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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Deadline은 11월.
죄수들은 선을 넘었고, 총살당했고, 행복했다.
십여 년 전,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메릴스트립이 클린트이스트우드를 끝내 따라가지 않았을 때, 평생을 간직했을 그녀의 유품들만이 그래도 잊지는 않았노라 증언할 때, 나는 그녀가 영 못마땅했다. "그럴 거면 갔어야지, 평생을 믿어 온 남편을 저렇게 뒤통수치느냐" 며 죽을 때까지 남편을 떠나지 않은 그녀의 '고귀한 희생' 에 대해 일갈했다.
사랑은 아름다웠으나, 미련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때가 온다면 선택해야만 한다고, 사랑이냐 포기냐, 평생 그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그녀의 삶은 가짜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일 몇 번을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그 확실한 감정이 찾아온다면 나는 가겠노라고.
연애의 영원한 로망이자 한없는 통속인,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는 고백. 그래, 아무리 비루한 것일망정, 너라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어쩌면 그래도 좋을 것 같은, 연애에는 분명 그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마리안네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때때로 한없이 슬퍼지리라는 것. 그 슬픔의 끝까지 가리라는 것을 (p126).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오로지 ‘그 일’ 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대답한다. 네(p23).
욕망은 이해받을 수 있어도, 욕망으로 인한 행위는 그렇지만은 않은 법. 양심과 편견의 마지노선에서 메릴스트립은 남았고 마리안네는 떠났다. 어쨌거나 마리안네는 행복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행복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거기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그때 우린 참다운 행복을 알았고, 그래서 그 후 우린 불행했다 (p128).
행복을 모르기에 불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세월과 행복을 알았기에 불행한 세월 중, 어느 편이 나은가. 지금 슬픔의 끝에 당신이 서있다 해도,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오로지 그 답만이 불행을 건너가게 할 힘이기에.
연극은 막이 올랐고, 연극같은 고백은 이루어졌다. 지상의 연인들이 지나친 행복으로 불안해할 때, 한 때의 그들처럼 슬픔의 끝에서 돌아설 때도, 그들은 행복했고 고통은 영원히 사라졌다. 11월. ‘늦어도’로 시작되는 약속이, 약속했던 바로 그 시점에서 끝나기란 쉽지 않다. 유효기간이 연장되고, 약속의 회가 거듭될수록, 사랑도 삶의 공기와 더불어 부패하는 법.
내가 어떤지 알아? 당신과 자고 싶어 (p374).
슬프지 않을 때 애무하고, 잠들 때까지 함께여서, 둘은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