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세핀 테이는 역사적 사실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해 가는 ‘시간의 딸’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시간의 딸’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을 통해 당연시되던 기존의 역사적 고정관념을 뒤엎는 치밀한 논리적 문제 제기에 의해 놀라운 지적 희열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기한 논거의 역사적 진위여부는 둘째 치고라도 오늘날 ‘다빈치 코드’ 등으로 인기 높은 팩션 장르의 가장 모범적인 전범을 제시해 준 게 아닌가 싶어 더욱 이 작품의 가치가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런 조세핀 테이가 대표작 ‘시간의 딸’을 발표하기 3년 전에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이 책,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입니다. 작가의 주특기인 역사적 사건을 작품 안으로 끌어오는 수법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이번엔 역사적 사건을 직접 도마 위에 올려놓는 대신, 소설 속에서 지금 바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으로 재창조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욱 생생하게 사건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시간의 딸’처럼 역사적 사건을 시간이 지난 후대에 추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일반 추리소설처럼 소설 속 인물이 직접 직면하는 당대의 사건이 돼버린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심판과 같은 입장에 설 것인가, 그와는 다른 입장에 설 것인가, 결정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이것이 먼 영국의 역사적 사건이었기에 별 느낌이 없었지만,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잘 알려진 역사적 미스터리와 관련된 사건이었다면, 작가가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 드는 모습을 보면서 반발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영국의 역사를 현지인들만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어쩐지 조세핀 테이가 기존의 역사적 선입견에 대항하는 입장에 섬으로써 일반 독자들에게 미스터리의 반전이 주는 충격 같은 효과를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물론 이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의 경우는 실제 역사에선 피고측과 원고측으로 편이 갈려서 어느 한 쪽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렬했던 모양입니다만, 이 작품 속에서 일반 대중 대다수가 지지하는 쪽은 작가가 열심히 옹호하는 쪽과는 정반대 쪽입니다. 1940년대 말이라는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볼 때, 사람들이 그 쪽을 옹호하기가 쉬울 거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우리나라조차도 다르게 볼 여지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60여 년 전의 영국이라면 소설 속 진실 같은 경우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겠죠. 이 부분에서 사회적 편견에 대해 작가가 보내는 일종의 야유처럼 느낀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사실 실제 역사적 사건은 개인적으론 그냥 일반적인 소송 사건처럼 느껴졌지만, 이 소설 속 사건은 좀 더 현대화되고 구체화돼서 그런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의 유력한 피의자로 몰린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나 집단 린치 같은 경우, 일종의 마녀사냥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특히 그랬습니다.

이런 부분에선 마이클 크라이튼의 ‘긴급할 때는’에 나오던 그 중국계 의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미네트 월터스의 ‘냉동창고’도 많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냉동창고’는 영국 시골의 전원주택이라는 배경도 유사한 데다 그 속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편견, 그리고 그 집에 가해지는 여러 위해들이 ‘프랜차이즈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해서 혹시나 월터스가 ‘냉동창고’를 쓸 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을 대단히 많이 참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죠.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인터넷 상에서 대중들에게 안 좋게 낙인찍히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공격 앞에 금세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걸 볼 수 있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도구만 달랐을 뿐 인간 사회는 과거에도 별 차이가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겐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을 채워줄 먹잇감만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물어뜯을 수 있는 먹이만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가 돼 있는 게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는 서글픈 진실을 말이죠.

비록 소설 속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읽는 이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소설 자체는 요즘에 나오는 소설들처럼 막장(?)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영국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다른 미스터리소설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온화한 느낌도 충실한 편입니다. 어떤 점에선 요즘 소설들이 주는 롤러코스터 식 극적 긴장감이나 극적 반전은 상대적으로 적을지 모르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에 뛰어난 식견을 지닌 작가여서 그런지, 지금 읽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실은 어느 시대든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명편이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