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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기자의 어느 금요일
최은별 지음 / 신아출판사(SINA) / 2017년 12월
평점 :
“첫눈에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안에 박혀, 나는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살아갈 거란 걸.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문득문득 이 순간이 떠올라 나를 무너뜨리거나 지탱시켜 줄 거란 걸. 내가 얼마를 살아도 이보다 더 거대하고 찬란하고 분명한 감정은 가질 수 없을 거란 걸. 나는 다 알았다.” ― 운명을 기다리는 여자, 고요.
“사랑이 뭔지 아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 그녀를 알지 못했을 때는.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잘 알겠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을, 나는 사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별과 눈송이와 빗방울을 다 셀 수 없다는 사실보다, 내가 나라는 사실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더 명징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 그녀의 운명이 되고 싶은 남자, 현우.
지금, 이 순간 스쳐 지나간 두 사람의 인연이 운명이 되다!
과거 어느 한순간에 운명을 느껴 그 운명을 기다리는 여자 최고요.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지내는 감정이 메마른 남자 유현우.
둘은 송정리역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다. 우연하게 현우는 문예지를 읽고 있었고 그 문예지의 나온 시를 지은 고요는 그런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담백하면서도 지나치듯이 하지만 그 만남에서 한 남자는 사랑을 느꼈고 한 여자는 그저 흔한 우연이라 느꼈다.
시인과 기자의 만남이라 많은 생각을 담았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시인은 기자 같고 기자는 시인 같은 아이러니한 그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는 시인 고요는 왠지 모르게 현우의 사랑을 우연이라 생각하고 사랑이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시를 쓰지 않고 갤러리 판매 매니저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를 좋아하는 한 남자 현우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보다 자신의 시를 더욱더 좋아하고 연구하는 현우와의 만남은 항상 금요일이다.
그녀가 쉬는 날이기도 하고 현우가 쉬는 날이기도 한 금요일. 특별한 일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들은 금요일에 만나게 되고 현우는 취재라는 변명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읽는 내내 광주 송정리역과 전주, 광주, 담양 등등에 그들이 만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이 다녀간 곳이기는 하지만 광주에서 몇 년을 보낸 나는 참 반가운 장소들이기에 왠지 모르게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이 변했을 거리라든지... 한옥마을이라던지.. 거기에 자주 다닌 송정리역은.. 글을 읽고 나니 또 가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이제는 들릴 일이 없는 그곳이지만.
그들에겐 소소한 데이트 장소가 나에겐 추억을 떠올릴 듯이 그려지고 그들이 다니는 장소가 읽는 내내 반갑기까지 하다.
거기에 낭만적인 현실을 추구하는 고요의 심정과 그런 그녀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는 현우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그들의 감정도 느낄 수 있어 순수한 순정 소설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녀가 말하는 운명과는 다른 것이지만, 운명론자가 아닌 나도 그녀를 만난 게 운명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듯이, 결국 사랑에 빠진 모든 이는 상대가 운명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천천히 스며드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녀에게 닥친 마음을 사랑이 확신케 만든다면, 그녀는 나를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p103
'만약 세상이 당신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만큼 당신 편이 될께요.'p89
책 주인공 기자 현우의 감정을 보면 시인보다 시인 같은 감정을 가진이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난 고요보다 도 세심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정에 메마른 건조한 사람으로 처음 등장을 하지만 갈수록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들을 보면 순정만화의 주인공인 느낌도 들고... 연하남의 명랑함보다는 조심스러우면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거기에 둘이 만나는 장면이나 시간들을 보면 일상에서 자주 보게 되는 연인들의 모습이라 그런지 읽다 보면 과거 연애하던 시절이 어렴풋? 이 떠올릴 수 있다고나 할까.. 사실적인 연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꽤 감상적이면서도 운명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볼 수가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이들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어 재미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