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먹는 염소
진주현 지음 / 더시드컴퍼니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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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는 내 손목의 상처를 오랫동안 따뜻한 침으로 핥아 주었다.

정성을 다해, 비밀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침착하게.

나는 마음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당신을 기억합니다.


 '커피 먹는 염소' 제목부터가 끌렸다. 여러 친근한 동물들을 다 뒤로하고 염소가.. 커피를? 처음엔 그저 염소와 커피의 어울리지 않는 점에 그리고 소개들에 나온 상처를 보듬어 주는 책이라는 것.

 그런데 처음 읽자마자 난해함을 느꼈다. 어찌 보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었지만 처음부터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주르륵 나왔달까....

 세 마리의 은빛 물고기, 안개, 초록색 온도계...

이 단어가 처음부터 등장을 하면서 그녀의 상상의 세계인지 아니면 판타지한 또 다른 꿈의 세계인지..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공포감도 들었다. 안개가 나를 삼켜버릴 거 같은 두려움. 어느 순간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잠. 그러한 잠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도망갈 곳이 없는 그녀의 삶.


 이래서 초반은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녀가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지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점점 그녀의 사연이 나오면서 그녀의 과거를 엿볼수 있었다. 상처. 기억. 고독.

 어두운 단어들을 나열한 것 마냥 그녀의 과거는 상처가 많다. 그리고 그녀의 삶 속에 '커피 먹는 염소'가 들어왔다.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됐다.


 고통에는 어떤 등급도 없다고 문 닫아버린 탁한 내게. 염소 아저씨로부터 전해 들은 타인의 이야기는 우물 같은 내 방 속으로 툭, 하고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깊이 가라 앉았다. p80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아픔과 상황이 가장 힘든 법이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자신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는 봄이 와 영재의 이야기에 점점 그녀 자신도 끌려가듯이 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죽음을 전해 들은 자신과 자신을 감싼 누나의 생이 죽음으로 바뀌는 순간을 생생히 목격한 그. 둘 중에 누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남은 삶이겠냐만은...

 그럼에도 그들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아픔 하나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다. 말이 없이도 그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달래주고...


 봄이 와 유리는 어머니를 잃었다. 어린 봄이가 과거 10살에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 그녀와 같은 것 같아서 시작된 봄이를 향한 애착. 둘이 지내는 일상이 참 아름답고 소소하고 잔잔해서 오래도록 이러하면 좋았을 텐데라는 감정이 울컥 솟았다. 그러한 일상이 오래가지 못하고 그들의 평안이 깨지는 사건이 생기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책을 봤다. 그리고 나서  세 마리의 은빛 물고기, 안개, 초록색 온도계 이것들의 뜻을 알게 되었다. 아니 처음에는 들어오지도 않던 단어였는데 다시 한번 읽기 시작하니 눈에 들어온 단어였다. 중요하다 여기지 않았던 단어들이 마지막엔 그녀의 기억이 돌아오라고 외치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읽는 내내 가라앉는 기분을 많이 느끼게 됐다. 뭔가 생각도 많아지고 커피가 굉장히 마시고 싶게 하는 책이고... 또 커피를 처음 먹은 건 인간이 아니라 염소였다는 사실과 함께... 굉장히 기억에 남는 책이 돼버렸다.


 나는 당신에게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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