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엮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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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서양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단테의 신곡. 두툼한 지옥편을 사 놓고 책꽂이에 꽂아놓기만 한 채 세월은 마냥 지나가고 있었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커다란 판형에 화려한 명화들이 글 중간중간에 배치된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이 나와 일단 이 책부터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신곡]은 잘 알다시피 단테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주인공으로 하여 시인 베르길리우스, 첫사랑의 연인 베아트리체의 도움과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차례로 둘러보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단테 일리기에리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265년에 태어나 1321년에 사망했다. 12965월부터 9월까지는 100인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1300년에는 6월부터 8월까지 피렌체 통령을 지냈다.

 

그의 정치적인 활동보다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의 인연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장이 된 단테가 열 살 때 처음 보고 반해버린 상대가 바로 베아트리체이다. 그러나 부모의 약정으로 서로 다른 상대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9년 뒤 단테는 길에서 우연히 베아트리체를 만나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게 된다. 단테는 그 때부터 베아트리체를 위한 사랑의 시를 쓰기 시작했고, 1290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1295년 시집 [새로운 인생]을 펴낸다.

 

지옥은 역피라미드 모습으로 9층의 계단식 모습을 하고 있는데, 베아트리체의 부친이 베아트리체를 돈 많은 금융업자에게 결혼시킨 것을 복수하듯 당시의 부조리와 부패함으로 지탄의 대상이 된 수많은 사람들을 실명으로 지옥에서 재현시킨다.

 

 

단테의 신곡은 서사시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초보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체로 잘 풀어서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어 神曲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제는 “La Divina Commedia”이다. 유추할 수 있겠지만 Divina 는 성스럽다는 뜻이고, Commedia는 희극이라는 뜻이다. 단테는 원래 Commedia로만 제목을 달았는데 1555년 로도비코 돌체 출판업자가 새롭게 책을 내면서 붙인 이름이 지금의 책 이름이 되었고, 신곡이란 한자어는 이 작품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붙여진 번역 제목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쓰면서 굳어졌다.

 

단테가 서사시의 제목을 희극이라 한 이유를 들어보면, 희극이란 어떤 추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내용면에서는 즐겁게 끝을 맺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지옥에서 출발하여 연옥을 지나 광명의 천국에서 끝을 맺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곡은 지옥(이탈리아어: Inferno), 연옥(이탈리아어: Purgatorio), 천국(이탈리아어: Paradiso) 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은 서른 세 편의 절로 이루어져 모두 99개절로 만들어져 있고, 처음 도입부에 하나의 시를 소개하는 절이 있어 총 100개의 절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서사시 구도가 아니라 이야기 체로 풀어져 있어 그런 문학적인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컬러로 들어간 이 책의 명화들은 대부분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과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그림을 주로 하고 있으며, 그 외 화가를 밝히지 않은 다수의 그림들이 같이 삽입되어 이야기의 전개를 돕는다.

 

아쉬운 점은 명화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단지 이야기 줄거리로서의 보조 역할만 하고 있기에 그 이상의 깊이 있는 접근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명화를 통해 단테의 신곡을 이해하려 한다면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명화는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의미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신곡을 당시 시대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보는 것은 책을 읽는 재미의 증가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당시의 종교관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부족한 상상력으로 인해 책을 읽고도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장점. 말 그대로 단테에게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안내하는 시인 베리길리우스와 같은 길잡이의 기능도 얻을 수 있다.

 

온갖 비명으로 가득찬 동굴 속의 죄인들은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지옥에 떨어져 신음하는 실존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가해지는 형벌들이 정말 적나라하다. 지옥이 정말 저렇게 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지만 당시의 중세의 사회상과 종교관을 사후세계라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보여주는 단테의 신곡. 현대의 기독교는 연옥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 책에 소개된 중세의 기독교는 개신교와 분리되기 전의 기독교 즉 지금의 카톨릭 교리에 더 가깝다.

