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사법부의 정의를 요구하는 추리소설 잊혀진 소년

 

이 책은 추리소설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감추어져 있고, 누군가 범인을 쫓아가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마지막에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독자를 따돌리는 반전이 있는, 그런 추리소설.

 

그런데 추리소설도 속살을 파헤쳐보면 여러 장르가 나뉘어진다.

먼저 하드보일러라고 부르는 장르다. 가죽잠바를 입고 혼자 다니며 범인을 찾는 나홀로 탐정이 등장한다.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흔히 남자가 주인공이라서 좀 거친 면이 있고 전체적으로는 느와르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난다. 경찰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뒷북을 치고 이 멋진 탐정에게 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한다. 범인은 주인공이 잡지만 공은 경찰이 세운다.

 

두 번째로 스릴러 추리물이 있다. 사건이 기묘하고 좀 으스스하다. 긴장감이 전체를 압도하고 전개 과정에도 사람은 계속 죽어나간다.

 

세 번째로 가벼운 추리물이 있다. 일본 추리물에 많다. 고양이가 등장하고 젊은 청춘남녀가 등장한다. 살인사건이 나오기도 하지만 주변의 생활사건을 가지고 추리를 전개해나가기도 한다.

 

네 번째로 사회파 추리물이 있다.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부당함을 추리소설을 통해 알리고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사회적 관심을 높여 정의를 구현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책들이다. 낙태, 존엄사, 누명, 학교문제, 왕따문제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이는 윤리도덕적 문제들을 지면으로 꺼내 당사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이다. 누구에게는 불편하고 누구에게는 속이 시원하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부조리한 사회와 권력에 울분을 느낀다.

 

이번에 읽은 잊혀진 소년은 표지에서부터 사회파 소설임을 감추지 않았다. 이미 몇 권의 책을 통해 일본의 사법체계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영화와 기사를 통해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경찰과 검찰과 재판부가 쉽게 그리고 적당히 타협해 넘기는 성적 지상주의의 엉뚱한 유죄판결이 한 가정을 얼마나 쉽게 파멸시키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우 뛰어난 책이다. 추리소설의 재미로 인해 후반부로 가면서 책 읽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또 다른 유괴사건의 피해자 앞에서 멈출 수 없는 질주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계속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거짓 자백을 하고 살인자가 되어 8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가석방 된 한 사내가 있었다. 1년 뒤 우연히 진짜 범인이 잡히고 그는 무죄임이 드러난다. 그 동안 이혼해 있던 그는 가족을 만나러 가지만 집 앞에서 사고사로 죽고 만다. 그리고 갑자기 그 아들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이십 년 뒤 그 아내는 암으로 죽기 직전에 흥신소에 그때 사라진 아들을 찾아달라고 의뢰를 한다. 그리고 한 소녀가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버지가 살인자라면 그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다시 그때 무죄였는데 억울하게 잡혀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원죄는  가지 뜻이 있다기독교의 진리  하나로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원죄(原罪)가 있지만 책에서의 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말한다.

 

그 살인자의 아들이었던 다쿠라는 소년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449쪽을 읽어보자.

 

사람의 마음은 유리처럼 깨지지 않는다. 살과 뼈와 피로 만들어진 육체만큼이나 부드러운 사람의 마음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뒤틀린다. 그러다 끝내 균형을 잃고 조금씩 피부를 뚫고 튀어나오듯 무너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죽지 않고, 시간과 함께 한때 사람이었다고는 상상도 못할 존재로 바뀌어 간다.

 

다쿠의 마음도, 아버지의 원죄와 죽음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천천히 비틀리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소마는 생각했다. (449)

 

형사재판의 대 원칙은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지만 사회는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더라도 열 명의 진범을 놓쳐서는 안 된다가 더 우세하다. 어디에나 피해자는 있기 마련이니, 그쯤은 무시하고 성적만 내자는 것이다.

 

손녀가 유괴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도키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도 전에는 법조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 형사재판의 대원칙 정도는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는 정말 세상이 그런 사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사회 말일세. 그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세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두 말 하면 잔소리고, 힘을 지닌 자가 힘을 행사하지 않으면 질서는 유지되지 않는 법이니까

세상은 힘을 지닌 자가 그 힘을 행사하는 걸 용인하지. 스포츠의 세계에서든, 기업이든, 사법이든, 이기고, 이익을 올리고, 범죄자를 벌하라고 말이야. 큰 결과를 낳기 위해 눈 감아야 하는 일도 있는 법.” (534~535)

 

우리나라가 바로 그러했다. 큰 결과를 낳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을 파괴하거나 희생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것이 미덕인 사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다시 사회악이 되어 사회를 덮쳤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개인이 모여서 큰 사회가 된다는 것을. 개인이 무너지면 결국 사회도 무너진다는 것을. 정의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580쪽이 넘는 그 묵직함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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