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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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휴전>

 

프리모 레비 전쟁은 끝나고, 고향은 멀다.

 



1937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 프리모는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때 이미 파시즘은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프리모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 파시스트 정부는 인종법을 공포하는데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다행히 대학생은 그 법에서 예외가 되었는데,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리모 레비는 유대인이라고 적힌 졸업장을 받는다.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고 무솔리니가 체포되었으며, 바돌리오 정부가 휴전을 선언했지만, 독일 무장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며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반파시트 운동에 가담했던 프리모는 1943년 체포되어 카르피-포솔리 수용소로 보내지는데, 19442월부터 이 수용소는 독일군의 감독을 받게 된다. 독일군은 포로를 포함하여 남녀, 노인,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슈비츠로 보내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독가스로 6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아우슈비츠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로 살아난다. 19451월 독일군은 남아있는 사람들 중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데리고 가서 총살시키고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사람들은 그냥 둔 채 수용소를 떠난다. 때마침 그는 병을 얻어 누워 있었고, 그는 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인계되어 이탈리아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19451월부터 10월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귀향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책 뒤편에 실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프리모 레비는 직선거리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 곳을 빙빙 둘러 끝날 것 같지 않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의 첫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나면 뒤이어 이 휴전을 읽어도 좋고, “주기율표를 읽고 휴전을 읽어도 좋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이후 15년 뒤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페인트 공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집필하였는데, 그는 치밀하게 언어의 과학화를 시도하였다. 각 쪽의 단어 수를 조사하고, 단어의 빈도를 계산하고, 첫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하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인간인가작품이 감정에 이끌려 쓴 작품이라면, 이번 휴전은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산한, 의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간인가가 어둡고 무거운 바위와 같다면, 이 작품은 맑은 샘 아래에서 서로 부딪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느껴진다.

 

길고 긴 여정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라거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폭력집단에 비해, 러시아 군인들은 자유로웠고 이미 독일의 손을 벗어난 수용소 사람들 역시 군인들만큼이나 자유로운 상태였다. 긴 여행길에 있었고 임시 수용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든지 그 곳을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팠다. 육체가 아팠고 마음이 아팠다.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 인간의 정의가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악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영속한다.

(휴전, 20)

 

, 프리모 레비에게 박힌 이 상처의 흔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상처는 증오로 영속하는 존재다. 현길언 작가의 육이오의 아픔을 다룬 동화 못자국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무에 박힌 못은 나중에 못을 뽑아내어 버리더라도 영원히 흔적을 나무에 남겨 놓는다.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

 

전쟁은 끝이 났고,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왜 책 제목이 휴전일까. 그 의아함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저자의 마음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게 전쟁은 영속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일 뿐.

 

우리는 육이오 전쟁을 통해, 휴전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에 앞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가 신발이고 두 번째가 식량이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신발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77)

 

하지만 전쟁은 끝났잖아요.” 나는 반박했다. 그 몇 개월의 휴전 기간을 살았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의미에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은 늘 있는 거야.”

모르도 나훔의 잊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78)

 

책은 1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낙관적이고 귀향하는 과정의 신기한 경험들이 가득해서 책은 쉽게 읽힌다.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아득한 고향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프리모 레비가 죽고 나서 10년이 지난 뒤였다. 는 진정한 고향에 들어갔을까. 그의 전쟁은 끝이 났을까. 프리모 레비의 여정을 따라갔던 재일작가 서경식의 후기가 들어 있어 더 값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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