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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다 아세안 - 난방비 무서워 떠난 동남아 10국 방랑기록
감성현 지음 / 슬로래빗 / 2017년 12월
평점 :
그의 여행의 변은 상당히 자극적이었고 도발적이었다. 통상의 여행 에세이 또는 사진 에세이의 틀을 깨는, 그렇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상업적 발로에서 나온, 책에서 저자가 무수히 현지인들에게 당한 일종의 사기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드는 이야기.
그의 여행은 책 뒤표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추운 한국에서 난방비를 마련하지 못해 궁상맞게 오돌오돌 떨면서 글을 쓰느니 차라리 따뜻한 나라에 가서 글을 쓰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그저 미친 가스요금을 피해 떠나온 동남아.
난방비 무서워 떠난 동남아 10국 방랑기록.
책 앞면에 뒷면에 커다란 글씨로 써 놓은 이 문구를 광고회사를 다닌 것으로 짐작되는 저자도 처음부터 승인했을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독자인 고객?을 너무 상업성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유도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그런 도발적인 민낯을 과대포장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하는 질문에는 어쩌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또는 출판사의 이런 거침없는 직구 광고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생각으로 볼 일만은 아닌 것. 어쨌든 그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작가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참 책을 많이도 읽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책 네 권을 내고도 연봉 400만원에 불과하다는 그의 푸념이 너무 반가워서다. 그리고 나처럼 책을 참 많이 읽는구나, 싶어 묘한 동질의식이 느껴진다. 다만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간접여행을 하고 있고, 그는 정말 온몸으로 10개국을 돌아다녀 살아있는 경험이 온 세포에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작가처럼 회사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글만 쓰는 작가가 되지 못한 나는 그의 책을 출퇴근 길에 배낭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책이 무거웠다. 그는 사진을 참 잘, 예쁘게 감성적인 포인트를 잘 잡아 찍었는데, 일단 사진이 무지 많다. 좋은 사진을 좋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종이 질이 고급스럽다. 그래서 무겁다. 책도 360쪽이 넘어간다. 그리고 편집. 아, 정말 대단한 편집이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렇게 빡빡한 책은 처음이다. 글자도 작다. 위 아래 여백도 거의 없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을 통해 그가 만난 풍경과 사람과 여행을 하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난다. 두세 장 읽고 나면 그가 보물처럼 건져올린 사진들이 오밀조밀 민낯을 드러낸다. 그의 사진감각은 탁월하다. 그가 전망 좋은 곳을 가기 위해 산을 오르고 또 올라 사진을 찍었던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결혼 초, 큰 딸이 태어나는 날, 회사에서 12박으로 다녀온 유럽 여행과 3일짜리 일본 출장이 해외여행의 전부다. 거의 20년 전의 이야기다. 이제는 오래 걷는 것이 힘들어져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허전함을 달래보기만 한다. 그동안 많은 여행 에세이를 읽었지만 감성현 작가의 “뜬다 아세안”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만 같다.
슬리퍼 찍찍 끌고 앞뒤로 배낭 하나씩 매고 동남아를 누빈 그가 솔직히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여행기지만 반은 그의 고생한 흔적으로 보여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떠나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감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꾸밈없이 기록된 그의 슬리퍼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많이 줄인 것 같다. 책이 저렇게 두껍고, 글자가 빽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알찬 여행만큼이나 “뜬다 아세안”도 알차다.
마지막으로 “뜬다”의 제목을 생각해본다. 무엇이 뜬다는 것일까? 아세안 여행이 이제 바야흐로 이 책을 기점으로 뜬다는 뜻일까? 아니면, 떠난다는 개념을 가지는, 아세안으로 가자,라고 부추기는 말일까.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어디에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혼자 추측하다 그만 두고 만다. 아무려면 어떤가. 아시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떠나는 것도 충분히 황홀한 일인 것을.
나도 회사를 관두고 글만 쓰기 시작하면, 곧 동남아로 뜨게 될까? 사뭇 궁금해진다. 나보다 조금 젊은 그가 여행기의 휘갈긴 늙음에 대한 글이 새삼 나를 더 긴장하게 한다.
“나에게 늙음은 공포다. 의지와 상관없이 변형돼가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정신만이라도 젊게 유지해야지. 낡아지는 건 상관없는데 늙어지는 건 싫다. 누군가는 철들면 끝이란다. 철드는 순간 늙은 거라고.
가능한 오랫동안 철부지로 살아내고 싶다.”
(뜬다 아세안, 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