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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 - 예민하고 소심해서 세상이 벅찬 인간 개복치의 생존 에세이
이정섭 지음, 최진영 그림 / 허밍버드 / 2019년 8월
평점 :
작가는 마흔, 남자다. 자신을 복어목의 물고기인 개복치에 비교하는 사람. 생김새가 아니라 워낙 미약하다는 이유로. 그렇다. 심신이 미약한 나와 같은 존재. 제목부터 동질감을 느끼며 (물론 남자라는 건 빼고) 책장을 펼쳤다.
중학교 때 하굣길에 버스를 탔다. 토요일 낮이라 사람이 가득 차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나는 벨을 누르지 못했다. 집 다음 정거장은 사람들이 지하철 타러 가는 곳이라 우르르 내릴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우르르’에 휘말려 내리고 다시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나 역시 개복치였다.
사람을 만나는 게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 자다가 하이킥할 만할 일을 곱씹다가 제풀에 지쳐 잠드는 사람.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죽도록 하기 싫고, 지인에게도 직접 연락하는 게 어려워 SNS로 소셜 에너지를 충전하고 끈을 이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내게 가장 맘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작가의 할머니와 치킨에 대한 추억을 다룬 부분이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회고는 언제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할머니가 그립다.
<내가 멸종 위기인 줄도 모르고>는 감정과 체험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에세이집이다. ‘인간 개복치’라는 비유가 처음엔 썩 와닿지 않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재치 있는 ‘인간 개복치’와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