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비용

 

-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박용준

 

 

영화 <바더 마인호프> 중에서

 

 


 













“진실만이 몸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진실이 인정받지 못하면 …… 

몸은 계속 증세를 드러낸다.”

-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중에서


사랑을 고백한 후 거절당하는 경우
곧장 몸에서 열이 나고 아파오는데,
이는 나의 진실이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적인 몸의 증상이다.


반대로 나의 진심을 상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에도 몸의 반응은 나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자
애쓰는 이 노역 또한 못할 노릇이다.

결국, 진실-말하기(dire-vrai)란
마음으로 몸을 어루만지는 행위이자,
몸으로 마음에 가닿는 행위인 법.

 

 

 

영화 <도가니> 중에서

 

 














“내가 가르쳐야 할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어. 그건 뭐랄까. 정의(正義) 혹은 신성(神性) 혹은 좀 더 존귀한 것에 대한 갈망 …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며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어떤 것을 향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거야.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어떤 기쁨을 맛보았어.”

- 공지영, 『도가니』 중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누르는 것도 고통을 유발하지만,
진실을 세상에 털어놓는 것 또한 고통을 수반한다.


분명 진실에의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극도의 쾌락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쾌락의 비용을 지불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 비용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진실은 분명 “고통스럽기까지 한 어떤 것”임이 분명하고,
진실이라는 이 어떤 것은 늘 느리게, 에둘러, 뒤늦게, 어긋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영화 <타인의 삶> 중에서

 














“파르헤지아스트(parrhêsiaste,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 … ‘파르헤지아’는 진실 되고,
연루되고, 위험에 빠진 말로 정의된다. 진실을 말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아무 데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생은 자신의 근본적인 상황의 진실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 프레데리크 그로,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중에서

 

‘파르헤지아parrhêsia’는 어원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열고, 입을 열고, 몸을 열고,
순수하고 단순하게 솔직해지는 것,
이것이 곧 진실이자, 자유libertas다.


말하자면,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게 하고,
말해야 하는 바를 말하게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를 말하게 하는 용기, 혹은 자유.


진실은 결코 감추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순수한 것이며, 옳고 곧은 것이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 어떤 위험을 초래한다 하여도,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반드시 고백되어야 하고,
말하지 못한 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영화 An Ecounter with Simone Weil 중에서

 

“진실은 보려면 볼 수도 있는, 그러나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
- 이정우, 『가로지르기』 중에서

 















진실은 이처럼 위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의 용기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고,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며,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혹 진실이 이토록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생은 진실 없이는 건설될 수 없으며,
진실은 무너진 생까지도 재건하는 힘을 갖고 있기에,
결코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 혁명인 이유다.

나날의 혁명이 없이는 우리 삶은 생명성을 잃게 되고,
일상의 진실이 없이 우리 삶은 빛을 잃게 될 것이기에,
진실을 생성하기 위해 우리는
이 고독한 고통을 버텨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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