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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평점 :
최석규의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6개의 이야기와 3개의 쪽만화로 이루어져 있는 만.화.책.이다. 그러나 10분만에 뚝딱 훑어 보고서 "다 읽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화.책이 아니었다. 나는 한 장 한 장 힘겹게 책장을 넘겼고, 세 번째 이야기인 <공룡둘리>를 읽고선 책장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마주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책을 덮은 후 의자 위에 둔 것을 남동생이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교과서가 우일하게 보는 책인 놈이, 만화책도 겨우 바둑만화나 쪼금 봤던 놈이 꽤 오랜시간 앉아서 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동생은 "웃기네!"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학교로 갔다.
일주일간 애써 외면했던 나는 그 말에 의아심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책장을 들췄다. 내가 처음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죽음지향성'이었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 파생되는 업'이었다. 그 업의 무게에 눌리운 나는 이 책이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현실을 외면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었다. 그러므로 남동생의 "웃기네!"라는 감상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뭐가 웃기단 말인가?
다시 찬찬히 이 책을 읽었다. 이 번에는 다행히도 마지막 장까지 읽어 나갈 수 있었다. 6개의 이야기와 3개의 쪽만화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책의 곳곳에서 '죽음지향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웃겼다. 웃기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가정이었다. 그것도 실현성이 매우 낮은 가정이었다. 마법을 부리는 초능력 공룡 둘리가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을 짤리는 일을 하러 갈리 있겠는가? 24년이 지난 지금도 둘리는 여전히 초능력으로 아이들을 꿈꾸게 하고 있다.
--- 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규석이 들려주는 하나 하나의 가정들을,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어린 시절, '나'에게 꿈과 환상을 품게했던 <아기 공룡 둘리>까지 동원하여, 세상이 보여주는 위선에 속지말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어 던지라고 이야기한다. 제사를 지내 새로운 태양이 매일 뜨는 것이 아니라, 오늘 떠 있는 태양은 어제 떴던 태양이며, 내일 뜰 태양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가 뜬다고 믿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