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어쨌다고 13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 1
부키 바이뱃 지음, 홍주연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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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쨌다고>
-열세 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


나는 열세 살보다 무려 x배나 나이가 많다. 그리고 에바 같은 열세 살 딸을 두고 있지도 않고 (큰 딸은 무려 두 배나 많다.) 주변에 열세 살 비슷한 조카나 손녀나 친구의 딸이나 친구의 친구의 딸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 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를 훔쳐보고 싶었다. 내가 거쳐갔던 열세 살이지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열세 살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열세 살 아이를 만난다면,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자만 입학하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고, 까만 일본 잔재의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학교는 인권 없는 교권만 권력으로 가득했고, 시험을 치고 나면 학년별로 100등까지 석차와 이름이 교무실 앞에 나붙었다. 기를 쓰고 100등 안에 들려고 노력했다. 100등 안에는 들어야 우등생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의 유일한 따뜻한 기억은, 국어 시간에 들어온 교생이 책에 있던 시 낭송을 시켰고, 모두 교과서 읽는 전형적인 딱딱한 음정으로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마지 못해 시를 읽고 앉을 때, 유일하게 감정을 넣어 읽음으로써 단번에 젊은 여자 교생 선생님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되었던, 그래서 시간마다 교생 선생님들은 나에게 시를 읽어보라고 시켰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불행한 기억은, 독후감에 대한 것이다. 중학교에서도 시 쓰고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갑자기 3학년 국어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불렀다. 무슨 잘못한 일이 있나 싶어 갔더니 급하게 되었다고, 내일까지 아무 책이나 읽고 독후감을 써오란다. 급하게 맡길 사람이 없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민이 되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대충 독후감을 써낼 수는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읽은 책이 없어 독후감을 쓸 책이 없었다. 그러다 양심을 지키는 범위에서 선택한 책이 에드가 엘런 포의 “고양이”였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그러나 이 책은 장르문학이었다.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 그러니까 그 당시 분위기로 보면,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책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추리소설을 독후감으로 작성해 갔다. 원고지를 받아든 선생님은 묘한 웃음(사실은 약간 비웃음)을 흘리고는 두고 가라고 했다. 나중에 그 독후감은 제출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내게 중학교는 억압, 단절, 강요 같은 단어들이 더 많이 부유하는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첫 중학교를 부임했던 원더우먼 별명을 받은 너무너무 예뻤던, 모든 학생들이 우리반을 부러워했던, 영어 담임 선생님이 만우절날 기적적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펑펑 울고 난 뒤로 중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에바는, 중학교를 정말 새로운 곳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건 사실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새 친구, 새 선생님. 새로운 과목.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설고 그래서 외톨이가 되기 딱 좋은 시스템으로 첨벙, 홀로 뛰어드는 곳이다.


에바는 스스로 모든 면에서 나은 게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남들보다 적응이 더 힘들었다. 심지어는 학교 급식마저도 그랬다. 식단이 문제가 아니라, 3학년부터 배식을 받고 1학년은 맨 마지막에 받으면서도, 식사는 더 빨리 끝내야 하는 불공평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특별 시간에도 결정장애로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해 자습만 하는 반에 배정받고 만 에바.

소극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에바. 그 모습은 대부분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유난히 사교성이 많고 활달하여 적응을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말 없는 소수가 더 많다.

표지에 나타난 에바의 온갖 모습들을 보라. 딱 소심한 내 모습이다. 그건 중학교에 갓 들어가지 않더라도, 첫 고등학교, 첫 대학교, 첫 직장, 첫 동호회 등 어디서나 나타난다.


말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거나, 시키는 대로만 하거나, 자기 정체성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불평도 안으로 삼키고, 혼자 힘들어하는, 모두 열세 살 에바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에바는 무미건조한 자습반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간식 바꿔먹기. 우리가 늘 하던 먹방놀이가 아니던가. 혼자 먹는 일 없이 늘 나눠먹기 좋아하는 우리네 사람들. 에바는 한국인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렇게 에바는 작은 일 하나를 시작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에바는 아무것도 대들고 반항한 것이 없었지만, 교칙을 위반하고,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주의만큼 철이 들었다. 열세 살에서 열네 살이 될 준비를 마쳤다.


중학교에 갓 들어가는 친구들에게 추천한다. 소심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나, 친구의 친구에게 추천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에바다. 사실 우리 모두가 열세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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