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아포리즘

인디고잉 26호



체취의 신뢰감

 

박용준

 

“다소 서툴더라도 문장 하나를 읽었을 때 누가 썼는지 확연히 알 수 있는 시가 있는 반면,

진한 울림을 주더라도 글쓴이의 흔적을 파헤치기 어려운 시도 있다.

전자가 자기 확신과 긍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후자는 오랜 기간의 습작 훈련으로 얻어질 수 있는 일종의 스킬이다.

상당수의 시인들은 후자에 천착하면 전자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매 시대마다 잘 쓴 시는 넘쳐 나지만, 글쓴이의 땀내가 느껴지는 시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세련을 제련할 수 있을까.

근사한 어휘를 늘어놓고 펀치라인을 곳곳에 배치한다고 해서

언어를 대하는 물리적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가지고 늘였다 줄였다 부풀렸다 쪼그라드렸다 스트레칭하는 모험을 즐기지 않는 한

태도는 형성되지 않는다.

이를 도외시하면 평생 자기 자신조차 제 시에서 나는 땀내를 맡을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떨림은 순간이고 섬광은 찰나다.

이런 점에서, 결국 남는 것은 스타일이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신체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지문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눈이 감기는 어두운 밤,

어떤 글은, 그것을 읽는 순간 정말이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오늘밤은 그의 체취가 담긴 김수영의 글이 그렇다.

 

스타일이란 제련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련이다.

그것은 몸의 언어이고, 몸 그 자체가 주는 하나의 충격적 체험과도 같다.

 

“그러나 양식(Typus)은 스타일이 아니다.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스타일에는 매 순간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치열한 실존의 열정 속에서 승화시키는 아이러니의 빛이 있다.

키에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것은 사태의 진실을 향해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

자신의 스타일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쓰면 그것이 곧

기이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 김영민, 『공부론』 중 「스타일은 양식이 아니다」 일부 중에서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히 담긴 스타일리쉬한 글쓰기,

그리고 공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치열한 실존의 열정 속에서

승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는 땀내.

오직 이 땀내 나는 공부, 체취가 담긴 글쓰기만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실존을 향한 치열한 열정만이 스타일의 생명을 담보한다.- 김수영, 「체취의 신뢰감」(1966년 7월 시평) 중에서

 


 

 

 

 

 

 

 

 











 

“콕토가 지적한 바 있듯이, 장식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은 없다.

스타일이 곧 영혼일진대,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영혼을 형식이라는 몸뚱이쯤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중 「스타일에 대해」 중에서















 

그렇다! 스타일은 곧 영혼이다.

스타일에 담긴 생생한 에너지와 생명력, 그리고 탁월한 표현력은

곧 영혼의 에너지이자 생명력을 뜻한다.

그것은 결국 삶의 추출물이자 영혼의 섬세한 무늬이다.

의식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인위적 노력에는 스타일이 틈입할 여지란 없다.

스타일은 영혼의 단련과 삶의 세련이 짠! 하고 소리를 내며 만나는 찰나,

섬광처럼 우리의 피부를 때리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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