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특급살인사건 - 최신세계추리소설 4
西村京太郞 지음 / 추리문학사 / 1988년 3월
평점 :
품절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 노출은 각오하셔야 할 듯...)


이미 한 번 읽어보았던 니시무라 교타로의 ‘침대특급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내용이 가물가물해져 다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않았다. 추리작가 김성종이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잇따라 내놓았던 ‘최신세계추리소설’ 시리즈 중 한 편인 이 작품은 니시무라 교타로가 아직 필력이 건재했던 1983년 작품이다. 원제도 번역서와 비슷한 ‘寝台特急あかつき殺人事件’으로, 교통편을 사건트릭에 주로 이용하는 작가의 장기를 그대로 살려서 ‘침대특급 새벽호 살인사건’이라 명명하였다.

새벽호(あかつき)는 일본에선 소위 ‘블루 트레인’으로 유명한 야간 특급열차 중 하나인데, 재작년 3월에는 도쿄와 교토를 잇는 블루트레인 '하야부사'호가 운행 중단 결정을 내려서, 니시무라 교타로가 이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였다. 니시무라는 1978년에 “寝台特急(ブルートレイン)殺人事件 / 침대특급(블루 트레인) 살인사건”을 발표하면서 이번에 운행 중단된 ‘하야부사’호를 처음 등장시켰는데, 이 작품을 원점으로 니시무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트래블 미스터리’가 시작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선 약 180편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작품 숲을 이루게 되었다.

새벽호(아카츠키 호)는 오사카와 사세보 사이를 운행하는 야간 특급 열차로 이름 그대로 침대차로 운행되는 블루 트레인이다. 도쿄 경시청 수사1과에서 형사로 근무했던 다나베 쥰(田辺淳)은 실수로 동료를 죽게 한 잘못 때문에 형사 직을 그만 두고 고향인 오사카로 돌아와 사립탐정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로 사카구치 후미코(坂口文子)라는 50대 부인이 찾아와 자신의 아들이 이번에 사망했는데 아들이 근무했던 사세보 앞바다에 유해를 뿌리러 가는 며느리와 함께 동행 해 달라는 기묘한 부탁을 해온다. 며느리가 임신 4개월이라 에스코트가 필요한데 자신은 병든 남편 곁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나베는 후미코의 며느리 유미코(由美子)의 여행에 동행하지만, 유미코 측의 요구로 사세보까지 블루 트레인 새벽호를 타고 가게 되고, 그들이 사세보로 가는 동안 사가(佐賀)시의 한 맨션에서 기쿠치 이사오(菊池功)라는 남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현장에서 다나베가 20만 엔을 영수한 내용이 적힌 명함이 발견되면서 경찰에선 그에게 알리바이를 확인하지만, 유력한 증인인 유미코와 후미코는 다나베의 알리바이를 부정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니시무라의 전속 탐정인 도츠가와(十津川) 경부와 그의 부하인 가메이(亀井) 형사가 등장하고 있다. 다나베는 도츠가와의 부하였기 때문에 용의자로 몰린 다나베를 위해 도츠가와도 자연스럽게 사건 해결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트래블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열차 교통편을 이용한 트릭이 주요 내용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좀 더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것쯤은 예사로 생각하는 비정한 인간을 냉정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빌 S. 벨리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 같은 작품을 연상시키는 소름끼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나베의 결백을 증명해 가는 과정에서 범인의 악마와 같은 정체가 하나하나 드러나는 과정은 제법 박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츠가와가 근무하는 도쿄보다는 규슈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이 사건의 주 무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마치 마츠모토 세이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여수(旅愁)가 절로 느껴지는 일본 시골의 어느 장면만이 유독 기억에 남아서, 줄곧 마츠모토의 대표작인 ‘0의 초점’과 비슷한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단순한 사회파 소설로만 보기에는 뭔가 아쉬웠고, 오히려 인간 본성의 사악함에 초점을 맞춘 수작으로 보는 게 정당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90년대 일본 미스터리 문제작들의 선배격이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만큼 범인의 존재감이 상당했으며, 범인의 동기나 행동 등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추리소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범인을 뽑으라고 한다면 탑 텐에 들어갈만한 우수한(?) 범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진 채 간직하고 있었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니시무라의 추리소설은 지금까지 이 책을 포함해서 “32년 만에 떠오른 침몰선(発信人は死者/1977)”, “하얀 여행 (夜行列車(ミッドナイト․トレイン)殺人事件/1981)”, “공포의 덫 (恐怖の金曜日/1982)”, “프로야구 殺人事件(日本シリーズ殺人事件/1984)”, “침대특급 장미호의 女人(寝台特急「ゆうづる」の女/1988)”과 단편집 한 권까지 모두 7권 정도를 읽어보았는데 역시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작품의 질이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장편 중에선 ‘32년 만에 떠오른 침몰선’과 ‘하얀 여행’, ‘침대특급 살인사건’이 인상적이었고, 단편 중에선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던 ‘친절한 협박자’가 기억에 남는다. 모리무라 세이치나 아카가와 지로처럼 너무 많은 작품을 양산하다 보니 작품 중에 범작이나 졸작도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작가이긴 하지만, 니시무라 교타로야말로 찾아서 읽어볼 만한 작품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본 미스터리의 대가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종착역 살인사건(終着駅殺人事件/1980)”이 국내에도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