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양식


박용준

 

 

 

 

 

 

 

 

 

 

 

 

 

 

 

 

 

 

 

 

“우리는 ‘이별하면서(abschiedlich)’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슬픔과 고통이 반드시 따르지만, 우리의 상황을 거듭해서 새롭게 만들고, 이별 앞에서도 우리를 항상 새롭게 변화시킬 가능성 또한 포함된다. 이를 위해서는 애도를 피할 수 없다.”
- 베레나 카스트, 『애도』 중에서





























마냥 따뜻하기만 했던 봄날이 이내 지나갔듯,
사랑했던 사람이 불현듯 내 곁을 떠나가기도 한다.

세상에 살아 있는 한,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사람도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연(緣)이라지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매번 아프기만 하다.

이별을 겪고도 아프지 않다면,
그/녀를 잊지 못해 서둘러 도피한 것이거나,
그/녀를 아프지 않을 만큼만 사랑했다는 것일지니,
우리는 사무치게 사랑한 그 크기만큼 늘 아프다.

매 순간 이별하는 존재(abschiedliche Existenz).
매 순간 이별하면서도 그 이별을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존재, 인간.

 


 

 

 

 

 

 

 

 

 

 

 

 

 

 

 

 

 

 

 

 

 

사랑 대상Liebeobjekt의 상실 … 그 병리적인 슬픔은 슬퍼하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책임이 있고 또 그렇게 원했다는   식으로 자신을 비하시키는 자기 비난의 형태로 표출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애도와 우울증> 중에서


우리는 이별하고 나서 묻는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우린 헤어진 걸까?
이별의 아픔을 채 겪기도 전에 들이닥치는 이 자기 모멸감.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별/상실 후에 오는 이러한 자기 비하는
우울증의 한 병리적 증상인데,
그러고 보면 이별한 모든 자아는 일견 우울증(멜랑콜리아)적이다.

그러니 실연 후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별의 이유를 자기 탓으로만 돌리지 않을 것.

대개의 이별에는 이유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할 수 없거나 알 수 없기에
오직 우리가 할 일은 사랑했던 그/녀의 생을 존중해 주는 것.
이것이 이별에 대한 애도의 기본 양식일 수 있다.









 

 

 

 

 

 

 

 

 

 

 

 

 

 

 

 

 

 

 

 

 

 

 

 

 

 

 

 

“외면하지 말자. 우리는 상대방 때문에 훼손된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타자에 직면해서, 즉 접촉, 냄새, 감정, 감촉에 대한 기대, 느낌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훼손된다.”
- 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 중에서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변했는데,
그/녀가 가버리는 경우, 변한 모습만 고스란히 남는다.
어긋남이 남긴 이 훼손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단언컨대, 만남 이전의 나(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혼에는 상처가 났고, 몸은 이미 훼손되었으니,
상처를 인정하고,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만이 가능한 일.

이별의 이유를 따져 묻거나, 떠나간 그/녀를 원망하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
그 어떤 가능성도 품게 하지 못하기에,
그/녀를 향했던 리비도(에너지)의 방향을 과감히 철회하는 일이
필요하다.
때론 마음을 접는 체념도 애도의 한 양식이기에.


 

 

 

 

 

 

 

 

 

 

 

 

 

 





 

 

 

 

 

 

 

 

 

 

 

 

 

 

 

 

 

 

"애도는 그런 것이다. 슬픔을 통해 슬픔을 이겨내기. 슬픔을 통해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연인의 사라짐을 붙잡지 말아야 한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슬픔을 진정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쏟아지는 슬픔을 그대로 견뎌내야 한다. 슬픔이     짓무르고 곪아 터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상처의 아문 흔적이 사랑의 훈장처럼 빛날 때까지."
- 김동규, 『멜랑콜리 미학』중에서

 

이제는 더 이상 `없는 그/녀`를 향한 삶의 방향을 철회하는 것.
말하자면 애도의 핵심은
그/녀를 붙잡지 않는 것,
떠나감을 긍정하는 것, 그리고 감정의 동요를 내려놓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힘에 부치는 작업일지 모르나
우리는 애도하지 않고는 삶을 버텨낼 수가 없고,
깊은 슬픔 속으로 침잠하지 않고는 슬픔을 견뎌낼 수가 없다.

상처가 짓무르고 곪아 터지고 난 후에야 새살이 돋아나듯,
애도의 작업이 완결된 후라야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자유를 꿈꿀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애도하는 법도 배워야만 한다.
그래야 이별도, 사랑도, 배신이나 죽음에도, 온몸으로 부딪혀 버텨낼 수 있는
영혼의 근육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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