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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 '내가 죽인 소녀'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읽어 봤던 이 소설은 나오키 상을 수상한 하라 료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나에겐 일본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소설 자체가 낯설 때였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일종의 놀라움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다.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에 한참 호기심이 왕성할 때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이처럼 서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 나왔다는 사실이, 아니 일본이 이런 하드보일드한 이야기를 대입해 놓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고도사회라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주인공 '사와자키'라는 사립탐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본사회의 생생한 범죄들과 잘 어울렸던 것이다. 그의 활약은 '이니셜 M이라는 사나이' 와 '소년을 본 남자' 라는 두 단편에서 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워낙 작품 자체가 과작인데다 국내에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이 소개되지 않아서 그렇게 잊혀져버리는 듯 했다.
그렇게 십 수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데뷔 장편이 번역된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다. 원서 출간과 거의 동시에 번역됐던 '내가 죽인 소녀'에 비하면 20년 정도의 시차가 벌어진 시점이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약간 우려 섞인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세월의 격차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오래된 옛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반가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나온 하라 료의 첫 장편소설 첫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나는 책을 볼 때 첫인상을 중시하는 편인데 이 책의 첫 장면은 '내가 죽인 소녀'보다 어쩐지 나은 것 같았다. 탐정사무소로 의뢰인 또는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 도입부는 셜록 홈즈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 방식이긴 하지만, 그만큼 친근감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과연 이 사람에겐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호기심을 갖게 하는 좋은 구성이다.
결국 사와자키 탐정은 실종된 누군가를 찾아 나서게 된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녀야 한다.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읽으면서 탐정이야말로 가장 외로운 직업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어떤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 채 자신의 판단에만 의지한 채 사건에 온전히 매달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데뷔작에는 주인공 사와자키 탐정에게 그의 없어진 파트너 와타나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두 번째 장편인 '내가 죽인 소녀'에선 잘 느껴지지 않았던 파트너의 부재가 이 작품에선 짙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 때문에 몸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와타나베는 이제 사와자키 곁에 없지만 사와자키는 여전히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홀로 지키고 있다. 둘이 함께 하던 사무실을 혼자서 꾸려나가야 하는 고독한 현실은 밤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사와자키가 텅 빈 사무실 문을 열고 어두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줄기 독한 담배연기를 가볍게 날려보지만 그의 얼굴엔 어쩐지 짙은 외로움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외로움을 '전화응답서비스 회사'의 친한 여직원과 농담하듯 정겹게 안부를 교환하면서 해소하는 장면이라든지, 상당히 당돌하고 거침없는 말투에 비하면 의외로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서 드러나듯, 사와자키는 사람을 끄는 은근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한번 의뢰 받은 사건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사건을 추적하는 성실한 모습은 더욱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위에서 언급한 한 단편에선 사건 당사자가 직접 의뢰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죽기 전에 나눈 전화 통화 하나만으로 끝까지 진상을 추적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다.
사와자키의 기사도적인 무용담은 자연스럽게 레이먼드 챈들러의 영향을 의식하도록 만들지만, 사와자키는 필립 말로의 단순한 일본식 적용 이상의 매력을 선사해 준다. 물론 필립 말로가 없었다면 사와자키가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와자키는 사와자키만의 매력으로 충분히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그러면서도 단순한 아류라고 하기엔 너무도 세련되고 탄탄하게 구축된 작품 안에서 사와자키는 나름의 생명력을 지닌 채 생생하게 살아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탐정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없다. 그러다 보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와자키의 시점에서, 사와자키의 시선으로 사건이나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다 보면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사와자키의 눈을 통해 일본사회를 들여다보게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언뜻 보면 미국 작품을 일본식으로 비튼 것 같지만, 실상은 일본의 얘기인 것이다. 미국 작품에선 느낄 수 없는 일본 특유의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하라 료의 작품은 그 나름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간사회에 공통되는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것은 일본만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탐정의 눈을 통해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일본이 아닌 우리 자신의 얘기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사건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탐정의 눈을 통해 인간사회의 여러 모순들과 얽히고 설킨 난맥상을 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탐정이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은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종된 누군가를 찾아다니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러 다니든, 탐정은 언제나 누군가를 만나러 떠돌아 다녀야 한다.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닌지 판단하고 그들의 내면까지 추적해야 하는 탐정의 수사과정은 어떤 점에선 인간존재의 탐구일는지도 모른다. 탐정은 사람들의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대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숨겨진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정교한 트릭으로 구축된 완전범죄가 끝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의 그 강렬한 쾌감에도 있지만, 어쩌면 진정한 매력은 그 숨겨진 가장 내밀한 비밀이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충격적인 느낌에 있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감춰져 있는 가장 내밀하고 사악한 속내, 그 암흑의 심연이 폭로됐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 내지 인간적인 연민 같은 것 때문에 나는 자꾸만 추리소설을 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해치면서까지 절실히 감추고 싶었던 그 깊고 깊은 비밀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내가 생각하는 이런 추리소설의 진정한 매력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번듯하고 아무 것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잘난 사람들에게도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감추고 싶은 저마다의 비밀이 존재한다는 그 냉혹한 현실을 통해 나는 다시금 인간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도 그 인간들을 찾아 길을 떠나고 있을 사와자키의 외로운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두운 밤거리를 쓸쓸히 걸어가고 있을 그의 뒷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