두 세시간을 때우려고 급히 빼어든 게 바로 이 책이었던 건, 오직 이 때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내 우울과 딱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던 거다.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수술과정을 들여다보는 듯, 관계의 표피와 점막을 째고 잘라내어, 마치 외과의사처럼 사랑의 병증을 악화시키는 종양만을 콕콕 집어낼때, 부라보! 퍼머를 망쳐도 웃을 수 있는 이유. 닥터러브, 당신은 최고야.
바보같던 내게 그는, 다 그렇다고, 지금의 너도 한 때의 그들도 미약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바보들일 뿐이니, 솔직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쾌한 건, 이토록 깊은 통찰과 지적인 유쾌함이 또 다른 바보의 작품이라는 것. 당신 얘기 아니야 물으면, 맞다고 손 들어 줄 듯한, 그 모든 감정의 기복을 설명하느라 엎드려 삽화를 그려줄 듯한, 정말이지 따스한 동질감. 마지막 한 줄까지 해치운 뒤, 기쁜 마음으로 박수 짝짝짝.
연말연시에 만나 내게 힘을 주었던 그들. 산도르 마라이나 폴 오스터, 애니 프루, 그 중 알랭 드 보통을 연초에 만나게 된 건 분명 기뻐할 일이다. 그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말해주겠어! 바야흐로 울증에서 조증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친구여, 이 열광을 잠시 이해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