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부제가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입니다. 현 정부 들어 '법치'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요, 법치 좋아라 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책을 좀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책 제목이 참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라...
프롤로그에 책 제목을 지은 이유에 대해 나오는데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힘입어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했고,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 독립 3년만에 헌법이라는 것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수백년의 왕조시대를 지나 40여년간의 식민 통치가 끝나자 바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를 바탕으로 하는, 헌법 기반의 통치 시스템인 민주공화국이 뚝딱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이런 체제의 혁신은 각 개인들에게는 엄청난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말이죠...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전쟁, 노예 해방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단계적으로 국가 제도를 형성해간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수월하게 국가 제도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개인은 공짜로 무엇인가 얻을 수 있지만, 사회 전체가 공짜로 가치있는 무엇을 가질 수는 없다 - 후불제 민주주의, 21page
이후 우리 역사에 새로이 쓰여진 419혁명,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 항쟁과 같은 사건들은 공짜로 얻은 듯 보이는 민주공화국을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후불'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쩌면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 - 촛불집회 등등 - 역시 아직 다 치르지 못한 비용을 납부하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쉽게 얻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고유의 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많은 사람들의 희생위에 어렵게 세워진 민주주의 - 결코 쉽게 얻었다고 하기엔 희생이 너무 많았던 - 라는 가치가 너무 저평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얻어졌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다시금 우리의 자유를 제약하고 불공정하게 기회를 빼앗기는 사회가 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다시 찾아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까요?
지난 2007년 12월, 2008년 4월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적 부흥에 대한 기대'를 그 동안 누려왔던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너무도 익숙해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잠시 잊고 있어던 가치들과 맞바꾼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유시민 전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분입니다. 얼마 전 참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셨던 분이죠.
책의 후반부에서는 참여정부에서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도 소개가 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법안을 상정해서 통과시키는 과정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철학, 열린우리당이 가진 정치사적 의미....
후불제 민주주의는 각 개인이 어떤 자세를 갖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던 없던 보편적 상식에 기초해 읽고 이해하기엔 참 좋은 정치 서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고등학교 교재로 쓰이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경제' 교과서보다 더 좋은 현대 정치학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에필로그에 나온 '시'를 소개합니다.
|
|
|
|
선의 연대와 민주주의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