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한 주번 ㅣ 나의 학급문고 4
김영주 지음, 고경숙 그림 / 재미마주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주번은 이 책에 등장하는 그야말로 부러운 존재인 동시에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언젠가 준비물을 잊고 와서 학교 뒷문으로 준비물을 사러 나가다가 주번에게 들켜 이름을 적히고 선생님께 갖다 드리겠다는 으름장에 하루종일을 울면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참 많이 흐른 듯합니다. 지난 주 저는 주번이었습니다. 물론 이제 학생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주번명찰을 나눠주는 주번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주번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큰 권력이나 다름없습니다.
영원한 주번이 되어서 영원한 권력을 소유하고 싶은,그래서 주번 명찰을 만들어 다니는 이 책의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로 어른들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계속 그 권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는 배경을 만든 건 아닌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 알아 두어야 할 게 있습니다. 주번은 그런 권력을 가진 호령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아침 일찍 학교에 와야 하고 늦게까지 남아야 하며 운동장 청소도 해야 하고 오늘같이 추운 겨울날 아침에 교통 안전 깃발을 들고 학교 도로앞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권력에는 자리에는 그만큼의 의무가 뒤 따라야 하겠지요.
이 책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든 어른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닐까요? “영원한 주번이 되고 싶거든, 영원한 일꾼이 될 생각부터 해야지.....” 그런데 이번주 주번교사를 마치며 토요일 주번 명찰을 거뒀는데요 (우리 학교는 주번 이 아니라 도우미란 말을 쓰고 있긴 한데요) 세 개가 없어졌습니다. 설마.....영원한 주번이 되고자 하는 녀석들의 소행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