 

그러나 기독교이거나 천주교이거나 하는 종교적 의미를 떠나 인문학적으로 보더라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통해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통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테는 각 지역을 지날 때마다 그 곳에서 수백 명의 역사상 인물과 신화 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기독교적인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어 죄와 벌이라는 궁극적인 기초와 함께 구원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하게 한다. 그밖에 그리스 신화와 우주관, 세계관, 윤리관, 철학관 등 다양한 사상적 체계를 심오하게 다루고 있어 서양 중세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다시 한번 완역판으로 도전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뒷부분 부록으로 들어있는 자료도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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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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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부제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저자 :안광복

출판사 : 사계절

 


출판사를 보면 이 책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건지를 대략 눈대중으로 알아차릴 때가 있다. 사계절 출판사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책을 내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묵직한 책을 내놓다니. 이거이거 내가 주소를 잘못 찾은 건 아냐? 하는 걱정이 슬 들었다. 왜냐하면 사계절 출판사라는 걸 알았기에 제목은 저렇게 달았어도 약간은 쉬운? 책일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맞는 말이다.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며 이 책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사상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대중성을 위해 지금의 제목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책이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공부하는 사상들을 정리하여 한 권으로 낸 것인데, 알다시피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이 좀 어려운가. 좋은 성적을 받으려먼 암기왕이 되어 달달 외워야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서른두 가지의 사상을 외우고 시험을 치루었을 과거의 우리, 또는 지금의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과서를 외우지 말고, 이야기처럼 되어 있는 이런 책을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고 저절로 암기도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학창시절에 억지로 외웠던 것들을 재밌다며 다시 책으로 읽는 것일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니 그때 아무것도 모른 채 달달 외웠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속속 머리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가 된다. 그래서 철이 들어야 하나보다. 철이 들고 나서 공부를 하면 성적이 훨씬 잘 나오리라.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정치적인 사상부터 철학, 예술, 국가, 경제, 사회에 이르는 다양한 주의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도 주의였어? 라는 의문이 생기는 대동아 공영권’ ‘프런티어 정신’ ‘기업가 정신’ ‘개발 독재같은 제목도 있어 신선했다.

 

34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구석구석 밑줄을 그으며 공부하듯, 그러나 절대 공부가 아닌, 즐거움으로 유익하고 즐겁게 읽었다.

 

머리가 이 세상의 이치를 좀더 깨친 것 같았고,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각 장마다 저자가 주제로 내세운, 이상적인 권력, 행복하게 살기, 좋은 나라, 풍요로움, 더 나은 일상,이라는 다섯 개 항목이 아직도 절실하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이문재 시인이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고 지적한 그 사이를 생각하며,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또 다른 이즘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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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
대니얼 리처드슨 지음, 박선령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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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

 

저자인 대니얼 리처드슨은 소개된 대로 밝히자면, 약간 괴짜 교수이다. 그는 영국 런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데 우수 교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교수법이 심리를 꿰뚫어보기 때문이 아닐까? 심리학자이면서 영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박물관, 술집, 공연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악 공연과 생생 실험쇼를 즉석에서 펼친다고 하니 실험을 토안 심리의 대중화를 힘쓰는 사람으로 보인다.

 

제목만 보면 심리학의 숨겨진 뒷 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심리학보다는 뇌과학쪽에 더 가까워보인다. 그래서 뇌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 책을 정의내려 본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마음의 위치를 찾아가는 뇌인지 심리학 교양서적.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심리학 모든 분야를 두루 돌아다니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전공분야인 인간의 생각과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이상한, 놀라운 특징들에 대한 책이다. 그 특징들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 책은 결국 그 생각이, 그 행동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를 탐구하고, 그 끝에 이르면,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 결국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

 

판단하고 선택하는 생각과 행동의 기저에는 인간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합리성을 바탕에 두고 있는데, 정말 그 합리성은 합리적인 것일까를 따져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연히 우리가 기본적으로 믿고 있는 당연성의 믿음들이 사실은 심리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믿음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선입견, 추정, 편향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져 온 우리들의 믿음들로 이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심리학 또는 뇌과학 실험 이야기들이 조금 나온다. 다수의 심리학이나 뇌인지학 같은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겹치는 내용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은 교양심리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다. “, 이 얘기 아는 건데.” (이제 작가들은 정말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글들을 가져와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마음의 비밀,이라고 해서 심리학의 숨겨진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나름 많은 책을 읽어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뇌인지 분야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책 제목을 다시 보니, 저자는 정확했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의 비밀이란 것이 내용적인 측면이 아니라 위치적인 측면이라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저자는 우리 인간의 눈이 얼마나 멍청한지, 뇌가 얼마나 이 멍청함을 잘 가려주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이 뇌인지학 분야는 심리학이나 과학으로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았다.

 

눈이 색깔을 인지하는 오류에 대한 글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 드레스 색깔에 대한 내용은 아는 바가 없었고, 책에도 사진이 실려있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아보았다.


 

(이 사진의 드레스가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같은 사진인데 사람에 따라 두 가지의 색으로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고,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바쳤다. 저자는 그 이유를 책에 밝히고 있는데, 나는 이 책이 조금이라도 더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답을 적지는 않겠다. 다만,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70%의 사람은 이 드레스를 금색과 흰색의 옷으로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짙푸른색과 검은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뇌는 사물을 별도의 절대값으로 인식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추측한다.

(122)

 

따라서 색에 대한 판단도 상황에 따라 추측할 수 있고, 그 추측이나 해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호메로스의 저작물에서 와인처럼 짙은 색 바다라는 표현을 가지고 옛날에는 파랗다라는 색깔이 없었다고 말한다. 고대 언어학자들이 토라나 구약성서 기타 고대 문헌을 찾아본 결과,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는데 이는 그 당시에는 그런 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우리가 보는 파란색이 물리학, 생화학,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결과물로 나타난 색이라고 말한다. (믿어지시는지.)

 

5, 언어는 생각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가장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호메로스는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었던 반면, 이누이트족 언어에는 (snow)’과 관련된 단어가 약 30~200개 정도 있고, 중국인은 만약이라는 추론을 떠올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는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표현할 단어가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132)

 

하지만 이런 가설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권위자가 말한 얘기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그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누이트 족에게는 흩날리는 눈(qanik)와 땅에 내려앉은 눈(aput) 두 종류 밖에 없으며, 오히려 영어에 진눈깨비(sleet), 진창이 된 눈(slush), 눈사태, 싸락눈(hail), 단단히 뭉친 눈(hardpack), 가루눈, 눈발(flurry), 가볍게 뿌리는 눈(dusting) 등이 있다. 중국인 이야기는 처음 질문을 던진 학자가 중국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생소하거나 낯선 집단에 관한 이야기는

뭐든지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139)

 

글을 쓰다보니 책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적었다.

암튼, 제목만 보고 책을 읽다 다소 실망한 부분이 있지만, 책 속에는 관심을 끌만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소고기 국밥을 먹을 때 올라오는 건더기처럼 풍성했다. 따끈했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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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함께한 4745일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저스트북스(JUST BOO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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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말리와 함께 한 4745]

 



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저자인 존 그로건과 말리를 검색하면 말리와 함께 한 4745외에도 꽤 여러 권의 책이 나온다. 말리와 나」 「안 돼 말리」 「말리와 말썽꾼들」 「온가족이 함께 읽는 말리와 나. 저자는 말리 이야기로 꽤 유명세를 탔나보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이번 말리와 함께 한 4745은 기존 책들을 모두 합친 합본 성격의 책이 아닌가 싶다. 436쪽이니 래브라도레트리버 종의 말리만큼이나 묵직하다.

 

마지막 말리가 이 땅과 하직할 때는 나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존 그로건과 그의 가족들에게 충성스럽게 사랑받았던 사고뭉치 말리였는데,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큰 개였는데, 나는 부끄럽게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내심 부러워하였다.

 

혈통을 자랑하는 개지만, 말리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막무가내 말썽꾸러기 개였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켰고, 모든 것을 물어 뜯었으며, 침을 계속 흘렸고, 불안정했다. 래브라도레트리버는 사냥견으로 유명하다지만 말리는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치면 심각한 정서불안 증세로 온 문짝을 피가 나도록 다 뜯어버린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기행은 책을 읽고 직접 수위를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말리가 하도 요란스럽게 삶을 즐기는 바람에 녀석이 지나간 곳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았다. 말리는 내가 아는 개들 중에서 훈련소에서 쫓겨난 유일한 개다. 말리는 소파를 질겅질겅 씹었고, 방충망을 찢었으며, 침을 질질 흘렸고, 쓰레기통을 엎는데 선수였다. 지능으로 말하자면 죽는 날까지 제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도는 수준이었다. 마치 개의 역사에서 새 장을 열려고 작심한 개 같았다. (, 392)

 

저자는 이런 개와 13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나고 세 아이도 말리와 함께 자란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으며, 감당할 수 없는 개였지만 말리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의 이야기들이 430쪽 책에 가득히 적혀 있다. 그의 사랑 이야기 역시 책을 읽고 직접 수위를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 말리는 가족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변덕스럽지만 사랑받는 아저씨처럼 말리는 그냥 말리였다. (, 317)

 

개의 1년은 인간으로 비교하면 7년과 같다고 한다. 말리가 존 그로건 가족과 13년을 보냈으니 7을 곱하면 91세가 된다. 말리는 늙었다. 마음은 청춘이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개가 되었다.

 

이런 일은 밤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일어났다. 부엌 식탁에서 신문을 읽다가 커피를 따르려고 일어서서 방을 가로질러 가면, 발치에 엎드린 채로 있던 말리는 내가 눈앞에 뻔히 보이고 곧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을 참으려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커피포트 옆의 내 발치에 편안히 엎드리자마자 내가 식탁으로 돌아가면 또 병든 몸을 질질 끌며 따라왔다. 몇 분 후에 오디오를 켜러 거실로 들어가면 힘들어하면서도 여전히 쫓아왔고, 내 주변을 맴돌다가 거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신음 소리와 함께 픽 쓰러지기도 했다. (, 340)

 

늙는 일은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로 고약하고 힘들고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말리의 천진난만함을 보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짧은 인생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을 배운다.

 

이제 병원에는 저자와 말리만 남았다. 말리는 곧 죽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너에 대해 무슨 얘길 했는지 알아?” 내가 속삭였다. “골칫덩어리라고? 전혀 아니야. 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 말리.” 말리는 이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이제까지 말리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말리가 죽기 전에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말리, 넌 훌륭한 개야.” (380)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천방지축 말리의 이야기를 만난 건 내게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물을 아직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썽꾸러기가 주변에 가득한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펼치는 순간, 즉시 말리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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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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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휴전>

 

프리모 레비 전쟁은 끝나고, 고향은 멀다.

 



1937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 프리모는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때 이미 파시즘은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프리모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 파시스트 정부는 인종법을 공포하는데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다행히 대학생은 그 법에서 예외가 되었는데,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리모 레비는 유대인이라고 적힌 졸업장을 받는다.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고 무솔리니가 체포되었으며, 바돌리오 정부가 휴전을 선언했지만, 독일 무장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며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반파시트 운동에 가담했던 프리모는 1943년 체포되어 카르피-포솔리 수용소로 보내지는데, 19442월부터 이 수용소는 독일군의 감독을 받게 된다. 독일군은 포로를 포함하여 남녀, 노인,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슈비츠로 보내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독가스로 6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아우슈비츠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로 살아난다. 19451월 독일군은 남아있는 사람들 중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데리고 가서 총살시키고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사람들은 그냥 둔 채 수용소를 떠난다. 때마침 그는 병을 얻어 누워 있었고, 그는 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인계되어 이탈리아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19451월부터 10월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귀향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책 뒤편에 실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프리모 레비는 직선거리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 곳을 빙빙 둘러 끝날 것 같지 않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의 첫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나면 뒤이어 이 휴전을 읽어도 좋고, “주기율표를 읽고 휴전을 읽어도 좋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이후 15년 뒤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페인트 공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집필하였는데, 그는 치밀하게 언어의 과학화를 시도하였다. 각 쪽의 단어 수를 조사하고, 단어의 빈도를 계산하고, 첫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하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인간인가작품이 감정에 이끌려 쓴 작품이라면, 이번 휴전은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산한, 의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간인가가 어둡고 무거운 바위와 같다면, 이 작품은 맑은 샘 아래에서 서로 부딪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느껴진다.

 

길고 긴 여정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라거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폭력집단에 비해, 러시아 군인들은 자유로웠고 이미 독일의 손을 벗어난 수용소 사람들 역시 군인들만큼이나 자유로운 상태였다. 긴 여행길에 있었고 임시 수용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든지 그 곳을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팠다. 육체가 아팠고 마음이 아팠다.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 인간의 정의가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악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영속한다.

(휴전, 20)

 

, 프리모 레비에게 박힌 이 상처의 흔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상처는 증오로 영속하는 존재다. 현길언 작가의 육이오의 아픔을 다룬 동화 못자국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무에 박힌 못은 나중에 못을 뽑아내어 버리더라도 영원히 흔적을 나무에 남겨 놓는다.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

 

전쟁은 끝이 났고,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왜 책 제목이 휴전일까. 그 의아함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저자의 마음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게 전쟁은 영속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일 뿐.

 

우리는 육이오 전쟁을 통해, 휴전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에 앞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가 신발이고 두 번째가 식량이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신발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77)

 

하지만 전쟁은 끝났잖아요.” 나는 반박했다. 그 몇 개월의 휴전 기간을 살았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의미에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은 늘 있는 거야.”

모르도 나훔의 잊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78)

 

책은 1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낙관적이고 귀향하는 과정의 신기한 경험들이 가득해서 책은 쉽게 읽힌다.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아득한 고향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프리모 레비가 죽고 나서 10년이 지난 뒤였다. 는 진정한 고향에 들어갔을까. 그의 전쟁은 끝이 났을까. 프리모 레비의 여정을 따라갔던 재일작가 서경식의 후기가 들어 있어 더 값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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